닮고 싶은 어른다움이란
회사 어른과 점심 약속이 잡혔다.
이직 과정에서 임원면접 때 온라인으로만 봬서, 직접 뵙고 싶었는데 먼저 기억해 주시고 이야기 자리를 마련해 주시니 감동이었고 감사했다. 낯선 곳에 적응하고 있는 사람에겐 이런 사소한 기억해 줌이 고마움으로 남는다.
면접 아닌 식사 자리지만 그래도 내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실 테니 당황하지 않도록 뭐라도 준비해야겠다 싶었다. 팀장님 통해 듣기로는 면접 때 얘기했던 아이디어들이 흥미로워서 조금 더 자세히 얘기해 보고 싶다고 하셨다는데.. 그래서 수첩에는 이런 걸 했으면 좋겠다 - 재밌겠다 - 하는 아이디어 여러 개를 적어놨다.
약속 시간,
팀장님과 나는 먼저 같이 있었고 조금 뒤에 사무실에서 성큼성큼 나오셨다. 특유의 바람에 날려진 시그니처 헤어스타일과 하얀색 후디와 두꺼운 가죽 자켓의 착장이 좋았다. 영상과 미디어로만 접해서 마냥 슬림 하실 줄 알았는데 키와 덩치, 그리고 악수할 때 잡았던 손까지 커서 놀랐다. 당연히 그럴 수 있는 사실에 내심 놀랐던 이유는 아마 나도 이 분이 많이 궁금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근처 중식당에 갔다.
이내 메뉴가 하나둘씩 나올 때 나에게 물으시길 식사할 때 기도를 하고 먹냐신다. 그때 어떤 타이밍이었냐면, 기도를 하려다 혹시 내가 기도를 함으로써 생기는 잠시 간의 침묵이 실례가 아닐까? 싶어 스킵 하려던 찰나였다. 마침 그렇게 물어보시길래, 멋쩍게 '잠깐 하고 먹습니다ㅎㅎ' 라고 말씀드리니, 괜찮으면 본인이 대표 기도를 하고 먹으면 어떻겠냐고 하셨다.
놀라웠다. 식사할 때 대표 기도라니? 그것도 식당에서? 나도 교회 다니지만 밖에서 대표 기도를 하고 먹을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생각해 보니 어른은 내가 교회 다니는지 모르실 텐데도 그렇게 물어보신 것은 내게 양해를 구하고 기도를 하고 먹어도 괜찮을지에 대한 질문이 아닐까 싶었다. 식사 기도는 당연하다. 하지만 대표 기도라니, 생활 속에서 작은 신앙을 지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기도를 스킵 하려고 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요리와 다음 요리가 나오는 사이 시간은 이야기를 나누기에 적절했다.
고맙게도 팀장님은 어른에게 내가 회사 들어오기 전에 했던 흥미로운 것들의 화두를 던져주어 어시스트를 해주고 나는 또 신나서 설명드리고, 나도 이 팀장님 같은 동료랑 한 팀이 된 것이 참 감사하다는 등의 덕담을 주고받으며 걱정했던 것과 달리 식사는 즐겁게 진행됐다.
이야기 후반, 어른은 회사의 복지와 보상에 대한 관점을 이야기해 주셨다. 요는 좋은 인재를 부르기 위해서 좋은 복지와 보상이 있어야 하지만, 그 복지와 보상만 중요하게 생각하여 거기에 중독되면 서서히 죽어갈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마치 꿀에 빠져 죽어가는 벌의 느낌이랄까? 그런 현상을 생각하며 안타까워하시며 팀장님과 나 두 분 모두 기도하는 사람이니 회사와 구성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난 회사에 얼른 적응하고 살아남는 게 목표이기에 나무 한 그루도 제대로 보기 어려운 좁은 시야만 갖고 있었는데, 어른이 들려준 이야기를 통해 숲을 조감하고 가꾸는 어른 입장의 넓은 시야를 조금이나마 느끼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놀랍고 인상적이었던 것은 무엇보다 신앙이 베이스가 되어 회사를 생각하고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전 회사 대표님도 철저한 신앙관으로 회사를 경영하는 분이었는데, 이곳에서도 이런 분을 만날 수 있으매 감사했다. 자기 분야에서 성공을 쌓아가고 있음에도 하나님께 고개 숙이고 기도하고 영적으로 바라보려고 하는 모습에 많은 배움이 있었다.
멋진 어른이었다.
그래서 여기에도 계속 어른이라고 적었다.
커보니, 어른이라고 다 같은 어른이 아님을 안다.
오랜만에 닮고 싶은 사람을 만난 느낌이었고,
나도 그렇게 에이징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