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시대, MZ 세대의 불안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읽으며

by 앨리스

시작은 늘, 돈입니다.


요즘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돈'에 대해 생각한다.

출산과 내 집 마련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서울에, 적어도 서울로 출퇴근이 쉬운 경기 지역에 집을 갖고 싶다.

그렇게 욕망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돈은 내가 아무리 모아도 부족한 것이 됐고,

나의 가난에 시시때때로 불행해졌다.


SE-ba21a280-73a6-48af-939a-f8c15591d896.png?type=w800



너무나 상대적인 행복


나는 왜 서울에 집이 갖고 싶을까.


회사가 서울에 있고, 친구들과 직장 동료가 모두 서울에 살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모두 나처럼 경기 외곽에 살면서 공평하게 왕복 3시간 거리의 출퇴근에 고통받고 있다면, 서울살이를 지금만큼 갈망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음, 아니. 그렇더라도 회사까지 왕복 100km를 오가면서 맞벌이 육아가 가능한 것일까 싶지만..


어쨌든 나는 다른 사람들이 가진 것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불행하다.


저출산이 MZ 세대의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요즘 세대는 전보다 훨씬 더 잘 살게 됐는데 만족할 줄 모른다고 한다. SNS와 허세, 과시, 비교문화가 MZ 세대 저출산의 원인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어떤 것의 적절한 수준은 결코 독립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준거집단, 즉 우리와 같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조건과 우리의 조건을 비교하여 결정된다.(56)'


743982fad9f2e3c94f54a0e36d148a1a.jpg



태어날 때부터 무엇이든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고 말하는 능력주의, 경쟁시대를 살아온 90년대생에게 남들과 비교는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얘기가 얼마나 모순적인지. 나의 가치와 필요를 석차를 통해, 대학을 통해, 인사고과를 통해 매 순간 확인해 온 우리에게 행복마저 상대적이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루소에 따르면 부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었다. 부란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 부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부는 욕망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다. 우리가 얻을 수 없는 뭔가를 가지려 할 때마다 우리는 가진 재산에 관계없이 가난해진다.(78)'



욕망하기를 멈춘다면,


루소는 사람을 부자로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라고 생각했다.

더 많은 돈을 주거나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욕망이 없이 우리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 곳인지 궁금해진다.

사람들에게 상상해 본 적도 없는 것을 끊임없이 새롭게 갈망하게 만드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욕망이야말로 사회에 가장 이로운 동기가 아니었던가.


최근 주변인들에게서 욕망이 사라지는 것을 본다.

동생이 대학 진학을 포기했고, 친구가 취업을 포기했고, 또 다른 친구는 결혼을 포기했다.

지위의 획득, 자녀의 출산, 이런 기본적인 욕망들마저 내려놓기 시작한 것이다.



20210525065215208xqgi.jpg



하버드 심리학 교수인 윌리엄 제임스의 자존심 방정식에 따르면, 자존심을 지키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68)

'자존심 = 이룬 것 / 내세운 것'

분자를 늘리기 위해 더 많은 성취를 이루거나, 분모를 줄이기 위해 성취하고 싶은 일의 수를 줄이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무언가를 이루는 일이 너무 힘들어진 나머지 성취에 대한 기대를 버리기로 작정한 것 같다.


여전히 욕망하는 나에게도, 욕망을 버린 친구들에게도, 행복은 멀고 위태롭게 느껴진다.




평범한 삶도 가치 있기를


한국은행이 지난 12월 내놓은 저출산 연구보고서에는 인구밀도가 높을수록 경쟁에 대한 압박이 커져 저출산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이 있다.


그렇다면 알랭 드 보통이 <불안>에서 제시한 다섯가지-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안-중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은 아주 조금의, 기독교적인 공동체 정신일지도 모르겠다.


'공동체가 부패할수록 개인적 성취의 유혹이 강해진다. 모든 인간이 귀중하다는 인식을 회복할 수 있을 때,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그런 인식을 유지할 수 있는 공간과 태도를 조성할 수 있을 때, 사람들은 평범한 삶을 어둡게 보지 않는다.(309)'


귀중한 한 사람으로 살아가기에 이 도시는 너무 많은 사람이 살고, 매일 애쓰지 않으면 내가 하는 정도의 일은 언제든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다.


통근 지하철이 좀 덜 붐비고, 통근하는 내 모습을 덜 불쌍하게 인식할 수 있다면,

대단한 성취 없이도 소외되지 않고, 냉정한 평가에 덜 직면해도 된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살아내야 하는 평범한 삶에 좀 더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아마도 높은 확률로 그런 평범한 삶을 살아갈 나의 아이에게 덜 미안해도 될 것 아닌가.


사실 알랭 드 보통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의 성공과 실패를 냉정하게 평가해 본다면 우리 자신을 자랑하거나 창피해할 이유가 그리 많지 않다고 느끼게 된다. 실제로 벌어지는 일 가운데 많은 부분은 우리의 행동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238)'


이 사회가 추앙하는 지위와 평판에 목메는 한

책에서나 한 줄 위안을 얻은데 만족하며,

오늘도 불안에 허덕일 밖에.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사적인 질문은 관심과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