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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란 비석에 뿌릴 술 한 잔을

긴 탄핵 정국 이야기

by 카레맛곰돌이

오늘 한쪽 귀에 이어폰을 꽂고 탄핵 선고를 들었다. 22분의 이야기는 긴 듯 길지 않았고 문장 하나하나가 방청석에 앉은 국민들이 쉽게 듣고 생각할 수 있도록 정제된 언어로 이루어져 있었다. 결과는 뉴스에 나온 그대로다. 생각해 보면 걱정할만한 일도 아니었다. 당연히 탄핵이 될만한 사유였고, 그날의 사건은 아직도 우리의 뿌리와 삶에 큰 상처를 남긴 채 아직 치유되지 못하고 있다.


나는 군에서 9년의 시간을 보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다. 내 20대는 군에서 시작되어 군에서 끝났고 나는 국민을 위한 군대라는 이야기를 매번 들으며 20대를 보냈다. 그렇다, 군대는 국민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장소다.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군이 총칼의 방향을 돌린다면, 군대는 존재 가치를 상실하고 그들이 지금까지 지켜온 명예의 근간을 잃게 된다.


나는 계엄의 밤 굉장히 화가 난 상태로 글을 적었다. 내가 사랑하고 미워했고, 애정을 가졌고 애증의 감정을 품었던 군대를 더럽힌 이 때문이었다. 그는 군대의 가치를 더럽혔고 내가 기억했던 국민을 위한 군대라는 대전제를 망가뜨렸다. 그래서 나는 계엄의 밤, 설령 계엄이 성공해 이런 글을 쓴 이들이 잡혀가는 날이 오더라도 내 분노를 표출하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써서 남겼다.


아직도 그날의 분노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가 군대를 더럽혔고, 이미 더럽혀진 군대가 앞으로도 그 오물을 묻힌 채로 수년, 많게는 수십 년을 살게 되리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저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가게 된다. 한번 실추된 명예는 다시금 되찾기 어렵고 당분간 군은 난파 속 표류하는 돛단배처럼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며 어디로 방향타를 잡아야 할지 모르는 채로 어려운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럼에도 언젠가 그들은 맑은 밤하늘 북두칠성을 마주할 것이고, 다시금 국민을 위한 군대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 나는 그날을 기다리며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으러 다시금 떠난다. 정치와 관련된 글을 쓰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 말에 긴 취소선을 하나 긋고 여기에 그 문장을 옮겨 적는다. 나는 이제 정치와 관련된 글을 쓰지 않겠다. 하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그런 글을 남기겠다. 내가 사랑했던 군대의 도약을 위해, 사랑했던 이들이 받아온 고통이 해소된 그날을 기리기 위해, 오늘 저녁 기분 좋게 뱃속에 부울 소주 한잔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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