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 꾸었던 꿈 이야기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했던 날 긴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서 처음 봤던 것은 교리교육에 대한 꿈이었습니다.
'신부가 되는 교리교육! 1년 집중 교육 코스, 교육비 300만 원.'
처음에 이게 무슨 꿈인가 싶었습니다. 마침 제가 디자인 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그 학원비도 국비 지원 없이는 대충 이정도의 가격이었으니 아마 그런 제 마음 속 생각이 비쳤던 것이겠지요. 물론 실제로 신부가 되는 길이 이렇지는 않습니다. 성당에서 교리교육을 받으며 신앙활동을 하다 본당 신부님의 추천을 받고 대학에 진학해 신부의 길을 걷는 것이 보통이고, 게시판에 써 있던 것처럼 돈을 내고 교육을 받는다고 신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속으로 웃으면서 이 게시판을 잠시 쳐다보고 있었죠.
그러다 장면이 바뀌고 신부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저와 이에 대해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물론 저는 현실에서 가족들에게 신부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해본 적도 없고 가족들도 이런 제 상상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기에 모두 허상일 것입니다.
왜 나는 이런 꿈을 꾸고 있을까. 가족들에게 신부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해본 적은 없지만 저는 사실 신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습니다. 실제로 그 길을 걷는 주위 사람을 보면서 존경스럽다는 마음 일부, 부럽다는 생각 일부를 가지기도 했었고 나도 내가 가진 것들을 내려놓는다면 신부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했었죠.
결과적으로 저는 신부가 되지 못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그 길의 초입에도 서지 않았으니 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게 정확할지도 모르겠네요. 신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당시의 저는 어떤 것이든 노력하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내가 신부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저는 가진 꿈만으로는 될 수 없는 게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은 제가 된 것이겠죠.
잠깐 길을 샜지만 꿈 이야기를 계속 하면 저는 신부의 길에 대한 이야기를 가족들과 잠시 나누었고, 신부의 길을 떠났던 옛 지인의 얼굴을 잠시 봤고, 그리고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아침이 오면 학원에 바삐 가야하는 현실로.
왜 이런 꿈을 꾸었나,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성하와 저는 아무 관계도 아닌데, 오히려 저는 냉담하고 있는 신자기에 모범은 커녕 지탄받는 신자일 것인데. 가끔 진정으로 소원한다면 신부가 될 수 있을까, 생각을 가지고는 합니다. 아마 늦었을 겁니다. 신부가 되는 마지노선의 나이는 30살로 기억하는데 저는 이제 30살, 최근에 생일을 맞이했고 이제부터 다시 교리교육을 들으며 길을 걷는다고 하더라도 31살, 32살, 이미 시기가 지나겠지요.
그래서 저는 이 꿈과 길을 하나의 갈증으로 남긴 채 살고 있습니다. 아마 이 꿈은 제 목마름이 너무도 심해 잠깐 품었던 봄바람일 것입니다. 그래도 이 꿈을 꾸었기에 저는 다시금 선한 마음을 품고 살 수 있습니다. 제가 신부가 되고 싶었던 이유도 신부님의 교리교육을 도울 당시 해맑게 웃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서, 봉사에 힘쓰는 신자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선하게, 타인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으면서, 하느님의 종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의 발로였기 때문입니다.
긴 꿈을 꾸었기에 하느님의 종으로 살고 싶다고 소망했던 옛 마음을 잊지 않고 계속 가져갈 수 있습니다. 설령 냉담하는 신자더라도 말이지요. 교황님의 마지막 길에 함께했던 모든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냉담자인 제가 감히 여러분께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