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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레맛곰돌이 Feb 09. 2023

14. 사회생활하는 대학생 이야기

오늘 저녁은 뭐 먹지?

"오늘 저녁은 뭐 먹지?"


"그 말만 몇 번째인지 알아요? 점심 먹을 때부터 퇴근 전까지 벌써 4번은 더 말했어요."


 후배의 볼멘소리에 괜스레 장난기가 발동한다. 녀석은 질린 듯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지만 그럴 때일수록 이렇게 웃으며 하는 이야기가 더 재미있다.


"아, 오늘 저녁은 뭐 먹지?"


 자취하는 청년들의 오랜 고민거리, '오늘 저녁은 뭐 먹지.' 나 또한 이런 고민거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솔직히 점심을 먹기 전까지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아침부터 점심까지 이리저리 일을 하면서 배는 점점 고파지고 그럴 때 당장 떠오르는 것은 오늘 점심에 나올 식당 밥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에 음식이 들어오는 시점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람이 배가 차면 딴생각이 난다고, 문득 오늘 저녁은 뭐 먹지? 하는 생각이 든다.


 요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은 그나마 좀 낫다. 집 가는 길에 파스타 면이라도 하나 사고, 집에 아라비아따 소스가 남아있나 곰곰이 생각도 하고. 막상 집에 왔는데 없으면? 그러면 파스타 면은 잠깐 집어넣고 그동안 집에 곱게 모셔놨던 참치캔을 꺼내면 된다! 물론 여기서 소스가 없음을 알고도 파스타 면을 팍 뜯어서 일단 삶고, 참치캔도 넣고 참기름도 넣고 고추장 조금, 간장 조금, 초고추장 조금 넣고 '비빔면 with 파스타'하고 이름 붙이면서 거창하게 도전을 해봐도 된다.


 하지만 요리를 할 줄 모른다면 매일매일이 고통일 것이다. 늘 가는 식당, 늘 먹는 편의점 도시락, 늘 먹는 컵라면...... 나는 위의 요리를 그나마 할 줄 아는 사람 쪽에 속하지만 요리를 할 줄 모르는 후배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생각 이상으로 딱한 삶을 살고 있다고들 한다. 그냥 어느 날은 치킨 시켜 먹고, 어느 날은 편의점 도시락 먹고. 하지만 이런 삶을 사는 후배도 굴레를 벗어나는 때가 한 번씩 있다고 한다. 바로 부모님이 반찬을 보내주실 때다.


 혹시 자취생활을 하면서 이런 경험이 있는가? 부모님이 반찬을 보내주셨는데 생각보다 양이 너무 많아서 다 먹지 못하고 버리게 된 적, 혹은 소분시켜서 냉동고에 넣어놨다가 꺼내서 먹는 것을 깜빡해서 생각보다 너무 오래 냉동고에 박아둔 적. 나는 전자의 경험이 더 많을 것이다. 어머니는 언제나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3개에서 많게는 5개, 6개 정도씩 보내주고, 또 본가에 들렀다 내려갈 때 챙겨주고는 하셨다. 나는 그런 어머니의 애정이 싫지 않았고, 또 어머니의 반찬이 싫지 않았다. 누구에게 자랑할 수 있을 만큼 요리를 잘하시는 어머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반찬을 받을 때 같이 드는 마음은 부담스러움이었다. 전날 밤부터 부산하게 준비하시고 아침 일찍 일어나 점심쯤 출발할 아들을 위해 멸치를 볶으시는 어머니, 고기를 볶아 차게 식히시는 어머니, 미리 해둔 밑반찬이 맛이 없을까 진미채를 조물조물 무치시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면서 '반찬을 제때 잘 먹어야 할 텐데, 버리거나 상하게 만들지 말아야 할 텐데.' 하는 걱정이 들었고 이 마음은 부담감으로 변했다. 그래서 어느 때는 어머니께 반찬을 해주지 않으셔도 괜찮다고 이야기를 했다. 괜히 남기면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어서, 남길 바에는 받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거절을 한 것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게 오히려 바보같은 짓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물론 반찬을 싸주실 때면 어머니는 굉장히 바쁘게 움직이셔야 한다. 전 날부터 장을 봐서 할 요리를 구상하시고, 내가 좋아할만한 반찬을 골라서 미리 밑준비를 해두셔야 한다. 아침부터 요리를 바쁘게 해야 하고, 또 그 요리를 잘 얼리고 식혀 포장하는 수고를 감수하셔야 한다. 하지만 그걸로 어머니는 '내가 혼자 어린애처럼 요리도 못해먹고 라면으로나 끼니를 때우지 않을까.'하는 걱정을 덜으셨겠지. 그리고 맛있게 먹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 편으로는 작게 웃으셨겠지.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된다.


 내 나름의 배려는 배려가 아니다. 때로는 호의를 부담스러워하지 말고 받아들이는 것도 배려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맛있게 잘 먹었다는 이야기와 올라가서 또 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드리는 것이다. 내일쯤이면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반찬이 올 것이다. 사실은 보내주지 않으셔도 나 혼자서 이리저리 매일 새로운 요리를 해먹으며 보낼 수 있다. 그러려고 칼, 도마, 국그릇, 밥그릇까지 사놓고 사는 거니까.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냥 맛있는 반찬 기대된다면서 웃으며 받고, 또 받으면 잘 먹겠다고 이야기하면서 안부 전화를 드릴 뿐이다.


 문득 이렇게 이야기를 적다가 어머니가 해주시던 잔치국수가 떠오른다. 내가 아직 집에 있던 초등학교, 중학교 때 어머니가 해주시던 잔치국수. 아침부터 육수를 끓이시고 면을 삶으신다고 바쁘셨지만 9시, 눈도 겨우 뜨고 간신히 몸을 일으킨 우리 형제들이 냄새만 맡아도 바로 밥상 앞에 앉게 만들었던 잔치국수. 그 맛이 그리워 밖에서 살게 된 지금도 식당에서는 사 먹지 않게 된 잔치국수가 떠오른다. 다음에 집에 올라가면 잔치국수를 먹어야겠다. 그리고 이제는 어머니의 옆에서 내가 그 잔치국수를 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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