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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레맛곰돌이 Mar 21. 2021

03. 사회생활하는 대학생 이야기

어머니,여자친구,여자

사람의 피부는 얇다. 설레임을 먹다가 입이 베일만큼 얇고 A4용지에 베일만큼 얇다. 그런데 왜 나는 안베이고 늘 여자친구만 베일까. 차라리 내가 대신 베이면 좋을텐데, 나는 사회생활하면서 철판을 깔아서 안베이나. 괜시리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 마음이 더 아프다.


최근 아버지의 환갑잔치가 있었다. 잔치라고 해도 특별한 것은 아니고 케이크랑 맛있는 음식정도로 소소한 파티를 열었다. 애초에 나와 내 형제들은 사회초년생이거나 대학생이었기에 잔치라고 부를 만큼 거창한 일을 벌일 돈도 없었다. 그렇기에 모두 돈을 모아 백 만원정도를 아버지께 용돈으로 드렸다. 물론 그 잔치에 나는 없었다. 내 부대는 차를 1시간 넘게 타도 집 근처에 가지도 못할 만큼 멀리에 있었고 부대에서는 수도권에 가는 일 자체를 금하고 있었다. 특별한 사유는 된다고 했지만 부모님의 환갑이 지휘관들의 입장에서는 수도권에 가게 해줄만한 특별한 이유가 아니었던 점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전화로나마 환갑잔치에 참여를 했었고 영상통화를 통해 가족들의 얼굴을 한 명씩 보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뵈었다.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는 40대 초반 시절의 젊은 어머니일 것이다. 검정색 레이스가 달린 예쁜 블라우스를 입으시던 어머니, 삼형제를 위해 다양한 요리를 해주시던 어머니,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언제나 힘내라고 말씀해주시던 어머니. 내게 어머니는 그런 분이셨다. 생각해보면 벌써 집을 나와 산지 10년이 지났다. 17살부터 기숙학교 생활을 시작했고 20살에는 군에 입대했다. 그 후로 군에 정착했고 지금까지도 나와 살고 있으니 벌써 10년이다. 그리고 내가 기억속의 어머니는 더이상 40대의 아름다우시던 어머니가 아니다. 그 사실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조금 부으신 얼굴, 색이 바래가는 검은 머리카락, 낡은 옷, 내가 기억하던 어머니는 이제 아버지를 따라 환갑을 앞두고 계신다.


예전에 여자친구가 우리 부모님을 뵙고나서 했던 이야기가 있었다.


"어머니 손이 많이 부으셨더라. 우리 엄마보다 더... 얼마나 많은 일을 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조금 언짢았다. 왜 어머니 정말 예쁘시더라 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그런 이야기가 나오지? 그럴리가 없는데. 그런 생각들이 머리 속에서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내 여자친구는 어머니를 똑바로 봤고 나는 기억 속의 어머니만을 아직 추억하고 있었다. 그 곳에 계신 어머니를 보고 나는 무언가 말을 하려다 말문이 막혀 잠깐 숨을 가다듬고 아무렇지 않은 척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니, 잘 지내세요? 무릎은? 좀 괜찮아요?"


무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많이 떠올랐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렇게 몇마디 이야기를 나누고 통화가 끝난 다음 씻으러 들어갔다. 그 곳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눈물을 흘리고 가끔은 소리를 참기 힘들어 입 밖으로 꺽꺽... 그렇게 한참을 울다 겨우 몸을 씻어내고 나왔다.


나의 어머니는 강인한 분이다. 집안에 많은 풍파가 있었지만 어머니는 언제나 일어서셨고 나와 형제들을 사랑으로 키우셨다. 집에서 가정주부로 형제들에게 사랑을 주시던 어머니는 어느 순간부터 야간에 식당 일을 시작하셨고 모두가 잠드는 새벽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오셨다. 그런 나와 내 형제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어머니를 기다렸다가 안녕히 다녀오셨어요 인사하는 일 뿐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늘 인사를 받으시면서 우리들에게 웃어주고는 하셨다. 그렇기에 나는 그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가늠하지 못했다.


나의 여자친구는 작고, 조그맣고, 약하고, 여리지만, 강인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지만 그 이해는 자신에게도 상처가 많기에 가능한 것들이라 생각한다. 여자친구는 상처가 많은 여린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얼굴을 보고 다시금 울음을 터트린 나를 토닥여줬고 지금부터라도 어머니께 조금 더 사랑을 표현해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나의 어머니의 손을 처음 잡았을 때 집에 계시는 어머니가 생각났다고 이야기했다. 아니, 오히려 더 많은 일들을 겪어오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야기를 해줬다.


여자는 남자보다 피부가 얇다. 그래서 여자는 쉽게 베이고 쉽게 다친다. 나의 여자친구는 나보다 훨씬 피부가 얇다. 그래서 늘 A4 용지에 베이고 가끔 요리하다 손이 베였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반창고붙인 손을 내게 들이밀어 철렁하게 만들 때가 있다. 나는 그녀에게 바이올린도 통기타도 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고사리 같은 손에 더 많은 상처가 날까 두려워서다. 나는 그녀에게 요리할 때 옆에서 가만히 서있으면서 말만 붙여달라고 말하고 싶다. 괜히 칼질을 부탁했다가 칼에 베일까 두려워서다. 분명 나의 어머니도 그런 시절이 있었겠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무언가를 만지작 하던 시절이, 칼에 베여 선명한 핏방울이 떨어지던 때가, 공부하다 책에 베이던 시절이...




내 여자친구는 자주 아프다. 머리도 자주 아프고 몸도 자주 늘어진다. 늘 그 기간이 올 때마다 많이 힘들어해서 이제는 내가 그 기간이 올 때면 괜찮냐고 먼저 챙기고는 한다. 겨울에는 추위를 많이 타서 핫팩을 넣을 수 있는 복대를 선물해주기도 했다. 또 잠은 잘잘까 걱정되서 온열안대를 선물하려다가 사면 혼난다고 이야기들어서 포기했다...


내 여자친구는 자주 아프다. 그런데 늘 아플 때 쉬라고 해도 괜찮다면서 몸을 움직인다. 그래서 마음이 너무 아프다. 지금도 아픈데 괜찮다면서 몸을 움직이다 끝내 몸져눕는 내사랑을 보고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옛날에는 아프지 않으면 좋을텐데 라고 생각을 했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되지 않는다는걸 모두가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을 한다. 아파도 괜찮으니까 한 걸음에 달려갈 수 있을 만큼 가까이에 있으면 좋겠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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