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05.
나는 유독 추위에 약하다.
아버지의 말을 빌리자면, 이제 막 말문이 트이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조막만 한 고사리 손에 짧은 입김을 불어대기 바빴다고 하더라. 차가운 칼바람에 화들짝 놀라버리며 어른의 손바닥 한 뼘이 채 되지 않는 작은 어깨를 한없이 웅크리곤 했었다. 체구보다 조금은 넉넉했던 겨울 외투를 걸친 모양새가 제법 우스꽝스러웠던 탓에 한없이 칭얼거리기 바빴던 나이의 기억이다.
평소 말수가 적고 또래보다 낯 가림이 심했던 꼬마 아이는 코 끝을 간지럽히는 봄의 온기를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본인에게 주어진 온 힘을 다해 추운 겨울을 버텨내야만 했던 탓일까, 우리의 모습은 한 없이 고독했었고 때로는 쓸쓸하기 짝이 없었다. 만남과 이별사이에 피어오르던 삶의 여운은 내 육신 안에 가둬버린 영혼의 깊은 바닥을 그저 아무 말없이 비추고만 있었더랬다. 그 당시 느꼈던 사무치도록 차가운 겨울을, 나는 아직도 여전히 잊을 수가 없다.
힘 없이 움켜쥐었던 겨울의 끝자락을 떠나보낸 뒤, 찰나의 기억 같은 봄의 기운이 나의 일상을 뒤흔들고 있었다. 이름 모를 꽃 봉오리가 푸르스름하게 고개를 치켜세우던 무렵은 이십 대의 매 순간을 함께해 주었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너에게서 나를 보았고, 나에게서 너를 보았던 우리였기에 더욱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 모든 꽃에는 각자의 시기가 있는 것처럼, 우리 앞에 펼쳐질 눈부신 순간들은 언젠가 반드시 오늘을 기억하게 되리라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돌이켜보면 영원할 것만 같았던 봄의 향기에 취해 모호한 약속이 넘쳐흐르는 나날들 위에서 나지막이 흔들리고 있었던 기분이 든다. 어쩌면 이 마저도 젊은 날의 이기적인 투정이 아니었을까.
두 뺨에 상기된 청춘의 어리숙함은 그렇게 어느덧 여름을 맞이하였다.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지나가버린 봄의 흔적들이 야속하였지만, 짧았던 만큼이나 강렬한 기억으로 당시를 추억할 수 있는 지금이 그렇게 썩 나쁘진 않았다. 삼십 대의 반절을 지나가면서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잠깐 생각해 본다. 신기하게도 과거의 조악한 기억들과 더불어 내면의 불안이 함께 무르익어 가는 것을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아마도 잠에서 깰 때마다 멍하니 바라보았던 우리의 눈부신 순간들을 덩달아 떠올리게 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뱉어내는 한숨을 뒤로한 채, 비참할 정도로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기 시작한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