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09.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나는 친구가 없었다.
엄마가 없는 아이라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었고, 아마도 두 번째 이유는 몇 번의 전학을 거듭하면서 유대관계의 끈이 떨어진 탓일 것이다. 원래부터 활동적인 성격은 아니었기에 학교를 마치면 곧장 집으로 돌아와 세계동화 전집을 펼쳐 보거나 만화영화(당시에는 애니메이션보다 만화영화라는 표현이 조금 더 익숙했다) 재방송을 찾아보곤 했었다.
집에는 언제나 나 혼자 있었다. 아버지는 새벽에 일어나 일을 나섰기 때문에 다섯 시쯤 함께 먹는 아침 밥상이 우리가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의 전부였던 것이다. 아버지의 일은 주말과 평일을 가리지 않았고, 비가 내리지 않는 이상 하루라도 쉬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당시 아버지의 직업은 목수였었다고 한다.
역설적이게도, 나는 비가 오는 날이 썩 달갑지 않았다. 가뜩이나 말이 없는 사람이었던 만큼 둘만 있는 시간이 도무지 어색해서 견딜 수가 없었나 보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아버지가 돌아오기 전에 불을 끄고 혼자서 먼저 잠에 드는 것이었다. 한창 성장해야 할 나이였던 덕분에 다행히도 중간에 잠을 설치거나 하는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어떻게든 최대한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해야 되려나.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아버지의 어두운 그늘을 어느 정도 짐작해 볼 따름이지만, 그러기엔 너무 어렸던 스스로의 나이가 당시로서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성인이 된 이후에 전해 듣기론, 어린아이의 애정 결핍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고 한다. 시선을 자주 회피하거나 언어의 발달이 느린 경우가 일반적이다. 아이에 따라 폭력적인 성향을 띠는 것은 물론, 거짓말이나 일탈, 혹은 손버릇이 나빠진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심리상담 치료를 통해서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내가 느꼈던 솔직한 감정은 안도감이었다. 아버지의 회초리를 부르던 나의 행동들도 결국은 내 나름의 잘못된 표현이었을 뿐, 애당초 내가 나쁜 사람은 아니었구나 생각할 수 있게 됐던 것이다.
아버지와 함께 하던 어린 시절에, 속된 말로 나는 참 맞을 짓을 많이 했었다고 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서야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있어서도 안될 일이다), 스스로가 떠올려봐도 아버지에게 맞았던 기억이 적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나름의 장기(?)를 살려 특제 회초리를 만들어 두었었는데 그 모습은 실로 위협적이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성인 남성 허리정도 되는 길이의 합판을 목검 사이즈로 제단 하여 하얀 페인트를 예쁘게 발라준 다음, 광택이 나는 투명 니스로 작품을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덕분에 나는 아버지와 도무지 친해지려야 친해질 수가 없는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야만 했다. 어린 나이에 스스로가 뭘 할 수도 없는 상황인 것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아버지가 무척이나 무서웠었나 보다. 생각해 보면, 나의 어린 기억 속 아버지는 회초리 바로 그 자체였다. 아무런 말 없이 존재감 하나만으로도 알 수 없는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사람, 나의 아버지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랬던 아버지도 이제는 나이가 들었다. 가끔은 한없이 작아진 어깨와 움츠러든 당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과거에 그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았었느냐 물어보고 싶어질 때가 종종 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굳이 그런 질문을 건네지는 않았다. 미세하게 떨리는 아버지의 표정을 바라보면서 나까지 덩달아 입을 굳게 다물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사실, 지금의 나에게 더 이상 다른 바람은 없다. 서로의 심경 변화를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만큼, 그것 하나만으로도 부자의 관계가 썩 나쁘진 않은 것 같다며 짐작해 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