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 영지의 기호는 선한(도덕적인) 기호인가?

by cusp

이 칼럼에서는 정약용이 주장했던 인간의 본성인 영지의 기호가 선한 기호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논해보려 합니다. 우선 이 주제와 관련하여 출제된 2022학년도 수능 5번 문제를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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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는 정약용의 입장으로 옳은 것을 묻고 있습니다. 정약용의 사상을 제대로 공부했다면 이 문제의 답을 5번으로 고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이 문제의 4번 선지와 관련하여 수험생들이 질문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4번 선지를 답에서 제외시키는 것도 사실은 어렵지 않습니다. 정약용이 형구의 기호 때문에 인간이 악한 행동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을 뿐 형구의 기호 그 자체를 악한 기호로 보지 않았다는 것은 윤리와사상 교육과정에서 많이 강조되어 왔던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선한 기호의 본성'과 관련하여 발생합니다. 즉, 정약용이 영지의 기호를 '선한 기호의 본성'으로 보았는지, 즉 영지의 기호를 선한 기호로 보았는지 질문하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인강 강사들이 해설을 아예 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해설을 한 몇몇 강사들의 발언과 한 유튜버(현직 교사나 강사이신 듯합니다)의 발언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A 강사: 이런 처음 보는 선지들은 갸우뚱하게 만들고 헷갈리게 할 수 있는 선지이죠. 인간의 본성은 기호야. 그리고 기호는 영지의 기호와 형구의 기호가 있었죠. 영지의 기호는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기호였습니다. 그런데 정약용은 이 중에서 영지의 기호는 선한 기호고 형구의 기호는 악한 기호야 이렇게 얘기한 바 없죠. 우리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는 선지일 뿐 정약용의 사상가는 전혀 거리가 멉니다.


B 강사: 인간은 선한 기호의 본성과 악한 기호의 본성을 함께 타고난다? 선과 악을 좋아하는 기호가 아니라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기호를 타고난다고 했죠.


C 유튜버: 그럴싸한 말인 것 같은데... 영지라는 것은 영혼이에요. 영지의 기호는 선하게 될 수는 있지만 이러한 기호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무조건 선해지는 건 아니라는 점. 본성을 선한 기호, 악한 기호 이렇게 나누면 안 됩니다. 가능성이에요. 가능성.


A 강사와 C 유튜버는 명백하게 영지의 기호를 선한 기호로 볼 수 없다고 해설하고 있습니다. B 강사는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했거나 해설하기 애매하다고 생각해서 어영부영 넘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영지의 기호는 선한 기호이다'라고 해설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마 영지의 기호는 그 자체로 선하지는 않고 선할 수 있는 가능성일 뿐이라고 생각해서 위처럼 해설한 듯 보입니다.


그렇다면 영지의 기호는 강사와 유튜버의 주장처럼 선할 수 있는 가능성만을 의미하고 그 자체로는 선하지 않은 것인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성이란 기호이다. 형구의 기호도 있고 영지의 기호도 있는데 모두 성이다. 그러므로 「소고(召誥)」`에 ‘성을 절제함[節性]’이라 하고 「왕제(王制)」에 ‘백성의 성을 절제함[節民性]’이라 하고 『맹자』에 ‘마음을 움직이고 성을 참음[動心忍性]’이라 하여 이목구체(耳目口體)의 기호로 성(性)을 삼으니, 이는 형구의 기호이다. ‘천명지성(天命之性)’, ‘성(性)과 천도(天道)’, ‘성선(性善)과 진성(盡性)’에서의 성(性)은 영지의 기호이다.”
- 한국철학사연구회, <한국철학사상사> -


그(정약용)는 여러 경전에 나타나는 성(性)의 용례에 대해서 고찰함으로써 성의 일반적 의미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의 성질'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형구의 기호는 육체의 욕구이지 마음의 성이 아니고, 오직 영지의 기호만이 마음의 성이라고 한다. 이 영지의 기호는 선한 것이므로 맹자의 성선설에 위배되지 않는다.
- 조현규, 한국 전통윤리사상의 이해 -

인의는 이미 마음에 결정되어 있는 내적인 덕이 아니라, 본성을 따름으로써 실제적인 도덕적 사태에서 이루어야 할 실천적인 규범이다. 이 점에서 다산은 인의를 심중(心中)의 이(理)나 덕(德)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산은 '덕성을 상실해서는 안 된다.'고 함으로써 낙선오악(樂善惡惡)이라는 본성의 선함을 잘 지키고 따르는 것은 인간에게 당위(當爲)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 이영경, 한국사상과 마음의 윤리학 -


정약용은 영지의 기호의 존재에 근거하여 유가의 기본 입장인 성선설을 받아들인다. "맹자가 말한 성선(性善)에 어찌 잘못이 있겠는가? 다만 어쩔 수 없이 선한 사람이 된다면 그에게 공로가 없게 될 것이다. 이 때문에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는 권형을 부여하여 자신의 주장에 따라 선을 향하려고 하면 그것을 따르게 하고 악을 향하려고 하면 그것을 따르게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공로와 죄가 발생한 이유이다."
- 김병찬, 서양 동양 한국윤리 -(임용 교재)


위 서적들의 설명을 참고했을 때, 정약용은 영지의 기호를 선할 수 있는 가능성에 국한하여 설명하지 않고 선한 기호로 설명하여 맹자의 성선설 논리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한 것으로 보입니다. 즉, 정약용이 영지의 기호를 '선한 기호의 본성'으로 보았다고 간주할 수 있습니다.


정약용 사상에 대한 해설서들뿐만 아니라, 교육과정 내의 교과서들도 정약용의 영지의 기호를 선한 기호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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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엔 출판사 교과서는 정약용의 영지의 기호 개념을 '도덕적 기호'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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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교육 출판사 교과서 또한 영지의 기호를 '도덕적 차원의 기호', '도덕적 차원에서 생겨나는 영지의 기호'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위 서적과 교과서의 표현들을 참고했을 때 정약용은 영지의 기호를 '선한 기호', '맹자의 성선설을 계승하는 근거가 되는 기호', '도덕적 기호', '도덕적 차원의 기호'로 간주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로부터 정약용이 영지의 기호를 '선한 기호'로 보았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습니다.


정약용이 직접 저술한 원전에서도 영지의 기호를 선한 기호로 언급한 부분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천명지성도 기호로 말할 수 있다. 사람이 태어날 때 하늘이 영명하고 형상이 없는 실체를 부여하는데, 그것은 선을 즐거워하고 악을 미워하며 덕을 좋아하고 모욕을 부끄러워한다. 이것을 성이라고 하고, 이것을 성선이라고 한다.
- 정약용, <중용자잠> -


따라서, 영지의 기호가 선한 가능성을 의미할 뿐 선한 것은 아니라는 인강 강사와 유튜버의 해설은 틀린 것으로 보입니다. 정약용이 '가능성'이라는 의미에 초점을 두어 설명한 부분은 성기호설보다는 자주지권, 권형 개념에 있습니다.


정약용이 주희의 성리학보다 인간의 善을 비결정적인 개념으로 설명하는 경향이 있기는 합니다. 이러한 경향 때문에 맹자의 성선설에 위배되는 것이라는 비판도 받습니다. 하지만, 정약용은 영지의 기호라는 개념을 통해 자신이 맹자의 성선설을 계승하고 있다는 입장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으며, 선한 영지의 기호와 악으로 흐르기 쉬운 형구의 기호 중에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자주지권'의 개념을 새로 도입하여 인간 행동의 책임 소재와 공과를 명확히 하려고 한 것입니다.


성을 기호로 규정하는 다산의 입장은 성을 선천적인 선(善) 결정론적 관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선의 실천 문제에 있어서 마음의 자율성(自律性)을 인정하는 바탕이 되고 있다. 만약 성이 선으로 결정되어 있다면 도덕판단과 실천의 문제에 있어서 마음의 자율성은 성립할 수 없다. 따라서 마음의 경향성이라는 비결정적인 특성의 성기호는 마음의 자율성을 가능케 하는 전제 혹은 토대라고 할 수 있다.
- 이영경, 한국사상과 마음의 윤리학 -


인간은 본성적으로 선을 좋아하지만, 실제로는 악을 행할 수도 있다. 인간은 실제로 선도 악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것은 인간의 권능이기는 하지만 성은 아니다. 만약 그것이 성이라면, 선을 행하든 악을 행하든 본성을 따르는 것이므로 인간의 책임이 아니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선택은 인간의 책임이다. 그러므로 그 능력은 인간의 선택가능성을 말할 뿐이지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정약용은 강조한다.
- 한자경, 한국철학의 맥 -


주희(善 결정론적 관점): 인간의 본성은 본연지성으로 인해 선하도록 결정되어 있음 → 인간은 이와 기로 구성된 존재이므로 인간의 기질, 사욕 등으로 인해 악한 행동을 할 수 있음

정약용(善 비결정론적 관점): 인간은 신형묘합(정신+육체)의 존재이므로 선한 영지의 기호와 악으로 흐르기 쉬운 형구의 기호를 가짐 → 자주지권을 통해 영지의 기호와 형구의 기호 중 선택함으로써 선한 행동을 할 수도 있고 악한 행동을 할 수도 있음


정약용은 자주지권 개념의 도입을 통해 본성에 대한 비결정론적인 관점을 더욱 강화하고 있으며 인간의 선행을 '결정'의 관점에서 설명하기보다는 '가능성'의 관점에서 설명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이 영지의 기호를 '선한 본성'으로 볼 수 있다는 설명과 양립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자주지권으로 인해 선한 본성인 영지의 기호를 제쳐두고 악으로 흐르기 쉬운 본성인 형구의 기호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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