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네 탓은 안한다 나는 관대하니까
나의 어머니는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육상 선수로 활동했었다. 체형이 다부져서 육상을 시작하신 건지, 육상을 하다 보니 튼튼해지신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무튼 어머니의 하체는 항상 두툼했다. 환갑이 지난 지금도 어머니의 다리는 굉장히 두껍다. 어머니 당신이 운동에 소질이 있고 그걸 자랑스러워하시는 것과 별개로, 어머니는 어머니의 두툼한 하체를 그대로 물려받은 나에게 미안함을 느끼셨던 것 같다. 내가 무릎 위 길이의 치마를 입거나 다리 선이 드러나는 바지를 입었을 때마다 어머니는 크게 웃으며 "아이고 튼실한 다리 좀 봐."와 같은 말들을 하셨다. 그때마다 나는 "다리가 튼튼해서 정말 좋아!"쪽의 감정보다는, "어머니 닮아서 그런 거잖아요."쪽의, 약간 반항하는 마음이 더 많이 들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지금은 내 하체나 몸에 대해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건강하게만 유지하자라는 주의여서, 콤플렉스랄 건 없지만 결혼 전에는 내 하체와 다른 이들의 하체, 모델 같고 연예인 같은 몸에 대해서 큰 동경과 관심을 가지곤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다리만 보였다. 와-저 사람은 날씬해서 좋겠다- 와- 저 사람은 나보다 다리가 더 크네-따위의 생각을 거의 항상 했다. 왜 그랬었는지 원인이 뭔지 개인사를 들여다보자면, 앞서 말한 어머니와 가족들의 내 몸에 대한 태도를 하나의 예로 들 수 있겠고 또 하나의 사건은 초등학교 때의 일인 것 같다. 서른이 훌쩍 넘은 지금도 나는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내가 초등학교 5-6학년 때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놀이 중에 '햄버거 놀이'가 있었다. 대여섯 명이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바닥에 엎어지고, 또 그다음 진 사람이 엎어지고, 이런 식으로 무게로 아래 있는 사람들을 누르는 놀이였다. 당시 초등학교 바닥은 왁스로 닦아내는 나무 마루여서 학교에서는 못하고 친구네 집에 놀러 갔을 때 가끔 했던 기억이 난다. 어느 친구네 집에서 햄버거 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내 위에 얹어진(?) 한 남학생이 "아 ***(내 이름) 엉덩이 완전 커."라는 말을 했고, 당시에는 깔깔 웃으면서 그 자식의 등짝을 후려쳤던 것 같다. 그땐 별 생각도 없었고, 당연히 그 아이도 희롱을 하려 했다거나, 나쁜 의도로 말한 건 아니었겠지만 지금도 그 생각이 나는 걸 보면 뭔가 충격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중학생이 되고, 사춘기를 맞이하며 나는 "다리가 굵은 아이"로 나 자신을 정의 내렸다. 짧은 치마가 예뻐 보이고, 입어보고 싶어도 긴치마를 사고, 자꾸 가리고, 덮었다. 내가 내 몸을 보고, 생각하고, 긍정하기 훨-씬 이전에 이미 우린 부정적인 평가들로 우리의 생각을 채워나간다. 그게 가족의 영향일 수도 있고, 미디어의 영향일 수도 있고, 친하게 지내는 친구나 연인의 영향일 수도 있다. 그렇게 나는 가족들 앞에서 "나는 다리가 왜 이렇게 굵은 거예요?" 하며 울기도 하고(사촌동생들도 한심하게 날 쳐다봤었던 기억이 난다.) 옷을 입을 때 상대적으로 가늘었던 허리를 더 부각하는 등 콤플렉스 속에서도 어찌어찌 부단한 노력들을 했다.
나와는 다르게, 남편의 부모님은 외모에 대한 어떤 평가를 하지 않는 분들이셨다. 남편은 자라면서 살이 어떠네, 얼굴이 어떠네, 잘생겼네 못생겼네 키가 크네 작네 뭐 이런 이야기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남편은 오랜만에 친정에 갈 때마다 나를 보며 "우리 딸 살쪘네!"라고 말하는 우리 어머니에게 뭐라고 했다. '**(내 이름) 외모 지적하지 말라'라고. 어머니는 사위의 눈치를 봤다. 아마 그때쯤인 거 같다. 내 마음속, 더 크게는 내 삶 속 한편에 자리하고 있는 '하체 콤플렉스'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한 게. 남편은 내 몸의 어떤 상태도 긍정해주었고, 평가를 내리지도 않았다. 아무렇지 않게 말해주는 단 한 명의 존재로 나의 콤플렉스는 산산이 부서졌고 사라졌다.
자신의 신체를 부정하는 것이 사춘기에 겪는 자연스러운 하나의 과정일 수도 있지만, 지금 이 시대의 아이들에게는 아예 선택권 자체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의 시작을 찾으려면 대체 어디까지 거슬러가야 할지 도통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론 대부분의 콤플렉스는 타인에 의해 생기는 것 같다. 너의 다리는 이러해, 너의 얼굴은 이러해, 너의 몸은 이러해- 등등. 어쩌면 가족이니까 더 아껴주고 신경 써준다는 명목 하에 더 상처를 주는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평가를 그치고 자신의 몸을, 서로의 몸을 긍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