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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Mar 04. 2020

이렇게도 산다

 나는 아침잠이 많다.


 어머니의 말로는 아주 어렸을 때, 진짜 진짜 아기 때부터 밤잠이 없고 아침잠이 많았다고 했다. 덕분에 매일 밤 잠을 설쳐야만 했던 아버지는 "갖다 버리라"는 말을 했다고도 한다. (뭐 물론 당연한 얘기지만 현재 나의 아버지는 나의 가장 큰 지지자이자 버팀목이다.) 새벽형 인간이 근면 성실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는 이 시대에, 아침잠 많은 나 같은 사람은 어딘가 게으른 사람 같아 보이기도 한다. 끝없는 고요함과, 우리를 솔직하게 만들어주는 어두움, 동틀 녘에 대한 예정된 희망 같은 것들이 새벽에는 넘치게 흐른다. 그래서 나는 새벽이 좋다. 나는 나를 '조금 다른 의미의 새벽형 인간'이라고 명명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결혼 전에는 보통 새벽 2시까지 영화도 보고, 글도 쓰고, 책도 읽고 했다. 어째서인지 30대가 지나니 아무리 늦게 자도 9시쯤이면 눈이 떠졌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나서는 8시쯤 출근하는 남편의 일정에 함께하고 싶어서 7시 반쯤 일어난다. 남편은 먼저 일어나 세안을 하고 머리를 감는다. 건조기에 남아있는 세탁물들을 개고 정리한다. 내가 맞추어둔 알람과, 남편의 인기척에 깬 나는 잠을 떨쳐보려 노력한다. 왼쪽으로 구르고 오른쪽으로 구른다. 힘겹게 허리를 세워서 침대에 앉아서 고개를 몇 번 돌리고 기지개도 편 다음 어두운 방을 떠나 빛을 향해서 나간다. 남편은 내가 억지로 깰까 봐 우리가 자는 방의 불을 켜지 않고 거실의 불을 먼저 켠다.


 나는 원래 아침밥을 열심히 먹지 않기 때문에 보통은 남편 혼자 소소한 아침을 먹는다. 뭘 먹진 않아도 나는 그냥 옆에 앉아있다. 우리는 그날 예정된 일들에 대해 얘기한다. 공방에 찾아올 손님, 전날의 뉴스거리들, 밤새 어떤 꿈을 꾸었는지 등. 아침 식사로는 누룽지를 끓이거나 요구르트와 과일을 먹거나 굶을 때도 있다. 대중 매체에서 보이는 엄마/아내의 모습들- 예를 들면 통통통-소리를 내며 도마에 무언가를 썰고, 국을 끓이고 고소한 냄새로 아이들과 남편의 아침잠을 깨우는- 그런 것들과는 아직 나는 많이 거리가 멀다.


식사를 마치고 남편은 옷을 입고 나갈 채비를 한다. 나는 날씨가 어떤지 살피고 '어떤 옷을 입고 나가면 좋겠다'는 작은 조언을 건넨다. 남편은 함께 고른 옷을 입고 출근한다. '사랑해'라던지 '오늘도 파이팅'과 같은 말들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하루가 안녕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인사를 나눈다.


남편이 출근한 뒤에 나는 세탁기를 돌리거나, 설거지를 하거나, 햄스터의 상태를 살피고 밥을 주고, 뉴스를 본다. 배가 너무 고프면 나도 식사를 한다. 아침 시간을 굉장히 생산적으로 보내고 싶었는데 뭔가를 규칙적으로 하는 게 쉽지가 않아서 주로 집에서 해야 할 일들을 한다. 읽고 싶은 책과 수첩을 들고 인스타그램에서 봐 두었던 카페에 가기도 한다. 내가 얼마나 멋진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사진도 꼭 남긴다. 행복감이 벅차오를 때에는 인스타그램에 올리거나 남편에게 사진을 보내거나 동생에게 자랑을 한다.


점심때쯤 나는 공방 문을 연다. 


공방의 특성상 손님이 매일 있거나 자주 방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공방에 도착하면 문을 30분 정도 열어두어 환기를 한다. 컴퓨터를 켜고 실시간으로 재즈 음악을 틀어주는 영상을 재생한다. 왠지 모르게 공방에 노래를 틀어두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느낀다. 괜히 포트에 물을 끓인다. 집에서 커피를 마시고 왔어도 공방에 오면 꼭 또 커피가 마시고 싶다. 물이 끓으면 환기를 위해 열어둔 문을 닫는다. 이렇게 하다 보면 보통 점심시간이 되는데, 햄버거를 배달시켜 먹거나, 과일을 먹거나, 컵라면과 김밥을 먹거나 가끔 근처 초밥집에서 회덮밥이나 가츠동을 시켜먹기도 한다. 공방엔 자잘한 할 일이 많다. 소진된 재료들을 구매하거나, 손님들의 문의를 받거나, 판매할 제품 사진들을 찍는다. 예약된 고객들이 내방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날은 시간이 잘 간다. 공방의 위치가 좀 특이해서 저 멀리 500m 앞에서부터 어떤 차가 올라오는지, 어떤 사람들이 걸어오는지 다 보인다. 해가 잘 들어 낮에는 커튼을 쳐 둔다. 저 멀리 보이는 풍경이 좋다. 재즈를 들으며 창밖을 바라보면 창 한쪽이 거대한 텔레비전 같다는 생각을 한다. 모두가 주인공인 프로그램이 하루 종일 재생된다.


해가 질 때 즈음해서 나는 공방 문을 닫고 영어를 가르치러 간다. 수업에 가면 학생의 할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신다. 학생의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셔서 주간엔 아무도 없기 때문에 할머니 댁에서 공부를 한다고 했다. 물론 어머님들도 따뜻하고 친절하시지만 할머님들이 맞아주는 집에 가면 뭔가 더 애틋하다. 손주들이 공부하는 걸 그저 좋아하신다. 덕분에 나도 많이 좋아해 주신다. 나는 학생들을 '친구'라고 부르며 함께 공부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너무나도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무한한 가능성으로 가득 찬 아이들의 미래가 너무나도 기대된다. 나는 아이들에게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누구든 될 수 있다'라고 말한다. 나는 아이들이 한계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행복을 누리면서 자신의 모습 그대로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다.   


수업이 끝나면 나는 집으로 돌아온다.


여느 가정과 마찬가지로 집에 돌아오면 저녁 식사 시간이 된다. 요리를 하거나 배달 음식을 시키거나 내가 오전에 끓여놓고 간 국이나 음식을 데워 먹는다. 원래는 밥을 간단하게 먹고 싶었는데 오랜만에(?) 모인다고 생각하니 저녁 식사 시간이 만찬처럼 되어버려서 자주 과식을 한다. 고기도 굽고 국도 끓이고 디저트도 먹는다. 덕분에 나는 결혼하고 거의 7킬로그램이 쪘다. 


식사 후 눕는 게 버릇이 돼서 '뭐라도 해보자!' 하는 날에는 조금 멀리 산책을 가거나, 마트로 장을 보러 가거나, 펌프를 하러 오락실에 간다. 둘 다 운동도 좋아하고 걷는 것도 좋아하는데 이상하게 자꾸 눕는다. 적어도 먹은 건 소화시키고 자자는 마음으로 동네를 한 바퀴 삥 돈다. 요일마다 우리 부부가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이 있는데 나란히 앉아서 누워서 보다 보면 금방 잘 시간이 된다. 침대에 누우면 오늘도 대충 산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아무것도 안 한 느낌이 든다. 그냥 자는 게 아쉬운 어느 새벽에는 침대에서 빠져나와 책을 읽는다. 일기도 쓴다. 조금은 더 생산적인 사람이 된 것 같다. 


Sonnet 19 by John Milton

When I consider how my light is spent, 
 Ere half my days, in this dark world and wide, 
 And that one Talent which is death to hide 
 Lodged with me useless, though my Soul more bent 
To serve therewith my Maker, and present 
 My true account, lest he returning chide; 
 “Doth God exact day-labour, light denied?” 
 I fondly ask. But patience, to prevent 
That murmur, soon replies, “God doth not need 
 Either man’s work or his own gifts; who best 
 Bear his mild yoke, they serve him best. His state 
Is Kingly. Thousands at his bidding speed 
 And post o’er Land and Ocean without rest: 
 They also serve who only stand and wait.”                                                                                                                    
소네트 19 
나의 빛이 어떻게 다하였는가를 생각해 볼 때
                      - 존 밀턴이 실명했을 때 쓴 시-

삶의 반을 살기도 전에 이 어둡고 넓은 세상 속에서
나의 빛이 어떻게 다하였는가를 생각해 볼 때
감추어 버리면 쓸모 없어져 버리는 한 달란트로
나의 주인이 돌아왔을 때 꾸짖지 않도록
그분을 섬기기 위해서 나의 고백을 준비하는 일에 
나의 영혼을 쏟아부었지만 
이제는 아무 쓸모없는 것이 되었음을 생각할 때
나는 어리석게 물었다.
'하나님은 빛을 주시지 않고 일만 시키시는가?'
하지만 내 인내가 불평을 가로막고 대답했다.
“하나님은 사람의 일이나 그의 재능이 아니라 
 그분의 가벼운 멍에를 잘 참고 견디는 자를 원하신다.
 그것이 가장 그분을 잘 섬기는 것이다.
 그의 나라는 장엄하다. 수천의 천사들이 그분의 명령에 따라 
 쉴 새 없이 땅과 바다를 달려 그분의 말씀을 전한다.
 가만히 서서 기다리는 자가 또한 그분을 잘 섬기는 것이다."(조신권 역, 김민주 다듬음)


내가 이 세상에 어떤 거대한 업적을 이루기 위해 왔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이렇게 소소하게 살아도 되나 싶은 생각도 든다. 몸을 최대한 길게 늘였다가 또 금방 접어버리는 애벌레 같다고도 생각한다. 어느 날은 내가 가장 멋지고 좋은 사람 같다가도, 또 어느 날은 너무 작고 하찮은 먼지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인생에 답이 없다는 것, 이 하나는 확신한다. 일단 내가 져야 할 이 "가벼운 멍에"(10)를 잘 져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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