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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May 04. 2020

인자무적의 딜레마

영원히 고통받는 인자

 나는 예민한 편이라서 화가 잘 나고 눈물도 잘 난다. 그렇지만 막 대놓고 표출하지 않는 편이다. 어떤 사람이나 사건에 보통 화가 나는데, 막 내지르고 던지고 팔짝팔짝 뛰고 엎어버리고 싶은 충동은 여러 번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그걸로 뭐가 달라지거나 좋아지거나 할 게 없었기 때문이다. 화를 위한 화를 내고 싶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보통은 가족들에게 감정을 가득 실어 얘기하거나 일기를 쓰면서 내가 대체 왜 이렇게 화가 났으며 해결책은 무엇인지에 대해 정리하는 편이다.


'인자무적'이라는 말이 있다. 어진 사람에게는 적이 없다는 뜻이다.


남편이 남자 친구였던 시절, 그의 가훈이라고 했다. 꽤 멋진 말이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렇게 살아야겠다는 결심은 변함없다. 그렇지만 삶을 살면서 내 마음 같지 않은 상황들을 자주 마주했다. 나의 진심이나 말이 왜곡되고, 나의 친절이 호구 짓으로 변모하고, 나의 베풂이 당연한 것이 되어버리는 쓰라린 경험들로 나의 신념에 가끔 금이 가곤 했다. 내가 모르거나 바보라서 그런 게 아니니까 더 짜증이 났다.


태어날 때부터 인자가 아닌데 인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일단 뭐가 되려고 '노력'한다는 것 자체가 중력을 거스르는 일이나 마찬가지니까 당연히 쉬운 건 아닐 거다. 그렇지만 나는 좋은 것을 남기고 싶다. 또 한편으론 나를 괴롭게 하는 모든 것들에 시원한 욕 지거 릴 날리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싶다. 여기서 딜레마가 생긴다.


나는 왜 인자 프로젝트(?)에서 탈출하고 싶은가? 어쨌든 첫 번째 이유는 괴로워서. 난 그냥 말을 적게 할 뿐이지 착한 사람이 아닌데 결국 사람들에게는 착하기만 한 사람으로 보이니까, 내가 아닌 모습으로 사람들이 날 보는 게 너무 괴롭다.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까 봐, 그 사람의 전부를 내가 알지 못하니까 다 뱉지 않고 참고 있는 나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으로 보는 그 시선이 괴롭다. 좀 무심해지고 싶다. 맞아, 무심해지고 싶다는 말이 가장 적합하다. 너무 피로하다.


그렇다면 나는 대체 왜 인자가 되고 싶은가? 좋은 평판을 얻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다. 내가 막연하게 동경하고 존경했던 그런 어른처럼 되고 싶어서이다. 보통 화날 때 화내고 분노할 때 그대로 다 표출하면 결국 후회하는 건 나 자신 이어서다. 결국 더 큰 마음을 가지는 사람이 승자라고 생각해서다. 나보다 어린 이들에 대하여는, 호통보다는 인자함이 더 많은 반성의 기회를 준다고 믿기 때문이고 나도 부모님께, 선생님들께 그런 사랑을 받고 자랐기 때문이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한때-혹은 지금도- 견디기 힘든 존재였을 테니. 일종의 부채의식과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후배들을 괴롭히고 폭력을 일삼았던 전적이 있었던 사람들은 그게 뭐였던 간에 보통 잘 기억을 하지 못한다. 단순히 오래돼서 그런 건지 방어 기제가 작동해서 자신한테 해로운 과거들을 모두 지워버리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저지른 폭력에 너무 무심하고 안일한 태도다. '인자'가 되기 위한 과정도 당연 어렵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렇게 무심하게 사는 것조차 너무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타인에게 한 모든 말과 행동을 기억하고 사는 게 불가능하기도 하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어쩌면 자기반성이 없는 삶이야 말로 영원히 어른이 되지 '못하는'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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