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도 출근하고 아이도 어린이집에 간 시간, 나는 가장 무기력하다. 부정적으로 말하면 무기력한 건데 한편으론 가장 편안한 상태이기도 하다. 곧 두 돌을 앞두고 있는 우리 집 조그만 인간은 엄마 아빠가 뭘 하고 있는지를 항상 주의 깊게 관찰하기 때문에, 아기 앞에서는 마음껏 나태하거나 핸드폰만 하고 있을 수 없다. 그래서 혼자인 시간이 정말 중요하다. 누구의 엄마나 아내가 아닌 시간. 내가 특히 더 그런 건지는 몰라도.
하루종일 카톡으로 자잘한 이야기들을 계속 하긴 하지만 가끔 남편은 퇴근하고 돌아와 오늘 내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묻는다. 당연히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캐물으려는 의도는 아니겠지만, 그런 질문을 들으면 이분법적인 태도를 가지게 된다. 조금은 부끄럽고 움츠러들게 되는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하고 늘어져 있었어 나는 쓰레기야.’와, 나 좀 멋지지 않아? 느낌의 ‘오늘은 은행에도 가고 계절 지난 옷도 싹 정리하고 냉장고 청소도 하고 아기 반찬도 세 개나 하고 베란다도 깔끔하게 치워놨어.’ 같은 두 가지 답변이 놓여있다. 나는 임금 노동을 하지 않고 육아와 살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왠지 전자와 같은 답을 할 때면 나 자신이 초라해진다.(그 누구도 초라하라고 한 질문이 아님에도 하하)
결혼하고 느낀 건데 집안일은 정말 해도 티가 안 난다. 안 하면 너무너무 티 나지만. 가만히 두면 먼지가 굴러다니고, 변기와 세면대, 욕실 바닥에 물때가 끼고, 설거지가 쌓이고 베갯잇에서 냄새가 나고 냉장고에 새로운 물건을 둘 곳이 없어진다. 누군가는 해야 하고 우리 집의 경우에 그 누군가는 나다. 영어를 가르치며 임금 노동을 할 때는 가르치는 학생의 성적이 잘 나오거나 아이들과의 관계가 좋은데에서 보람을 느끼고 ‘나의 하루가 참 생산적이었구나’라고 생각했다면, 이제 바닥의 먼지 없음으로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느낀다. 그것이 참 우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