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글을 쓰는 지금도 무기력하다. 쉽게 의욕이 나지 않고 정말 해야 하는 것이 아니면 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그 무기력함에 조금이나마 균열을 내고 싶어 뭐라도 써보고자 컴퓨터 앞에 앉았다. 서른 일곱 해를 살아오면서 나 자신의 이런저런 변화를 너무 많이 봐 와서 이제는 대체 '나 다운 것'이 뭔지, '원래'가 뭐였는지는 도통 모르겠지만 상황에 따라 자주 변하고 더러는 고착화되어버리는 나의 일부를 보며 두려움을 느낀다.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신생아를 키우며 정말 후루루룩 2년여를 급하게 보내버렸다면,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녀 6시간 정도의 한정판 자유를 얻게 된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내가 무기력하고 무용하게 느껴진다. '나는 쓰레기야.', '이제 뭘 하면서 돈을 벌어야 되지?', '뭐라도 하고 싶어.' 등등의 쓸데없는 생각들로만 하루를 소비하고 있던 중에, 내가 6-7년 전 과외를 했던 학생의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저희 둘째가 8살인데 1대 1로 공부를 하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학원을 보내는 게 좋을까요?"
"**는(전에 과외했던 학생) 잘 지내고 있어요. 꼭 선생님 안부 전해드릴게요."
"아기가 엄마를 꼭 닮았네요! 카톡 프로필 사진 잘 보고 있어요."
"선생님같이 실력 있는 분이 집에만 계시니 아깝네요."
가끔 오래전 수업을 했던 학생의 어머님들로부터 전화를 받긴 하는데 이 전화는 특별했다. 누군가 나를 알아봐 준다는 기분에 우쭐하기도 했다. 전화를 건 어머님 입장에서는 별거 아니겠지만, 지금 나에게는 무엇보다 필요했던 말들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 내가 아직도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것. 남편은 나에게 항상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다 해보라고 말 하지만 남편의 칭찬은 어느 정도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ㅋㅋㅋ) 그 외의 대상에게서 칭찬을 듣는 게 좋았다.
가능한 한 최대치로 웅크리고 있지만 결국은 뭔가를 뿜어내고 싶다. 뻗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