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회사에 갔고 아이는 어린이집에 갔다. 나 혼자 보내는 여유로운 시간. 거국적으로다가 김밥도 말아서 제로 콜라와 함께 먹고 세탁기 돌리고 건조기도 돌리고 다 마른빨래를 꺼내 개어놓고 집 근처 마트에 갔다. 운동 중이긴 하지만 살이 너무 많이 쪘기 때문에 쇼핑몰에 가더라도 이것저것 구경은 하지만 내 옷은 잘 안 사게 된다. 오프라인 매장에는 빅사이즈 옷을 파는 곳이 많지 않고 지금 내 몸이 영구적인 상태라고 생각하지 않아서 예쁜 옷들을 보며 ‘나도 저런 걸 입었었지...’하는 정도로 지나친다.
자연스럽게 나의 발길은 아기 코너와 남성복으로 향한다. 아기가 먹을만한 과자나 새로 나온 간식들을 구경한다. 아기들은 쑥쑥 커서 맘에 드는 옷들을 다 샀다간 입히지도 못하고 보내줘야 하지만 괜히 아동복 코너를 한 바퀴 돈다. 이것도 이쁘겠다. 저것도 이쁘겠다. 괜히 아기 양말을 한 켤레 산다. 문득 남편의 말이 생각난다. 지금 입는 바지가 좀 덥다고 했었지. 적당한 바지를 찾아서 여러 번 돌아본다. 결국 아기 간식과 양말과 남편 바지를 두 손에 들고 집으로 온다.
이유식을 만들며 은근히 향상되는 칼질 실력에 엄마들이 거쳐간 과정을 내가 거쳐가고 있구나 생각한다. 이렇게 몇 년, 몇 십 년 하다가 나도 채를 잘 써는 사람이 되고 네이버 레시피를 안 봐도 요리 몇 개는 후다닥 해내는 ‘주부’가 되겠구나 생각한다. 아기를 낳고 육아를 전담하다보니 이전과는 다른 속도로 주부화 되어간다. 지금 현상에 대한 어떠한 긍정적, 부정적 평가를 떠나 지금 내가 새로운 변화의 한가운데 있다는 건 확실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