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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방이 Jan 25. 2023

소심한 아이, 자존감 높이기




    나의 콘텐츠의 알맹이는  32년의 자녀부터 25년의 자녀를 키운 엄마의 이야기다. 아이를 키우는 관점이 아닌, 아이의 중심으로 쓰인 한 아이의 이야기. 나는 우리 어머니의 스물다섯 살 막내딸이다. 어머니께서 요즘 자신 넘치게 하시는 이야기가 있다, “내는 소정이 32년에, 아인이 30년, 윤정이 25년이니깐! 다 합쳐서 87년 산 거나 다름없다 아이가?”. 신기한 수학적 능력을 겸비한 우리 어머니의 논리는 꼭 틀린 말씀은 아니셨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 그것도 ‘잘’ 키워내는 힘(力)의 수학적 완벽한 공식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삼 남매는 어머니의 논리에 반박하지 않지만, 능글맞은 첫째 언니는 그저 어머니를 놀리며, “그래요 우리 할머니 말씀이 다 맞아요”,라고 농담할 뿐이다.


    소심한, 낯을 심하게 가리는, 부끄러움이 많은, 새로운 사람들 앞에서 입을 꾹 닫는, 엄마에게 너무 의존하는 내 아이와 함께 살고 있나요? 이것이 걱정스러운 엄마는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성장시켜 주고자 책 혹은 타인의 경험을 찾으며 노력할 것이다. 엄마들의 경험을 들었다면, 다른 쪽 경험담도 들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엄마들은 모르는 방구석 모서리에 있는 아이의 시선이 담긴 이 글들이, 그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볼펜을 생각해 본 나_윤방>

볼펜을 바라보다 쓰인 시 한 편,



    나는 시를 쓰며 인생을 배워가는 소녀 같은 20대 중반 청년이다. 우리 어머니의 극심히 소심했던 아이가 자존감이 높아진 현재, 본 글을 쓰게 된 막내딸이다. 잠시 위의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나의 취미는 젊은 시인으로서의 삶이다. 세상을 지나다니다 나의 눈에 띄는 '별것 아닌' 소재를 '별것'으로 만들어 시 속에 담는 것이다. 이러한 취미를 가지게 된 이후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특별한 정서로 뒤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삶의 흔적을 뒤돌아보니, 어머니를 닮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초, 중, 고등학교 시절 나는 소심이 중에서도 가장 소심한 아이였다. 지금과 비교하자면 100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연극배우로 당당히 나를 뽐낼 수 있는 인간으로 바뀐 게 가장 큰 변화다. 나의 소심이 이력을 살펴보자면 이러하다. 남들이 사소한 질문 하나를 던져도 울음까지 번지던 아이. "어디 가고 싶어?"... (눈물 발사!)

    나의 어린 시절 특징은 내게 관심보이는 사람을 울음 가해자로 만들어 버리기다. 소심한 아이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싫은 마음 때문에 숨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고 싶고, 당당하게 발표도 해내고 싶고, 언제든지 웃고 싶지만 내성적인 성향이 그것을 방해하여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 때문에 숨어버리게 된다. 내성적인 성향이 우연히 나의 욕망을 이처럼 방해하게 된다면, 아이에게는 '자기혐오'가 찾아온다. 그렇게 얻게 되는 아이의 방법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걸 선택해 버린다. 자신이 더욱 자신을 통제하는 것이다. 그렇다. 소심한 아이에게는 소위 말하는 '번아웃'을 경험하게 된다.






    번아웃이 찾아온 청년들과 어른들은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며 살아갈까? 친구와 만나 노는 것. 술 한 잔 기울이며 속마음을 나누는 것. 취미활동을 통해 잡념을 잊는 것. 책을 읽거나 활동적인 변화를 주는 것. 여행을 가는 것. 자신이 무엇 때문에 힘든 것인지 직면하고 해결방법을 찾아내는 것. 등 

    번아웃이 찾아온 소심한 아이는 그것을 어떻게 해결하며 살아갈까?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인생에 대한 경험도 없을뿐더러, 주변과 자꾸 비교하는 나는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할 줄 아는 것도 이렇게 없었는데, 나를 더 위축하게 만드는 것은 도전력과 실행력이 현저히 낮았다는 부분에 있었다. 



소심한 아이

도전력과 실행력


    그렇다. 아이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처음' 마주하는 상황이 '많은' 시기이다. 이런 나이의 시기에 소심한 아이는 도전하는 걸 무척이나 두려워한다. 나의 일화를 살펴보자면,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도 굉장한 두려움을 느낀다는 점이었다.

    <짜장면을 시키는 것도 두려운 아이>_우리 가족은 나의 소심한 성격을 가장 옆에서 잘 지켜봐 왔다. 집에 들어오면 가장 나스럽게 보이던 아이가 조금만 타인과 마주하면 작은 콩! 이 되어버리는 내성적인 성향. 어느 날 조금씩 마주하길 바라던 내 어머니께서 나름의 작전을 펼치셨던 일화가 있다.

    어머니는 온갖 집안일을 바쁘게 하셨고, 거짓말처럼 언니와 오빠에게도 바쁘게 무언가 심부름을 시키더라. 그때 소심한 막내인 내게 주문을 건다. 언니 오빠 엄마가 바쁘니깐 짜장면 좀 시켜달라고. 나는 의심의 여지없이 잘 넘어가버렸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마주한 채, 종이에 천천히 곱씹으며 무언가를 쓴다.

    '짜장면 세 개, 짬뽕 하나...' 아니지, '짜장면 세 그릇, 짬뽕 한 그릇, 탕수육 큰 거 한 그릇?' 아니야 아니지, '짜장면 세 그릇, 짬뽕 한 그릇, 탕수육 大자 한 개. 주소는 경상북도... 성주군...' 이렇게 열심히 아주 열심히 주문대본을 완료하고 전화를 걸 수 있게 된다. 전화도 단번에 걸지 못한다. 어머니가 아직도 바쁘신지 확인하고, 눈치를 보다가 겨우 끝끝내 전화 버튼을 누른다. 그렇게 전화음을 들으면 내 심장은 리듬에 맞춰 바삐 뛴다. 바쁘고 거센 사장님과 통화를 할 때, 대사대로 말하지 못하고 거의 울먹거리는 채로 짜장면을 주문하는 아이.

    그렇게 가족이 모여 아이가 시킨 저녁을 먹게 된다. 작전에 성공한 듯 뿌듯한 어머니는 아이에게 말한다. "거 봐라! 이런 건 별 거 아니 제이~?" 아이는, "아니요..." 물론 내게는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소소한 미션은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어머니는 소심한 아이에게 맞춰가며 아주 작은 것부터, 천천히, 도전력을 스스로 가지게 해 주었다.


    우리 어머니는 소심한 아이에게 큰 걸 바라지도 않았을뿐더러 평범한 것도 바라지 않았다. 아주 아주 작은 것부터 아주 천천히 스며들게 하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란 아이가 참 답답했을 텐데, 어머니의 통찰력은 대단할 뿐이었다. 언니와 오빠는 나를 당연스럽게 답답하게 여겼다. 물론 그들도 나를 너무 예뻐하고 사랑했던 것은 분명했지만, 내가 답답하게 굴었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소심한 아이에게 가장 힘든 순간은, 자신 때문에 답답해하는 타인의 반응을 마주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타인이 현재 스스로를 답답해할 것이라는 상상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답답한 자신을 가장 잘 알게 되고, 가장 싫어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현재 20대 중반에 들어서 소심이를 탈피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된 가장 큰 영향력은 '어머니의 힘'이다. 


    어머니께서는 결코 나를 답답해하지 않았으며, 사소한 것부터 아주 천천히 기다려주셨다. 그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어른이 되어 자신만의 해결비법을 경험해 본 사람일수록 훈수두지 않고 기다린다는 것.

    얼마나 천천히 기다려주어야 하는지, 얼마나 조용히 아이를 도전의 바다에 수영시킬지, 어떤 교류가 소심한 아이에게 영향을 미칠지. 아주 개인적이고도 간단한 나의 이야기, 아니 나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앞으로 끄적여 보기로 결심했다. 왜? 세상에 많은 소심이 들을 위해서. 세상에 많은 소심이를 둔 엄마들을 위해서. 그리고 내 어머니께 너무 감사한 마음을 자랑하고 싶어서. 어머니를 향한 편지가 이리도 긴 글을 쓰게 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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