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더 이상 손 잡을 수 없는 우리 아빠

<여기, 편지한통 굴러다닙니다_1편>

by 윤방이

To. 더 이상 손 잡을 수 없는 우리 아빠


6년쯤 전부터 혼자 있을 때 달을 보면 아빠 생각을 하곤 해. 어딘가에 존재할 것만 같은 기운과 달무리의 기운은 비슷한 감각인가 봐. 중학교 때 파란색 트럭만 보면 괜히 긴장했었어. 혹시 아빠가 트럭을 이끌고 와서 내가 보고 싶어 왔다며 갑자기 인사할까 봐. 친구들이랑 놀이터에 놀고 있을 때 몰래 찾아와 나를 살펴보고 갈까 봐. 문득문득 혼자만 몰래 긴장해. 더 밝게 놀기도, 더 성숙하게 행동하기도 했지. 아빠가 어느 날 찾아올 것 같은 느낌으로.

아빠는 어느 날부터 오지 않았어. 어머니가 난처할까 봐 묻지도 않았어.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 했던 수많은 부자연스러움이 나를 둔하게 만들었어. 아빠를 충분히 그리워해도 되었는데, 아빠를 만나고 싶다고 떼써도 괜찮았는데, 그런 흐름들이 나의 성격이 되더라. 둔감하게. 나의 감정이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아니 되니 그저 아무 일도 없는 척.

성인이 되어가며, 언니와 더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게 될 때부터 드디어 아빠 이야기를 하는 거야. 실은 아빠트럭이랑 비슷한 게 지나가면 괜히 기대해 봤던 순간, 혹시 아빠가 보고 있을까 봐 친하지 않던 친구들과도 더 즐겁게 뛰놀았다는 순간들을 말이야. 놀랍게도 언니도 그랬대. 언니야도 아빠가 혹시 갑자기 와서 볼까 봐 의식해 본 순간이 있었대. 혹시 아빠인가 괜히 슬쩍슬쩍 보게 되는 아저씨가 있었대. 오빠랑은 이야기를 잘 못 나눠봤어. 아빠가 사진만 남기고 가셨을 때, 우리 오빠가 제일 많이 울었거든. 그래서 오빠는 나중에, 조금 더 나중에 이야기해 봐야 할 것 같아.


나는 어릴 때보다 많이 밝아졌어 아빠. 아마 연기를 시작하고, 글을 쓰고, 표현이라는 걸 내뱉어야 하는 꿈을 꾸기로 작정한 뒤부터 기하급수적으로 변화하더라고. 그렇게 나는 나의 감정으로 인해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은 여전히 싫었지만, 나의 웃음과 내가 표현하는 세상에 대한 비유가 남에게 좋은 작용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래서 많이 웃어. 웃기 힘들 때도 종종 찾아오지만, 그래도 자주 웃어지는 것 같애. 내가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행복한 웃음을 짓는 모습, 아빠가 만약 봤으면 정말 좋아했을 거야. 막내딸이 웃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여쁘다고 꼬옥 안아줬을 거야 그치?


아빠를 다시는 볼 수 없고, 우리 가족 한 명 없이 아빠 홀로 살아가셨다는 사실이 내게는 여전히 쓰라려. 폐와 심장을 누가 꼬집듯이 가끔 따가워. 자랑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은데, 나도 괜히 다 컸다는 듯 아빠한테 읊어주고 싶은 시도 너무 많은데. 그리고 듣고 싶은데. 아빠가 어떻게 지냈는지, 혹시나 정말 가끔 몰래 우릴 보러 왔었는지, 못 왔다면 왜 그랬는지 너무 궁금해.

아빠, 내가 아빠를 기억하고 상상하고 추억하는 이 시간이 너무 아프고 미안하지만 또 다른 의미로는 아름다워. 당신이 없는 이 세상에서 당신을 떠올리는 당신의 작은 아기가 '진짜 살아있음'을 느끼는 게 아름답달까. 난 이런 이상한 취미를 가진 아이로 자랐어. 생명의 소중함, 작은 것의 큰 의미, 큰 것의 작은 부위, 섬세한 것의 거친 면, 거친 것에 돋아나는 작은 사랑. 그런 감각들을 탐구하고, 상상하고, 표현하며 사는 이상하고 좋은 아이로 자라나는 중이야.


내가 최근에는 꿈을 잘 안 꾸는 타입이라 사람들은 부러워하는데, 한 번씩 특별 이벤트로 꿈에 나와줘 볼래? 아니다, 내가 불러볼게! 열심히 아빠를 기억하고 하고 싶은 말들 준비해서, 아빠를 외쳐볼게. 내가 혹시나 낯설어하면 예전처럼 손 잡고 숯불바베큐 먹으러 데려가 줘. 그때 분명히 숯불바베큐였거든? 그 지코바같은 치킨집! 근데 언니야는 그냥 후라이드였대. 이상해. 나는 숯불바베큐 냄새 맡으면 분명히 확신이 드는데 말야. 아빠 혹시 기억나면 꿈에서 알려줘. 내가 틀렸으면 언니 치킨이라도 사줘 볼게!


그리고, 이 말을 한 지 되게 오래됐네. 사랑해. 덧붙여서, 많이 그리워. 보고 싶고, 미안해. 함께 웃었다면 더 좋았을 거야. 고마워, 태어나게 해 줘서.




From. 윤방

나 김윤정으로 지어줬는데 미안, 나 윤방이라는 별명을 너무 좋아해.

아빠도 보고 있지? 달무리를 통해서, 사람들이 나를 윤방이라 부를 때 활짝 웃고 있는 모습 말이야.




<여기, 편지 한통 굴러다닙니다>_이미지 생성 chat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