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브런치를 통해서 소심한 내가 주체적인 삶을 지낼 수 있게 된 이야기를 쓰고 있다. 나의 방법이 아닌 어머니의 방법을 기준으로 말이다. 본글은 어머니께서 능숙히 대하셨던 방법이 아닌, 소심한 아이의 속마음에 대해 면밀히 풀어내고 싶어 쓰기 시작하였다. 세상살이에서 구석으로 웅크리는 많은 소심이 들을 위하여.
번아웃이 무엇일까?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자면, 어떠한 활동이 끝난 후 심신이 지친 상태. 과도한 훈련에 의하거나 경기가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아 쌓인 스트레스를 해결하지 못하여 심리적ㆍ생리적으로 지친 상태이다. (출처_naver 국어사전) 비슷한 단어로는 '탈진'이 있다.
과한 스케줄, 무리한 프로젝트, 지나친 활동 등 뒤에 몰려오는 상태가 될 수 있겠다. 그리고 지나칠 정도의 활동기간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찾아오기도 한다. 특히 요 근래 몇 년 사이에 번아웃이라는 단어는 더욱 사람들 입에서 오르고 있다.
무리할 정도로 마음(생각)을 쓰는 경우에도 번아웃이 쉽게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나의 마음에 대한 상처나 신경 쓰일 일이 생기면 마음의 활동이 급격히 피로해진다. 그리고 찾아온다, 번아웃이.
소심한 아이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감이 없음이다. 무슨 일을 도전할 때, 발표를 하게 될 때,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 원하는 것을 요구할 때 등. 무수한 상황 속에서 자신감이 없는 순간들을 마주해야 한다. 자신이 잘 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아이는 아주 작은 상황에서조차도 스스로 잘 해내지 못하는 경험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주눅 들어버린다.
아이를 연상시키는 키워드가 무엇이 있을까? 순수함. 단순함. 우선 이 두 가지 키워드를 보자. 대게 아이들은 순수하고 단순하다. 어떤 아이가 (1) 우연한 상황 속에서 잘 해내지 못함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 아이의 우연한 상황은 쌓여간다. 아이는 잘 해내지 못하는 (2) 자신의 체면을 느낀다. 그렇게 아이는 해본 적 없던 것도 두려워하게 된다. 아이는 어찌 될까? 순수하게 자신의 못난 모습을 직면하게 되고, 단순하게 스스로의 모습을 싫어하게 된다. (3) 끔찍한 속도로 소심해진 아이는 웅크리게 된다.
소심한 아이에게 우연히 쌓이는 불편한 상황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너무 사소해서 다소 터무니없을 수 있다. 하지만 아이이기에. 이 세상을 처음 살아가는 아이이기에, 어른이 되기 직전인 내가, 아직 따끈따끈한 나의 상황들을 붙여가며 나열해 보겠다.
<친구들의 장난>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사건이다. 아이가 베스트프렌드라는 개념에 이제 막 이해하기 시작할 때, 함께 놀게 되는 모든 친구들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친구를 사귄다는 신기함과 나와 비슷한 사람과 놀 수 있다는 설렘. 그 사이 이루어지는 장난과 농담. "너는 못생겼잖아." "왜 이렇게 뚱뚱하냐?" "노래를 왜 그렇게 부르냐!" "너네 집은 이런 거 없지?" 등. 실제로 이런 사소한 말들이 상처가 되는 이유는, 그 말을 곱씹어 생각했을 때 아이가 더 잘하고 싶은 욕구와 충돌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예뻐지고 싶고, 노래도 잘 부르고 싶고, 신기한 물건을 소유하고 싶은 등의.
<타인에 대한 조심성> 돌이켜보면 나는 참 많은 사람들을 부러워했다. 내가 잘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기에. 나는 막내였기 때문에 언니, 오빠의 모습이 모두 부러웠다.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 웃고 떠들 때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도. 그래서 집에서는 나도 꽤 어울리는 사차원 여동생이었다. 그러나 매일 붙어있는 가족에게 대하던 모습을 나를 쉽게 평가하던 친구들에게 똑같이 뽐낼 수 없었다. 조심성이 생긴 것이다. 그 뒤부터는 나를 온전히 보여줄 수 없었다. 그래서 당당한 친구를 보면 진지하게 부러워하곤 했다. 나도 집에서 저럴 수 있는 데에 대한 아쉬움까지도 생겨난다.
<생각지 못한 나의 모습> 소심한 아이의 결정적인 순간이 있다. 소심한 아이도 위에 말했 듯 잘하고 싶고, 잘할 수 있다는 마음도 있다! 그러나 굳게 먹은 결심 뒤, 직면하게 된 나의 낯선 모습으로 인해 결정적인 소심이가 되어버린다. 어떤 날, 발표담당이 되던 초등학생 시절이었다. 조사도 마구마구 해내고, 발표 준비도 열심히 했던 나는 이 날만큼은 제대로 된 나의 멋진 발표를 보여주고자 했다. 이미 뇌에 풀가동 시킨 발표 시뮬레이션은 모든 반친구들의 박수와 찬사를 듬뿍 받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 앞에 서는 게 너무 부끄럽고 쑥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간과한 채, 얼굴은 토마토에 입은 꾹 닫혀버렸다. 그렇게 공식 소심이가 된 것이다. -> 아이가 설레어하며 좋게 상상했던 것이 뜻대로 되지 않은 인생을 맛보게 된 일.
우연한 상황들이 쌓인 아이는 스스로를 방구석으로 매몰차게 몰아세운다. 어떤 상황은 친구 혹은 가족을 가벼이 탓해도 괜찮은 것조차, 아이는 자신을 탓하기로 한 것이다. 자신에게만 일어나는 상황들이라 쉽게 판단해 버린다. 부끄러운 심정을 아무에게나 들춰낼 수 없던 아이의 판단력은 스스로의 머릿속에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자신에게만 일어나는 상황들이라 판단하게 되면, 모든 것이 자신 때문이라는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두려움. 인간이 본능적으로 탑재된 감정이다. 아주 먼 선조들에서부터 내려온 본능이다. 두려움이 없었다면, 인간은 쉽게 육식동물에게 말살되고 말았을 것이기에 필요한 감정이다. 어른이 되어서는 이 본능이라고 하는 두려움을 어찌 맞서낼 수 있을까에 대해 경험과 가치관으로 해결해 나갈 뿐이다.
하지만 지나친 두려움은 아이의 불편한 인생을 마주하게 되는 셈이다. 아이의 단순한 자기혐오는 아이의 지나친 두려움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런 내게 숨 쉴 틈새와 나의 가능성에 대한 발판은 '엄마의 역할'이 크게 기여했기에, 지금 여기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자신의 모습을 단순하게 판단하게 된 아이는, 소심해진다. 도전하는 것이 두렵고, 잘하던 것도 매 순간 도전하는 것 같은 착각에 휩싸인다. 일상생활도 어렵게 된다. 문득 찾아오는 내성적인 성향은 주변인들과의 대화를 어렵게 만든다. 모든 순간들이 쌓이다 보면 그것이 아이의 소심함을 기하급수적으로 높이게 한다.
날이 갈수록 소심해지는 아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서 '아무것도 하기 싫음'으로 전환된다. 아이의 불편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은 슬픈 선택의 결과물이다. 작은 상황들도 예민해진 소심한 아이의 선택. 이렇게 마음이 지쳐버린 아이에게도 번아웃이 찾아오는 거다. 성인들에게도 버거운 번아웃. 그것이 아이를 구석으로 숨게 한다.
자, 이제 소심해져 버린 내 아이를 어떻게 할까?
나의 어머니의 비법들을 조금씩 조금씩 진솔하게 정리할 예정이다.
소심했던 내가 변했다.
어머니께서 기여하신 통찰력과 인내심으로 인해, 내가.
소심한 아이도, 인생을 살아가는 한 사람이다.
소심하다는 것 자체가 결코 그 사람의 능력을 평가절하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세상에 많은 소심이들이 살아간다.
그중 한 명이었던 나라는 사람이 변화하게 된 이유를,
존경하는 내 어머니의 방법에 의거하여 계속 발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