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가는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큰 아이가 학교에 신나게 다녀와서는 잔뜩 흥분한 얼굴로 말을 꺼냈다.
“무슨 일인데? 얼굴 보니 좋은 일인가 보네!”
“좋은 일인가? 암튼 진짜 웃겼어요. 글쎄, 내 책상 위에 누가 고백 편지를 놓고 간 거 있죠!”
“진짜? 우리 딸, 고백받은 거야? 누가 그런 용기를 냈을까? 엄마도 그 편지 보고 싶다.”
아이는 가방에서 꼬깃꼬깃한 종이쪽지 한 장을 꺼냈다. 고백 편지라고 하기에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종이 쪼가리였다. 11살 남자아이에게 잠시나마 낭만을 기대했던 아줌마의 망상이 바로 깨지는 순간이었다. 정체 모를 남자아이가 쓴 편지(?)에는 ,
‘나 너 좋아해. 나 마니또 아니야. 진짜야. 내 번호는 1~15번 사이에 있어.”
라고 휘갈겨 쓰여있었다.
아이는 쪽지 따위에는 이제 관심도 없어 했지만 난 그 종이를 계속 뚫어지게 보고 또 봤다. 가만히 볼수록 아이는 나름 자기가 전하고 싶은 말을 그 조악한 쪽지에 욱여넣듯 다 적어낸 것 같았다.
무엇보다 ‘좋아해’란 말을 전하고 싶었으리라. 지금 아이 반에서 한창 마니또 게임을 진행 중인데, 좋아하는 이유가 마니또라서가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있었다. 혹여나 장난이라는 오해를 받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바로 밝히기는 부끄럽지만, 그래도 추측이 가능한 이 중의 한 사람이고 싶은 마음에 자신이 속한 범위를 알려줬던 것 같다.
큰 아이는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다녀오니 자신의 책 위에 그 편지가 올려져 있었고, 처음 받아본 고백 편지에 어떻게 반응할지 몰라서 옆에 있는 친한 친구한테 살짝쿵 말을 한 모양이다. 그런데 그런 편지를 처음 본 친구는 그것이 비밀이 되어야 하는 은밀한 것이라 생각을 못하고 아주 큰 소리로 “진짜? 누가 너 좋아한다고?”라고 큰 소리로 말했고, 결과적으로 아이 반의 모든 친구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11살 아이들다웠다.
결국 아이 책상 주변으로 친구들이 다 몰려들었고, 그 쪽지를 함께 봤단다. 한창 수업에 지루해졌을 시간에 아이들에게 즐거운 게임이 하나 던져진 것이었으리라. 추리 만화를 꽤나 본 남자 친구들 몇몇은 과연 그 편지를 보낸 사람이 누군지를 추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편지를 준 남자아이는 아주 친절하게도 자신은 1번에서 15번 사이에 있다고 알려줬기에 범위를 좁힐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전 쉬는 시간에 큰아이 책상 주변에서 얼쩡거리고 있던 남자애들을 봤다는 몇몇 친구들의 증언으로 더 범위가 좁혀진 것이다.
“엄마, 애들이 나한테 편지 보낸 애가 누군지 서로들 알아내겠다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어요! 막상 나는 관심도 없는데 말이죠.”
범인을 추리하는 시간이었으니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재미난 이벤트였을까. 무엇보다 엄마인 나도 누가 우리 아이에게 고백했을지 몹시도 궁금했다.
“그래서 누군지 알아냈어?”
“남자애들이 3명으로 후보를 좁혔는데, 셋 다 자기는 아니라고 막 그랬어요.”
“너는 그중에 마음에 드는 친구 없어?”
“엥! 엄마! 남자애들은 다 이상한 거 알잖아요. 얼마나 유치 찬란한지… 그냥 다 애들 같아.”
아이는 마치 자기가 남자 친구들보다 몇년은 더 산 선배인 양 그들을 죄다 어린애 취급했다. 그맘때 남자아이들은 한 명씩 보면 썩 의젓하고 멋지지만, 또래가 함께 모이면 다 같이 유치한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을 알고 있기에 아이의 반응에 공감해줬다. 그리고 한편으론 안도의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이가 고백을 받았다는 것은 아이가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있다는 것이기에 뿌듯하고 기쁜 마음도 들었지만, 이제 남녀관계에 대한 애정 감정이 생기기 시작하는 시기가 됐다는 자각에 갑작스레 밑도 끝도 없는 불안함이 내 안에 스며드는 것에 화들짝 놀랐다.
아이와 이성 교제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나눈 적이 있다. 아이에게는 쿨하게 "좋아하는 남자 친구가 생기면 엄마가 응원해줄게"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이제 현실로 조금 더 가까이 온 것이라 생각하니 기쁨보다 걱정이 앞서는 엄마가 된 것이다. '이성교제'뒤에 극단적으로 사춘기, 문제아, 성적 스킨십, 임신까지 줄줄이 연상하고 있는 내 생각에 스스로 경악했다. 건너 건너 들었던 지인들에게, 그리고 미디어에서 들었던 극단적 사례들 때문이리라.
최근에 친한 지인이 중학생이 된 딸이 첫 남자 친구를 사귄다는 것을 듣고 아이 앞에서는 진심으로 축하해줬지만, 막상 귀가 시간이 늦어지고 둘이서 어깨를 밀착하고 찍은 사진을 보자 온갖 걱정이 밀물처럼 밀려들어 왔다는 하소연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저 제 3자 입장에서 책에서 본 답안지처럼 "아이를 믿어주고, 성에 관해 진솔하게 말하면서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갖도록 도와주면 큰 문제는 없지 않을까요?"라고 그럴듯하게 응수했지만, 막상 내 아이 문제로 귀결되면 나부터 이리도 허둥댈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큰 아이를 낳았을 때, <베이비 위스퍼>란 책이 육아계에 대유행처럼 번질 때였다. 신생아부터 아이가 루틴을 갖고 먹고 자고 싸고를 할 수 있게 만들어야 엄마도 아이도 편안한 육아를 할 수 있다는 요지의 책이었다. 한국식 육아법이 아닌, 서양에서는 이미 보편적으로 퍼져있던 방식이었다. 3시간 패턴을 지키기 위해 젖을 먹고 바로 잠들려 하는 아이를 어떻게든 깨우고, 배고프다고 우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서 시간에 맞춰 젖을 물리기도 했다. 심지어 하루 시간표를 매일 공책에 적기까지 했다. 그런 나를 친정엄마가 옆에서 보고는 처음에는 "네 새끼니깐 알아서 해라..." 하면서 지켜보셨지만, 저대로 키우다가 자신의 딸과 손녀 모두가 자멸의 길로 빠지는 것이 역력해 보이니 도저히 안 되겠다는 듯, "애가 책대로 커진다니? 그냥 배고프면 젖 주고, 싸면 씻겨주고, 졸려 하면 재우면 서로 편할 텐데 대체 뭐 하는 짓이다니!!." 하셨던 것이 떠올랐다. 물론 둘째를 키울 때 그 책은 이미 쓰레기통으로 던져진 후였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백지 위에 내가 계획한 정확한 구도에 맞게 근사한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가능할 거란 기대는 신생아 시절부터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앞으로도 우리 아이가 경험할 많은 것들에 엄마로서 준비하고 적절한 방향과 답을 끊임없이 고민하겠지만, 결국 아이가 직접 부딪혀보고 그때그때 아이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리라. 지금처럼 아이가 자신이 겪은 모든 일을 엄마에게 편안하게 나눌 수 있다면 우리 관계는 이상 무 아니겠는가. 절대 아이보다 앞서가지 말자. 일단, 지금은 아이가 받은 그 고백에 뿌듯한 것만 느끼는, 딱 거기까지다. 우리 딸, 고백받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