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을 하거나 종종 듣는다. 그런 질문을 할 때는 현재 내가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자리의 좌표가 어디인지 제대로 짚어보고자 함이 크다. 누군가의 양육을 옆에서 듣거나 볼 때, ‘저건 아닌 것 같은데…’하는 안타까움이 들때도 건네고 싶은 질문은 이것이다.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자랐으면 좋겠어?
내 주변 보통의 엄마들이 고심 끝에 내놓는 답은 이렇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나는 진짜 절친한 이들에게 되묻는다. “진짜로? 그게 다야? 아이가 좋은 대학이나 안정적인 직장을 갖지 않아도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된다고 생각해?” 라고 말이다. 이렇게 질문하면 정곡을 꿰뚫은 나를 얄궂다고 째려보지만 솔직한 질문에는 언제나 그에 걸맞는 진솔한 답이 나오기 마련이다. “물론, 그 ‘좋아하는’데는 많은 의미가 포함된 것 같아. 이왕이면 그 좋아하는 것이 돈도 많이 벌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일이었으면 하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겠지. 그래도 이만큼 살아보니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하는 것만큼 행복한 것도 없는 것 같아서. 나조차 아직도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답답하거든. 진심으로 아이는 좋아하는 일을 찾았으면 좋겠어.” 라고 대답한다.
나는 그들의 대답이 “나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 라는 간절한 바람으로 들리곤 한다. 워킹맘으로 일을 하는 이들도, 전업맘으로 뚜렷한 직장이 없는 이들도 모두 같은 마음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고 싶어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정신없이 아이를 키우고 살림하다보면 엄마의 삶 이외의 ‘나’를 생각할 여유도 체력도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결국 시간은 흐르고 아이들에게 물리적으로 손이 덜 가는 때가 오기 마련이다. 그때쯤엔 엄마들도 자신의 인생을 생각한다. 지금까지 엄마로 살아온 시간이 대견하지만 앞으로 살아갈 무수한 시간이 두려워진다. 당장 주어진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 지가 가장 고민이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가면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이 남는다. 그 시간을 이제 어떻게 보낼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한다면 엄마 인생 2막이 시작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살림을 위한 밑천을 보태기 위해 아르바이트라도 하겠다는 엄마들도 있고, 그저 편하게 집에서 드라마나 보면서 여유를 보내겠다는 이들도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근사한 능력으로 돈도 벌고 싶고,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한 소파에 누워서 책이나 보며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여유롭게 보내고 싶다는 양쪽 마음을 계속 줄타기했지만 진실로 원했던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좋아하는 것을 제대로 찾을 생각도 하지 않았고, 좋아한다면 그 일을 가장 많이 해야 하는데 막상 하루 중 내가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집안일이거나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두 가지 일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라고 답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해야 하기에 하는 일이나 생각없이 시간을 때우는 그런 일 말고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이 있다고 당당히 말하고 싶었다.
우리는 모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인생을 추구한다. 그렇기에 아이가 어떻게 자랐으면 좋겠냐고 물을 때 대부분 아이가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찾아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것이리라.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자신은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도 크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네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봐’라고 하면 막막해한다. 학교에서 정해진 시간표대로 수업 듣고, 학원에서 공부하고 친구들과 노는 것이 전부인 아이들의 삶의 반경에서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기란 서울에서 김 서방 찾는 것만큼 막막하다.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다양한 활동과 경험을 하게 해줘야 하겠지만 가정마다 그것을 해줄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기에 결국 ‘좋아하는 것 찾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일단 공부나 먼저 열심히 해라’로 바뀌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엄마인 우리들도 그렇게 살았고, 엄마가 된 후에도 진짜 좋아하는 것을 찾지 못한 채 흘러흘러 여기까지 왔지만, 본인이 아이를 키울 때도 딱히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현실에 좌절한다.
아이에게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라고 할 때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던 아이가 내게 물어온 적이 있다.
“엄마는 좋아하는 게 뭐야?!”
아이들은 말보다는 행동으로, 행동보다도 일상의 무의식적으로 하는 루틴을 보면서 부모의 삶을 배운다. 아이들에게 백날 ‘좋아하는 것’을 찾으라고 말하는 것보다 부모가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들의 삶을 잘 이끄는 방법일 것이다. 아이의 질문에 뭐라 답해야 할 지 바로 떠오르지 않아 솔직하게 말했던 기억이 있다. “글쎄, 솔직히 엄마도 아직까지 찾지 못해서 찾는 중이야. 그래서 너는 더 빨리 찾아서 그 좋아하는 일을 잘할 수 있길 바라는 것 같아.” 둘째 아이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엄마도 아직 못 찾았구나. 엄마도 좋아하는 것 꼭 찾아” 라고 했었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닐 텐데 많은 사람들이 어려운 과제를 안고 낑낑거리듯 그 답을 찾아간다. 나도 진짜 좋아하는 것을 찾고 싶었다. 대학 때 전공을 했으니까, 지금껏 먹고 살 수 있는 능력이 그것이니까, 그나마 이것을 해야 인정을 받아서라는 합리화하지 않아도 스스로 당당하게 외칠 수 있게 좋아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찾을 수만 있다면 남은 인생은 그것에 몰입하며 좋아하는 것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좋아하는 것 찾기의 여정을 시작했다.
이제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그것을 찾아 더 잘하고 싶어 애쓰고 있다. 좋아하는 것을 잘하고 싶을 때는 엔돌핀이 나오는 것이 분명하다. 누군가 봤을 때는 대체 왜 그것에 그렇게 목숨 걸듯 열심히 하냐고 할 수 있겠지만 막상 그것을 찾으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신경쓰지 않는다. 본디 남의 인정을 갈구하며 살던 내가 말이다.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면 다른 사람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타인의 인정보다는 내가 만족이 될 때까지 잘해보고 싶다는 의욕이 더 샘솟는다.
진부한 말이지만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에 늦을 때는 없다. 모든 엄마의 바람처럼 아이들이 어렸을 때 그것을 찾으면 좋겠지만 ‘좋아하는 것’을 찾는 데는 경험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찾기를 바라는 동안 엄마가 먼저 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이 더 빠를 수 있다. 그리고 엄마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그것에 열정을 쏟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들에게도 구체적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명확한 본보기가 될 것이다.
우리 집 두 아이는 이제 엄마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할 때 엄마가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알고 지지해 준다. 자신들도 엄마처럼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즐겁게 살고 싶다고도 말한다. 그때만큼 뿌듯할 때가 없다.
나와 같은 평범한 엄마들을 응원하며 ‘좋아하는 것 찾기’를 시작해 보라고 용기를 주고 싶어 나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나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나누면 그것으로 분명 각자의 인생을 돌아보고 자신만의 이야기에서 그동안 감춰져 있던 그 무엇을 찾을 수 있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시간 여행자인 내가 잠시 머물고 있는 그 시대와 어떻게 만났는지를 돌아보려는 시도였다. 삶을 순례로 이해하는 내게 일상의 모든 순간은 벗어나야 할 질곡이 아니라, 나를 하나의 중심으로 이끄는 계기이다.
김기석, <일상의 순례자> p.11
모두가 좋아하는 그 무엇을 찾아 또 누군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다. 마치 이어달리기처럼. 먼저 내 이야기로 바통을 들고 첫 주자로 나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