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딱 10분만 더 놀고 들어가면 안 돼? 응?"
이미 약속한 시각을 한참이나 넘겨 여름 끝자락 뜨거웠던 태양도 자취가 사라진 지 한참 후였다. 이제 갈 때가 되었다고 하면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은 마치 서로 입이라도 맞춘 듯 똑같은 말로 애원을 해댔다.
3시에 학교에서 놀이터로 이동해 밤 9시를 향하고 있을 때까지 놀았으니 엄마들 생각으로는 원 없이 놀고 이미 나가떨어져야 할 시간이었지만 지친 것은 그저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떨던 엄마들뿐이었다. 아이들은 그리도 많은 땀을 흘리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달빛에도 화끈거리게 느껴졌건만 또 '10분만 더'를 한목소리로 외쳤다.
아무리 멋지게 만들어진 놀이터라 해도 한낱 놀이터일 뿐이거늘 아이들은 그곳에서 지루할 틈 없이 다양한 놀이를 만들어 내며 놀았다. 미끄럼틀이 그저 위에서 타고 내려오는 긴 널판이 아니고, 엉덩이를 깔고 앉아 발을 굴리며 조신하게 타는 그네의 본래 기능은 아이들에게 사라진 지 오래다. 미끄럼틀은 이 세계와 다른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가 되기도 하고, 그네는 공간의 경계를 허물어 주는 줄타기 공간이 되면서 아이를 가장 아이답게 만들어 준다.
어른이 된 우리는 아무리 아이들과 놀아주려고 애써도 아이들이 꾸는 무한의 상상에 다가갈 수 없고, 그들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이야기에 닿지 못한다. 그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아이들에게 매정하게 '안돼'라고 말하기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악역을 자처하겠다는 것 아니겠는가.
1시간이 1초로 순간 이동하고, 3미터 남짓의 너비가 이 세계와 저 세계의 끝만큼 넓게 느껴지는 공간. 바로 놀이터의 매직이다. 아이들의 애원에 그 누구도 악역으로 나서지 못하는 엄마들은 결국 '딱 10분만 더'라고 당부하고, 앓는 소리를 하며 다시 벤치에 주저앉아 같은 말을 중얼거린다.
우리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말이지.
우리는 한때 모두 놀이터 죽순이였다. 노는 것이 당연했고, 노는 것 말고 다른 것을 찾을 필요도 이유도 없이 그저 해맑게 놀았던 그시절을 거치지 않은 이들이 있을까.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가서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모두가 한목소리로 답할 것이다.
노는 거요!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고 싶을 때 처음 떠올랐던 것이 바로 '놀이터'였다. 한낮의 작열하는 태양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미끄럼틀 열기보다 더 신나게 놀았던 그 시절이 맨 처음 떠오른 것은 당연했다.
어릴 적 살던 나의 고향은 모든 것이 딱 하나씩만 존재하던 곳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까지 그곳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유치원, 초등학교, 우체국, 농협, 중국집, 버스 정류장, 피아노 학원, 교회, 그리고 놀이터까지. 딱 하나씩만 있었지만, 그것이 하나뿐이어서 이상하거나 부족하다고 느껴볼 겨를 없이 그 모든 곳에서 충만함을 누렸다.
지금은 댐이 되어 물속에 잠겨버려 갈 수 없는, 기억 속 미지의 존재로 남아버린 곳이다.
그 동네에서 유일했던 놀이터는 초등학교 운동장이었다. 내 미지의 세계 속 운동장 미끄럼틀은 하늘까지 닿을 만큼 길었고, 정글짐은 매일 오르고 또 올라도 아찔하게 무서웠다. 둘씩 짝을 이뤄 시소를 타거나 서로 그네를 타겠다고 매번 책가방을 운동장 구석에 버려두고 숨이 차게 달려가곤 했다.
학교에서 이른 시간에 마쳤어도 교문을 나서 집에 올 때는 늘 해가 저물 때쯤이었다. 그러고도 집에 들어가기 아쉬워 친구네와 우리 집 사이에 있는 골목길에서 술래잡기하거나 고무줄놀이를 질리지도 않고 해댔다. 집집마다 밥 짓는 냄새가 풍겨오면 엄마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주린 배를 부여잡고 친구와 아쉬운 인사를 한 후 집으로 들어갔다. 빛바랜 그 옛적 동화책에서나 나옴 직한 이야기 같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대전으로 이사를 했다. 우리 동네가 언젠가 댐으로 만들어져 사라지리라는 것은 내가 태어나 말귀를 알아듣는 순간부터 들어오던 마을의 오랜 구전과도 같은 이야기였다.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실감한 것은 동네 어른들끼리 보상 문제로 종종 갈등이 빚어지는 것을 목격한 후였다. 파스텔 색상으로 채색된 것만 같았던 평화로운 동네에 보상금 문제로 검붉은 욕망의 핏빛 색깔이 한두 방을 떨어지는 섬뜩함이 어린 내 눈에도 보이곤 했다.
다행히도 일찍부터 대전에 이주할 집을 마련한 아빠 덕에 우리는 고향에서 비교적 일찍 도시로 나왔다. 시골에 살 때도 도시에 사는 친척 집을 종종 방문하곤 했지만, 막상 나의 터전이 바뀌는 것은 일생일대의 큰 경험이었다.
학교 운동장의 하나뿐이었던 놀이터가 대전에는 동네 여러 군데 있었고, 근교 공원에 나가면 놀거리가 더 풍성했다. 그러나 대전에 이사를 온 이후로 놀이터에서 죽순이로 해질녘까지 놀았던 기억은 별로 없다. 초등학교 고학년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왁자지껄 노는 것은 유치한 일로 보였고, 당시 대중가요의 전성시대가 오면서 나의 놀이터는 TV 앞이 되고 말았다.
놀이터 죽순이 시절이 끝났다는 것은 더 이상 놀이터가 상상의 공간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의미다.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보이지 않는 세계를 구축하고,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노는 것은 유치한 일로 치부됐다.
놀이터의 추억은 고향을 잃어버리면서 영영 휘발되어 다시는 만들 수 없을 거라 여기며 살았다. 몸이 커지면서 놀이터는 점점 작게만 보였고, 그곳에서 노는 유치한 아이들과 나의 세상은 완전히 분리되었다. 연애할 때 손을 잡고 입을 맞추고 싶어 하는 남자친구의 엉큼한 속내를 짐짓 모른 척하며 이끌려 갔던 으슥했던 한밤중 은밀한 놀이터가 인생의 마지막 놀이터로 남을 줄 알았다.
놀이터에서 몰래 숨죽여 입 맞추던 두 남녀가 얼결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그 아이와 또다시 놀이터 죽순이로 돌아가는 것은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전개였다.
어린 시절에 내가 그러했듯이 아이도 자라면서 자연스레 놀이터와 가까워졌다. 아이로 인해 다시 놀이터 죽순이 생활을 시작했다.
놀이터 한쪽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자신에게 눈을 떼지 못하는 엄마를 무한히 신뢰하며 마음껏 뛰노는 아이를 지켜보는 지킴이 역할이 시작된 것이다. 유난히 걸음마가 늦되 걱정했던 아이는 걱정이 무색하게 튼실한 두 다리로 놀이터를 휘젓고 다녔다. 뛰노는 아이를 보며 살아있는 생명이 내뿜는 에너지가 이토록 찬란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엄마로서 다시 찾은 놀이터는 오랜만에 찾은 나를 값없이 반겨줬고, 그곳에서 아이와 함께 엄마로 자라 갔다.
지금 살고 있는 경기도 신도시에는 아이들과 갈 수 있는 놀이터가 수없이 많다. 아파트 단지 내에만 갈 수 있는 놀이터가 서너 개는 보통이고, 그 모양도 콘셉트도 어쩌다 다양하고 화려한지 그 솜씨에 경탄한다. 드넓은 대지에 매끄럽게 다져놓은 공원마다 아이들을 위한 자연 놀이터는 또 얼마나 근사하게 마련됐는지 모른다. 아이들이 갈 수 있는 다양한 놀이터에는 갖가지 놀이기구가 알록달록 그 자태를 뽐내고 있지만 정작 그것을 누려야 하는 아이들의 수는 점점 적어진다고 한다.
최근에 발표한 한국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은 당연하고 그다음 국가와의 격차도 심각하게 벌어져 있다. 경제적으로는 훨씬 풍요롭고 아이들을 키우기에 편리한 제반 시설과 기반도 도시마다 근사하게 갖춰져 있는데 어째서 아이를 낳고 키우기는 더 힘들다고 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일까.
이미 두 딸을 키우며 출산과 양육의 기쁨을 겪어봤기에 후배들에게 당당히 아이를 낳는 것은 축복이라고 소리 높여 말하고 싶지만, 그들의 고뇌와 삶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모른 척하기에는 나 또한 엄마로서 수시로 넘어지고 또 넘어진다.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 어울리지 않고 불편하기만 한 거추장스러운 액세서리를 하고 내가 나인 것 같지 않다고 여겨질 때가 많다. 도무지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이 엄습하고, 엄마로서 산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무용한 일을 하는 것 같은 절망감이 밀려올 때도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엄마가 되어 놀이터에 앉아서 신나게 노는 아이를 지켜보는 것은 감동스러운 기쁨도 있지만, 때론 어린이의 세계로 다시 들어갈 수 없음에 한없는 지루함을 견뎌야 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아이가 놀이터에서 아무런 걱정 근심도 없이 새로운 놀이를 창조하고 도전해 보는 것처럼 엄마의 일상도 하루하루가 놀이터에서 노는 것처럼 신나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는 벗을 수 없는 나의 무늬로 새겨진 엄마의 옷을 입고 아이처럼 놀이터에서 신나게 보낼 수 있는 길을 찾고 또 찾았다. 아이가 온종일 놀고 또 놀아도 집에 갈 시간이 되면 "10분만 더!!"라고 외치는 것처럼 지루하지 않고 몰입해서 할 수 있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자 했다. 더는 놀이터가 나의 기쁨이 되지 못하는 어른이 돼버렸지만, 놀이터 죽순이로 놀던 그때의 추억에 젖어 진짜 좋아하는 것을 할 때가 무엇인지 감을 찾을 수 있었다.
엄마들도 모두 놀이터 죽순이로 살던 그때가 있다. 우리는 모두 좋아하던 그 놀이에 흠뻑 빠져 살던 때가 있었다. 나는 잘하는 것도 딱히 없고, 그래서 좋아하는 것도 없다고 하는 평범한 엄마들도 어린 시절 놀이터를 떠올린다면 그 찬란하게 빛나던 미끄럼틀 모서리의 빛무리가 생각날 것이다. 거기서부터 시작해 보는 것이다.
그 놀이터의 문을 다시 열어보자. 분명 모두에게 보이는 저마다의 문이 보일 것이다. 당당히 그 문을 열자 다음 세계가 펼쳐졌다. 놀이터 다음으로 나를 이끌었던 그곳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