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를 위한 읽기
글을 쓰는 것은 말하기보다 더 어려운 아웃풋 과정이다. 말하기는 누구나 쉽고 자연스럽게 하는 활동이지만 글쓰기는 노력과 시간을 더 들여야 한다. 실제로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글쓰기의 한계에 몇 번이고 부딪혔다. 글감을 찾지 못할 때도 있었고,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그럴듯하게 쓸 수 있는 능력의 부족을 절감하면서 무너질 때도 많았다. 그럴 때는 그냥 넘어져서 나는 못 한다고 한참을 포기하고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내 곧 나에게 글쓰기는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인생의 동반자가 돼버린 것을 알았다.
나를 표현하지 않을 수 없었고,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서는 온전한 삶을 살아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글쓰기를 지속할 힘을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영어에도 임계치에 다다를 충분한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이 나오듯이 글쓰기도 인풋이 있어야 했다. 그것이 바로 많은 이들이 소리 높여 말하는 ‘독서’이다.
독서의 효과야 늘어놓으면 뻔하고 많아서 입만 아프다. 쓰는 사람치고 독서를 좋아하지 않는 이는 드물다. 독서와 글쓰기는 함께 맞물려 작용하는 톱니바퀴와 같다. 글쓰기를 하기 전에도 독서는 늘 내 삶과 함께 했지만, 글쓰기를 할수록 독서의 필요성을 더욱 깨달았다. 독서를 그저 즐겁게 하는 것으로도 충분히 좋지만, 글쓰기를 위해서라면 독서하고 기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바로 인스타그램이다.
인스타그램은 SNS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만큼 삶의 단편을 포착해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용도로 사용된다. 그렇게 인플루언서가 된 이들이 상품을 공구하거나 판매하는 장터로 사용하기에도 최적이다. 그러나 인스타그램은 의외로 수많은 취향이 반영되어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자신의 페이지로 꾸밀 수 있다.
책을 읽고 기록할 공간으로 블로그를 택할 수도 있었지만, 인스타그램을 굳이 개설한 것은 인스타그램은 한눈에 나의 취향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곳이란 장점이 컸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기록을 올리는 사람들의 인스타그램을 ‘북스타그램’이라고 한다. 일상의 한 페이지가 아닌 책 사진을 올리고, 독서 후의 감상을 적어서 올리는 이들이 그토록 많다는 것에 놀랐다. 무엇보다 인스타그램은 나와 취향이 같은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해시태그로 나의 취향을 드러낼 수 있고, 그 해시태그를 클릭하면 나와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 페이지를 구경하며 그들과 팔로워를 맺어 더 깊은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책으로 맺은 인연은 무엇보다 소중했다. 인스타그램에 독서 기록을 하면서 독서 취향이 비슷한 이들과 독서 모임을 시작했다. 글쓰기도 혼자 하는 것보다 누군가에게 닿아 읽힐 수 있는 글을 쓸 때 지속할 수 있었던 것처럼 독서도 함께 읽고 나눌 때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1년에 책 한 권도 제대로 안 읽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신문 기사를 읽으며 개탄한 적이 있었는데 내가 맺은 북스타그램 세상 속에서는 한 달에 책을 20권씩 읽는 사람은 그저 평범한 사람에 속했다. 1일 1독을 하는 사람도 많았고, 1일 3독을 하는 사람을 보기도 했다. 물론 다독을 하는 것이 약이 될지 독이 될지는 누구도 판단할 수 없으나 그만큼 독서에 열정과 진심을 다하고 있다는 것에 감동했다.
'독서, 그냥 책을 읽으면 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독서하지 않던 사람이 책을 읽으려고 하면 막막함이 들 수 있다. 어떤 책을 먼저 읽어야 하는지, 어떤 방법으로 책을 읽어야 하는지, 책을 다 읽고 나서는 그냥 ‘좋다’라고 혼자 맺음말을 맺으면 되는지 등등 의외로 밀려오는 물음이 많다.
어렸을 때부터 자녀들에게 책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독서를 지향하고 있지만, 어른이 된 우리는 진정한 독서의 즐거움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단 독서는 책 읽기가 맞다. 그저 읽고 싶은 책을 즐겁게 읽으면 된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들은 드라마를 영상으로 보듯 소설책을 쭉 읽어내려가면 된다. 이야기 속 주인공들에게 깊이 이입하여 즐겁게 읽었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 독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단순히 이야기를 즐거워하는 것으로 끝내기에는 독서의 세계는 깊고도 넓다. 일단 책의 종류가 다양하고, 종류마다 담고 있는 주제도 방대하다. 그중에서 내가 탐색하고 싶은 길을 하나 찾는다면 그것을 시작으로 생각지도 못했던 놀라운 곳에 당도할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이 바로 독서이다. 내가 탐색하고 있는 길을 기록하는 용으로 인스타그램을 선택한 것은 탁월했다.
인스타그램을 기반으로 수많은 북클럽이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나 책 좀 읽었어’라는 사람들은 자신이 읽은 책을 바탕으로 함께 공감하고 생각을 나누고 싶어 한다. 책이란 본디 그러한 특징을 가진 것이다. 한 사람이 깊이 사유하고 창작한 허구의 이야기든, 자신의 삶을 진솔하게 담아낸 에세이든, 그리고 오랫동안 연구한 지식을 정리한 사회과학, 인문학이든 그 담긴 내용을 홀로 다 담아낼 수 없다. 각자의 그릇에 담아낸 책 이야기를 함께 나눌 때 내 안의 그릇이 더 커지고,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참된 길을 찾아낼 수 있다.
그것이 독서토론의 놀라운 순기능이다. 인스타그램에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을 함께 읽는 모임이 많았고, 팬데믹 시절에도 책을 함께 읽은 후에 줌으로 만나 각자가 생각한 질문으로 깊이 토론할 수 있었다. 문학을 읽는 ‘문학 살롱’과 고전을 읽는 ‘고전 살롱’의 이름을 가진 온라인 북클럽을 만나 가입했다. 그곳에서 독서를 사랑하는 이들과 매달 한 권의 책을 정해 함께 읽고 정해진 시간에 줌으로 만나 토론을 진행했다.
난생처음 만나는 이들과의 첫 만남이 두렵고 걱정됐지만, 각자를 끈끈하게 연결해 주는 ‘책’이 있었기에 책 이야기로 만나는 즉시 대동단결됐고, 각자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몹시도 많아서 2시간 독서 토론 시간으로는 부족할 지경이었다.
쓰기를 위한 읽기는 지속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