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시간 늘리기
인스타그램에서 만난 북클럽 멤버들과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책을 두고 이야기를 나눴다. 이 모임은 팬데믹이 끝난 후에는 가까운 지역에 사는 이들과 대면으로 만나서 더욱 진솔한 이야기로 나누는 데까지 다다랐다.
독서 모임에서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매력에 푹 빠졌다. 처음에는 배경도, 환경도, 직업도 전혀 모르는 이들과 오직 책을 두고 나누고 있는 내가 낯설기도 했다. 그들 앞에서 보이는 내 모습은 그동안 아이 친구 엄마들 모임에서 드러났던 모습과도 다르고,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로 보이는 모습과도 달랐다. 그들 앞에서 그럴듯한 모습을 보이고 싶어서 거짓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고 고민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고의로 ‘이런 모습을 보여줘야지‘하고 실제로 모임에 참여한다 해도 그런 모습이 연출되지 않았다. 그저 그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에 반응하고 공감하면서 새로운 내 모습이 나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것이 마냥 어색하지만은 않았던 것은 이전에 중학교 문예반에서, 그리고 고등학교 도서반 시절에 책을 읽고 함께 책에 관해 나누고 글을 썼던 이들과 누렸던 풍요로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거칠 것 없이 책 안에서 자유함을 누렸던 그때가.
지독하게 앓았던 사춘기의 열병을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빠져나왔다. 그때에도 나는 여러 모습을 지닌 내가 통합되어 나의 정체성을 이루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마음에 안 들고, 세상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던 그때였지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나 자신만큼은 사랑할 수 있었다. 그것을 발판 삼아 내일을 기대하고 나의 미래를 꿈꿀 수 있었다. 그렇게 독서와 글쓰기는 나만의 개성을 만드는데 가장 큰 부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독서하고 책으로 토론하는 내가 좋다면, 그 시간을 더 많이 갖고 싶어지는 것도 당연했다. 코로나로 온라인 독서 모임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차에 조금씩 팬더믹 규제가 완화되었다. 4인 인상 집합 금지가 풀리고, 마스크를 쓴다면 함께 모이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해졌다. 이제는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실감 나게 사람을 만나 함께 책을 읽고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더 간절해졌다. 좋아하는 것을 찾았다면, 그것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보는 것은 그다음 단계이다. 나는 늘 관망만 하고 깊이 참여를 하지 않고 있던 지역 카페에 용기를 내서 글을 남겼다.
함께 독서 모임 하실 분들 모집합니다!
이렇게 제목을 쓰고 모임 횟수와 모임 진행 방식 등을 공지해서 멤버모집을 직접 해보기로 한 것이다. 혹여 한 명도 댓글을 안 달아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포스팅을 작성했다. 다행히 하루가 지나지 않아 몇 개의 댓글이 달렸고, 따로 쪽지로 문의를 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렇게 모인 4명이 먼저 독서 모임을 시작했다.
모임 첫날, 약속된 카페로 가는 동안 얼마나 설레고 긴장되든지. 그동안 온라인에서는 리더가 아닌 구성원의 한 명으로 참석해서 그저 즐기기만 했을 뿐이지만 이제는 적은 수라도 리더로 모임을 주최한 사람이 됐다고 생각하니 설렘보다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만나자마자 서로 소개하고, 독서에 관한 각자의 스토리와 기대되는 것을 나누면서 어색함들은 단박에 해제됐다. 마스크를 쓰고 서로 눈 밖에 볼 수 없었음에도 그 눈빛에서 서로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그 무엇을 만났다는 기쁨을 발견할 수 있었다.
큰아이가 학교에 들어가 학부모가 되면서 이런저런 모임에 참석하곤 했다. 오후에 영어 강사로 일을 할 때도 부지런히 오전 브런치 모임에 참석하며 관계를 이어가고 최신 정보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아이들을 중심으로 만난 모임에도 분명 유익함이 있었다. 학부모는 처음인지라 불안하고 막막했던 마음을 함께 나누면서 위로를 얻었고, 각자가 얻은 교육 정보를 나누면서 아이의 필요를 채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모임을 하는 나 자신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 모임 속에서 나는 괜스레 비교 의식이 차오르며, 감사보다 결핍에 집중하게 됐고 아이를 향한 믿음보다 불안이 커지는 것을 발견했다.
내 아이가 다른 아이보다 더 앞서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감을 얻고 집에 왔을 때, 이유 없이 아이들에게 짜증 내고 채근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는 더욱 나 자신이 못나 보였다. 모임의 성격과 유익 여부를 떠나, 그 모임을 참여하고 있을 때의 내가 마음에 들지 않다면 그 시간을 줄이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점점 내가 좋아하는 시간을 늘려가고자 했다.
독서 모임을 시작으로 영어 원서 읽기 모임과 글쓰기 모임에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할 때의 나 자신이 좋은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면서 나의 시간을 채워가자고 기준을 세우니 단순하고 쉬웠다.
세네카의 <인생이 왜 짧은가>에 나오는 구절 중에 “우리가 사는 것은 인생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 나머지는 삶이 아니라 그저 시간일 따름이지요.”를 떠올려 본다.
내게 주어진 하루를 그저 시간으로 흘려보내지 않고 진짜 나의 삶으로 살기 위해서는 좋아하고 더 사랑할 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깨닫고 좋아하는 것으로 나의 시간을 채워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