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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리 Oct 17. 2023

KB창작동화제 당선이라니

새로운 도전


어린아이들은 모두 그림을 그려. 단지 너는 멈췄고, 나는 멈추지 않았을 뿐이야


언젠가 유퀴즈에 나왔던 배우 류승범이 했던 인터뷰의 말이다. 최근에 활동을 하지 않아서 그의 근황을 잘 모르고 있었는데 결혼 소식을 그때서야 알게 됐다. 그림을 그리는 아내에게 “당신은 왜 그림을 그려?”라고 물었는데 이렇게 대답을 했단다. 그리고 그 대답은 그의 마음을 일렁였고, 오래도록 생각하게 한 말이 됐다. 그 일렁임은 나에게도 전해졌다.


그녀의 말처럼 모든 아이들은 그림을 그린다. 두 아이를 키우며 알았다. 발에 힘이 생겨 두 발로 걷기 전부터 손의 힘을 얻은 아이들은 크레용을 쥐어주면 놀랍게도 그리는 법을 스스로 터득한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음에도.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하얀 도화지 위에, 오직 자기 앞에 주어진 자신의 세상에 거침없이 자기만의 세계를 그려간다. 고작 '엄마' '아빠' '맘마' 로 세상과 소통할 줄 아는 아이지만 태어나면서 이미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줄 아는 존재였음을 발각하는 순간이다. 그렇게 그림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본능이다.


형태를 알아볼 수 없던 그림들은 점점 언어와 주변 세계를 배워가며 소통할 수 있는 형상을 갖춰가기 시작한다. 그 뒤로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창조해 간다. 두 아이가 텅 빈 도화지를 꽉 채워 밑그림을 그린 뒤, 그 세상 위에 자신과 가족들을 정성 들여 그려 이야기를 만들고, 그 위에 곱디고운 색으로 채색을 해서 완성했던 그림들을 잊지 못한다. 어떤 그림들은 감동을 넘은 경탄으로 다가와 액자에 잘 보관해 둔 것들도 있다.




나는 언제부터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 분명 나에게도 매일 그림을 그리던 시절이 있었다. 마당이 있던 고향집에서는 흙 위에 그림을 그리곤 했다. 손가락으로 그리고 나뭇가지를 들고 정밀하게 묘사하고, 그것도 마뜩잖을 때는 양동이에 물을 퍼서 모래 위에 명암으로 나의 세계를 창조하던 그때. 나는 마음껏 상상했고,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곤 했다.


장시간 차 타는 것을 힘들어하는 둘째는 종종 투덜거린다. “엄마, 얼마나 남았어? 거의 다 왔어?” 이렇게 몇 번을 묻고서는 갑자기 조용해지는 순간이 온다. 아이가 뭘 하고 있나 가만히 뒤로 돌아보고 있으면 창문에 입김을 호호 거려 창문을 뿌옇게 만든 후 손가락으로 뭔가를 그리고 있다. ”희서, 그림 그려? “ 이렇게 물어보면 아이가 대답한다. ”아니, 상상놀이하는 중이야. 이야기 만들고 있으니깐 방해하지 마. “ 아이는 지루했던 공간을 상상력을 동원해 가장 재미난 곳으로 탈바꿈하게 하는 마법을 부리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어찌 부럽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이제 멈췄지만 아이는 하고 있는 그것. 그리며 상상하며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


그림 그리기는 멈췄지만 다행히도 글을 쓰는 일은 멈추지 않고 있다. 이 또한 한참을 하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지만 이 기쁨을 다시 되찾았고, 이제는 의무를 지나 매일 기쁨에 다다르는 길을 찾은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 글을 쓰는 것. 결국은 자신의 이야기를 창조하는 일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그 삶은 결국 자신만의 이야기이기에. 나를 둘러싼 세상이 아닌, 거대한 세상 안에 나와 나와 함께하는 이들의 소중함을 아는 것.  삶은 그저 감사로 가득차 있다는 것. 글을 쓰다 보면 그렇게 시각이 전환된다. 오롯이 내가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나만의 세상이 실은 엄청난 신비로 창조된 세상에 내가 존재하며 나는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이들로 인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배워간다. 그 무엇도 나의 의지와 힘으로만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가며 겸손과 감사를 배운다.


글을 쓰며 당연하게 여겨졌던 이웃들이, 그리고 때론 버겁게만 느껴졌던 가족들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존재들인지 알았다. 그들 각각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울고 웃으며 삶을 잘 살아내고 싶다는 애틋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나도 나만의 이야기를 잘 지어내는 삶을 살고싶다는 열망이 솟는다. 모든 것이 글을 쓰며 얻은 유익과 기쁨이다.



매일 소소한 창조를 이루는 글쓰기를 하면서 나의 두아이들의 이야기를 창작하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그동안 나의 일상에서 글감을 길어 에세이의 형식으로 나만의 세상을 이루었다. 그것으로 충분했지만, 두 아이를 양육하며 읽었던 동화를 나도 써보고 싶다는 마음까지 다다랐다. 동화쓰기를 배워본 적은 없다. 그저 아이들의 이야기를 창작 동화 형식을 빌어 글을 썼다. 무엇보다 한창 책읽기의 재미에 빠져있는 둘째가 재밌다고 해주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두 아이의 이야기로 만들어낸 동화를 마침 발견한 동화 공모전에 응모했다. 진정 아무런 기대없이 낸 것이었다. KB국민은행에서 매년 열리는 창작 동화제로 오랫동안 이어온 명망있는 동화 공모전이었고, 상금도 여타 다른 공모전에 비하면 꽤나 큰 규모였다. 그저 써 본 동화가 아까워서 공모전에 제출했다. 당선이 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 뻔뻔하다여겨 동화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자매 이름도 변경하지 않고 그대로 우리 아이들 이름으로 제출했다. 그랬는데 세상에, 장려상에 덜컥 당선이 됐다. 얼마나 놀라고 감사했던지. 그동안 꾸준히 글을 써왔다고 누군가 칭찬하며 주는 격려의 선물처럼 느껴졌다. 내가 받을 선물치고는 지나치게 컸지만.



퇴고를 거치고 동화에 걸맞는 일러스트까지 더해져 한 편의 근사한 동화로 완성됐다. 대상부터 장려상으로 수상된 열 작품이 모아져 한 권의 동화책으로 만들어졌다. 동화책은 수상식에서 받을 수 있었다. 수상식에서 만난 다른 수상자분들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쓰는 사람으로 서로를 소개하며 나를 제외한 모든 작가님들이 오랫동안 동화쓰기를 공부하며 작가로 도전해왔다는 것을 알았다. 더욱 송구스러운 수상이었다. 한편으로는 또 다른 문이 열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본격적으로 창작하는 글쓰기를 배우고 싶어졌다. 나의 이야기를 넘어서 내 아이들 이야기로 동화를 썼다면 이제는 진짜로 존재하지 않는 글감을 캐내 새로운 이야기로 창작을 시도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또 새로운 진행형으로 나아갔다.


2023 Kb창작동화제 수상작 <손톱먹는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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