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옆집에는 사랑이 머물고 있다.
올망졸망 어찌나 귀엽고 예쁜지 모른다. 그처럼 예쁜 사랑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처음에는 숨겨져 있는 원석처럼 반짝이는 것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았다.
옆에 가까이 가서 아는 척이라고 할라치면 새침하게 고개를 돌리고 제 얼굴을 드러내 주지 않았다. 그랬던 사랑이가 어느새 무럭무럭 자라서 이제는 커다란 눈으로 물끄러미 내 얼굴을 보고 아는 척 반가워해 준다. 눈을 깜빡이며 고사리 같은 손을 흔들어 주면 내 앞에 다이아몬드가 유혹한다 해도 그리 마음이 뛰지 않을 만큼 커다란 감동이 밀려온다. 사랑은 관념에 갇혀있지 않고 살아 움직여 내 삶으로 깊이 침투했다.
사랑이는 우리 옆집에서 사는 4살 아가이다.
이 집에 2년 전에 이사를 왔으니, 처음 만났을 때 사랑이는 갓 걸음마란 신세계 초입을 넘을 때였다. 엄마나 아빠 손을 잡고 아장거리는 아가의 뒷모습보다 더 아름다운 그림을 찾을 수 있을까. 나와 남편은 원래도 발밤발밤 걷는 아가들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한참을 쳐다보곤 하는데 사랑이에게는 더더욱 마음이 붙들려 일렁였다.
사랑이로 인해 자연스레 사랑이네 부모님과 인사를 나눴다. 젊은 부부인 두 사람만 있었다면 쉽사리 인사를 건네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가 어쩜 이렇게 예쁘냐고, 부모님을 똑 닮아서 이리도 이쁜가 보다라고 나이 든 할머니라도 된 것처럼 아이 부모 앞에서 수다를 떨었다. 내 아이를 예뻐해 주는 이를 마다할 이는 없다. 나의 반가운 인사에 그들도 자연스레 반응했고, 오가며 우리 집 아이들을 봤는데 인사를 참 잘하더라고 칭찬도 해줬다. 이후로 엘리베이터 앞에서, 길에서 종종 사랑이네를 마주치면 우리 아이들이 더 반갑게 "사랑아"를 외치며 아는 체를 한다.
갸우뚱거리며 위태롭게 걷던 아가는 하루가 다르게 안정적으로 걸으며 온 세상을 몸으로 배워가고 있다. 그 옆에서 손을 꼭 잡고 가는 부모에게도, 먼발치에서 그 생명에 한참을 눈을 떼지 못하는 이웃들에게도 그 아이는 존재만으로 감동이 된다.
아이의 걷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이웃에게 안부 인사를 나누는 일. 작고 사소한 일이지만 거기에 마음이 담긴다면 멀리서 들려오는 전쟁의 무참함과 비정한 소식에도 우리네 삶에 시원한 바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앞으로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걱정스럽고 도대체 이 나라가 어떻게 될지 걱정이라며 혀 끄는 소리가 곳곳에 들려오더라도 누군가와 이어진 실이 끊기지 않는다면, 아이가 살아갈 세상도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사랑이가 또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