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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리 Oct 30. 2023

글 쓰는 월요일

*월요일 연재글로 옮겨서 같은 글이에요^^




월요일이 되면 어김없이 아이들과 함께 커다란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선다. 머리 감기는커녕 세수도 못 하고 모자를 푹 눌러 쓴 상태다.  주말 내내 제대로 치우지 못하고 어질러진 집안 곳곳이 눈에 밟히지만, 질끈 감고 나온다.



집에서 다소 거리가 있는 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를 아침마다 학교에 데려다준다. 몇 달 전에 아이들 학교 옆에 3층 건물의 스타벅스가 생겼다. 횅했던 동네에 별다방이 가져다준 변화는 적어도 내게는 꽤 크다. 아이들을 내려주고 평소에는 주차 전쟁이 벌어지는 학교 옆길 공영 주차장에 여유롭게 주차한다. 아이들을 안아주며 하루를 살아갈 힘을 실어준다. 학교까지 들어서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몸을 돌려 카페로 들어선다.


카페로 들어서는 시간은 8시 전이라 카페는 한적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어서 오세요"란 싱그러운 소리가 멍했던 상태를 깨우며 반가운 공명을 던진다. 곧이어 갓 구운 크루아상 향이 코끝으로 스며들며 본격적으로 온몸의 세포를 일깨운다. 은은하지만 강력한 빵의 유혹을 물리치고 따뜻한 아메리카노만 큰컵으로 주문한다. 커피 한 잔이 딱 좋다는 것을 이런저런 시행착오 끝에 알았다. 아침에 잠들어 있던 정신을 깨우고 어딘가 내 안에 흐르고 있는 창작의 샘에서 글을 길어내기 위해서 달콤한 그것은 오히려 방해된다는 것을. 월요일 아침에는 뜨겁고 진한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족하다.


커피를 주문하고 바로 3층으로 올라간다. 카페 3층 창가 자리는 보통 비어 있지만, 7시에 오픈하는 카페이기에 때로는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노트북을 두드리며 열심히 일을 하는 이를 만나기도 한다. 좋아하는 자리를 차지하지 못해 아쉽기도 하지만 부지런히 자기 일을 하는 이를 보는 기쁨 또한 크다. 조용히 그 옆에 자리를 차지하고 노트북 세팅을 한다. 그리고 다시 1층으로 내려가서 뜨거운 커피를 받아 들고 조심스레 올라온다. 커피를 바로 마시고 싶은 마음을 잠시 미뤄두고 눈을 감고 하루를 위해 기도한다. 무엇보다 내게 주어진 월요일 오전 시간을 감사하며 그 어떤 시간보다 농축된 깊이의 글을 길어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나만의 리츄얼이 끝나면 커피를 마시며 본격적으로 글을 써본다.


아이들이 등교할 때 커다란 가방을 메고 오는 엄마를 보며 아이들은 묻곤 한다.


"엄마는 무슨 글을 써?"


브런치 북 공모전에 응모해 보겠다고 다짐했을 때는 아이들에게 그것을 설명했다. 그것이 끝나고도 엄마가 특별한 일정이 없는 날은 어김없이 커다란 가방을 메고 자신들처럼 공부하는 학생처럼 집을 나서니 궁금할 법도 하다.



<엄마는 현재진행형>이란 브런치북은 29개의 에세이로 엮었는데 거의 한 달 동안 매일 빠짐없이 글을 발행했다. 누군가는 매일 부지런히 글을 썼다고 생각했겠지만, 정확히는 오래전에 써둔 글을 매일 매만지며 수정하고 발행했다. 그 내용이 브런치북에 실려있지만, 아침마다 모닝 페이지로 적었던 글들이었다. 보통은 의식의 흐름대로 주제를 정하지 않고 쓰곤 했지만, 어떤 시기에 써놓은 글들을 보니 엮어서 한 편의 브런치 북으로 묶을 수 있을 주제로 모아질 것 같았다. 그런 글들을 뽑아서 목차를 만들어 보고 주제에 맞게 내용을 수정하고 흐름을 만드는 것이 어려웠다. 그 작업은 지난 추석 연휴 때 온전히 몰입해서 할 수 있었다. 긴 연휴 동안 마지막 일정으로 시댁과 여행이 있었기에 그전에는 친정에서 보내기로 계획했다. 온전히 친정엄마 덕분에 사흘 내내 아이들과 남편은 친정에서 보내고 나는 아침 일찍 카페로 나와 오전 내내, 점심 먹고 또 나와 오후 내내 글을 썼다.


그토록 뭔가에 몰입해서 온전히 집중해 본 적이 언제였던가. 허리와 목이 뻐근하게 친정집으로 돌아가서는저녁에는 온몸이 아팠지만, 마음만큼은 표현할 수 없는 충만함으로 가득했다. 바람이 잔뜩 깃든 풍선처럼 하늘로 날아갈 기세로 가벼웠다. 글을 쓰는 길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이토록 글 쓰는 것이 재미있고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이 내내 놀라웠다. 그 사흘동안 만든 목차와 초고로 이후에 매일 한편씩 발행해서 브런치북을 만들 수 있었다. 쓰는 내내 진심을 담아 썼다. 그토록 찾던,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사랑하는 것이 주는 기쁨을 연휴 내내 쓰는 동안에 경험했기에.


추석 연휴처럼 하루를 온전히 글 쓰는 일에만 몰입할 수는 없다. 챙겨야 할 두 아이가 있고, 매일 해야 하는 집안일도 산적하다. 하지 않아도 모를 것 같은 사소한 일이지만, 실제로 하지 않으면 금세 표가 나고 먼지가 쌓이고 일상이 삐걱대는 그런 일들. 월요일은 화장실 청소를 하기로 한 날이다. 그것을 쉬면 화장실에 냄새가 나고 틈새를 파고들어 곰팡이가 빼꼼히 존재를 드러낸다. 엄마로, 주부로 살아가는 일상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으려 자신을 다잡는 날이 이어지지만, 월요일 아침 풍경을 포기할 수 없다.


큰 창문 밖으로 조물주의 손길이 물씬 느껴지는 월요일이다. 주말 내내 깊은 가을이 성큼 더 내려앉았다. 건너편 공원길에 심어진 나무들의 옷이 어느새 울긋불긋 바뀌어 있다. 건너편 아파트 외벽 색상들과 더없이 어울려 신도시의 감성이 풍긴다. 그것을 보며 카페에 앉아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 가을 감성에 맞는 글을 써보고자 애쓰고 있는 스스로가 대견하다. 주어진 이 시간이 더없이 애틋하다. 진한 커피 한 모금에 어울리는 그럴듯한 문장 한 줄을 잘 지어내고 싶은 이 마음마저 월요 풍광에 딱 어울린다.



누군가에게는 월요병으로 생의 멀미가 다시 시작될 수도 있다. 매일 비슷하게 반복되는 비근한 일상에 고단함을 느낀다. 늘 만나야 하는 이들, 가까운 관계로 인해 지칠 때는 또 얼마나 많은가. 나 또한 눈을 질끈 감고 나왔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지루한 일들이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이 있기에 월요일 오전에 펼쳐진 이 풍광이 더없이 소중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옆에 있는 이들과 나를 향해 주어진 책무가 있기에 월요일 풍경을 더욱 간절히 기다릴 수 있는 것 아닐까.


월요일이 월요병을 앓는 고단한 날이 아닌, 일상으로 연결해주는 고마운 연결고리가 돼주는 날이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또 한 주가 시작되고 있다.  어떤 가을날이 펼쳐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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