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몰아서 읽는 편이고, 자기 계발서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아서 업무상 아니면 잘 읽지 않는다.
에세이는 나의 정서에 잘 맞고, 주로 위안을 받기 위해, 그리고 나의 책 쓰기에 지평을 넓히기 위해 즐겨 읽고 있다.
어떤 저자와 정서적으로 교류하고 공감하는 일은 참 즐겁고 설레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 전승환 저, 다산초당
책 제목이 그리 끌린 것은 아니다.
제목은 짧을수록 좋고, 길려면 아주 인상적이거나 특이해야 기억에 남는다.
그냥 감성적이거나 아름답기만 해서는 그게 그거라 나중에는 내용과 제목이 연결이 잘 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책 표지의 부제에 적힌 '잃어버린 나를 찾는 인생의 문장들'이 눈에 들어왔고 그것이 오히려 맘에 더 들었다.
뭔가 낯설지 않은 이 느낌은 뭐지? 순간, 내 블로그 제목이 '나를 찾아서 세상을 찾아서'라는 것이 떠올랐다. 내 블로그 부제에 잃어버린 나를 찾아 떠나겠다고 썼던 것 같다.
어, 이 분 나와 비슷한 면이 있네? 이 저자가 추구하는 삶이 나의 그것과 어쩌면 많이 통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도 같이 생겨났다.
전승환 씨는 책 읽어주는 남자, 마음 큐레이터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소란스럽지 않게 조용한 글을 전해주고 싶다는 그의 글은 바람 그대로 읽는 내내 소란스럽지 않으면서 조용하게 내 마음에 쏙 들어왔다.
-마음을 알아줄 이가 곁에 없어도 그저 술이 친구가 되는 날, 술은 말없이 마음 깊은 곳까지 흘러들어와 영혼을 어루만져 줍니다. 우리를 비틀거리게 만드는 술이, 때로는 비틀거리는 삶을 바로잡아준다는 건 굉장히 역설적이죠.
저자도 자주 술을 즐긴다고 한다. 술꾼은 아니지만 그 기분을 즐긴다로 들리더라. 주종은 값싸고 구하기 쉬워서 소주를 마신다고 한다. 술잔이 작고 가벼워서 홀짝 마시는 그 기분도 소주를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라고 한다. 다행히도 나 또한 술을 많이 마시지는 못하지만 술을 즐기고 그 분위기를 너무나도 좋아한다. 술을 마시면 나 자신도 좀 풀어질 수 있고 마음이 열려서 들어줄 준비도 나의 것을 꺼낼 준비도 저절로 된다. 그리고 세상이 다 사랑스러워지는 거다. 저자가 말하는 술의 취함이 이런 사람을 좋아하는 관계의 매개 역할뿐만 아니라 취함 자체가 일이나 인생관 전체의 열정과도 연결된다는 생각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취하는 것은 미치는 것이며 즐기고 사랑하는 것이다. 주종은 나와 다르지만 무엇이면 어떠랴. 이 분의 술 철학이 나와 너무 맞는 것 같아 같이 한잔하고 싶어 진다. 술 한잔 같이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미 점수는 후하게 준 것이고 다른 것은 더 볼 것도 없다.
-가브리엘 마르케스는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에서 삶은 한 사람이 살았던 그 자체가 아니라 현재 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것이며, 그 삶을 얘기하기 위해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는 것이다. 삶은 기억이다.-
우리는 살아온 인생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다. 선택적인 기억을 할 수밖에 없고 때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삶이 기억되어 괴롭기도 하다. 그 사람의 내면이나 성향, 환경, 철학, 가치관, 그리고 건강상태에 따라 우리는 저장해 두는 기억들이 다르다. 어떤 삶을 기억하고 의미를 부여하여 이야기되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삶은 내가 기억하고 있는 이야기이며, 어떤 이야기를 기억해 두느냐는 각자 우리 자신의 몫인 것이다.
이 책에서 또 여러 번 꺼내놓는 이야기가 있다.
-사람이나 집이나 약간의 거리를 둬 통풍이 가능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거리라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의미를 갖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우종영의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에서도 그리움의 간격, 개체공간, 즉 모든 개체는 자신의 주변에 일정한 공간을 필요로 한다.-
아무리 가깝고 좋은 관계라도 적절한 거리를 가지며 관계를 하는 게 좋다.
언젠가 읽은 송미영의 '사는 게 너무 시시하지 않냐?'에서도 이와 비슷한 거리 두기를 Crown shyness(수줍은 꼭대기)라는 말을 소개하며 이야기한 게 생각난다. 나무들이 잎사귀가 무성하게 빽빽한 상태에서도 서로 닿지 않으려고 일정한 틈을 유지하면서 서로를 위한 거리를 유지하여 숲 속에서도 온전히 햇빛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같이 자란다는 것이다. 시험 삼아 훗날 숲을 거닐다 올려다보니 정말 나무 끝과 나무 끝 사이에 모양대로 틈이 있어 그 사이로 밝은 빛이 스며 내리는 것이었다. 자연이 가르쳐 주는 수줍은 듯 거리를 두는 삶의 자세를 우리 인간도 배워야 하지 않을까?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서로에게 자유를 주고 사는 것이 서로를 이롭게 하며 끝까지 함께 가는 길이 될 것이다.
불안에 대해서 이야기한 부분도 인상적이다.
-알랭드 보통의 '불안'에서 우리가 현재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느낌,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 이것이 불안의 원천이다. 는 말을 인용하면서 불안의 치유책을 3가지 내어놓았다. 첫째는 세계라는 거대한 공간을 여행하는 것, 둘째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예술 작품을 통해 세상을 여행하는 것, 여기에 저자는 한 가지 더를 제안한다. 불안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
김민철도 '모든 요일의 여행'에서 지금 여기서 행복할 것! 그러기 위해서 여행을 하라고 한다.
김영하도 '여행의 이유'에서 미래에 대한 근심과 과거에 대한 후회를 줄이고 현재에 집중할 때 인간은 흔들림 없는 평온의 상태에 근접한다고 하였다. 여행은 오직 현재에만 머물게 하고 일상의 근심과 후회, 미련으로부터 해방시킨다고 여행을 하라고 한다.
나는 지난 십여 년의 세월 동안 걱정과 불안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어왔다. 가족에 대한 걱정과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내 생활의 질적 향유는 늘 유보된 채 허덕거리며 살아왔던 것 같다. 그 불안의 기저는 알랭드 보통이 말한 것처럼 더 불행한 미래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데 있었고,
내가 누리고 있지 못하는 것을 내 주변의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것을 볼 때 더 심화되었다.
그리고 걱정으로 살아온 십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나를 챙겨야겠다는 통달 아닌 지혜를 얻어 걱정을 내려놓고 지금 현재에 충실하고 단순하게 생각하며 살기로 하였다.
시간만 되면 혼자서도 여행을 가고 사유한다.
그러니 불안도 점차 사라지고 내 시간이 자잘한 행복으로 충만해지기 시작했다.
지금도 충분히 괜찮다.
여행과 글쓰기는 내 안에 불안을 키우지 않는 보약이자 치유책이 되고 있다.
이렇게 책 속에서 경험과 일치하는 이야기를 만날 때면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인간의 살아가는 양식이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여행하며 생기발랄하게 살겠다.
전승환 작가는 '늦은 밤 아무도 없는 텅 빈 골목길을 걷다가 공허감을 느꼈다면, 지금 당신에게는 위로가 필요한 거'라고 말한다. 그가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