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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모엄빠 Jan 01. 2022

세월을 싣고 달려가는 버스

어제 저녁, 마을버스 안에서 술 취한 중년 아저씨를 만났다. 

술에 가득 취해서 얼굴이 뻘겋고 비틀거렸다. 술에 찌든 냄새가 확 끼쳐서 불쾌했다. 

험상궂게 쿵쿵 거리면서 걸어오다 내 아이를 보고 씩 웃으며 말을 건다. “너 몇 살이니?” 

거리를 두는 나와는 다르게 4살 아이는 경계심 없이 대답한다. “네 딸(4살)이요” 

“아이고 이쁘다. 내 옆에 앉아봐 봐” 하면서 아이의 팔을 잡았다. 

이래도 되나 잠깐 망설이고 있었는데 다른 곳에 앉아 있던 청년이 황급히 아저씨를 제지한다. 

“아빠 하지 마. 손 놔. 가만히 있어.” 하고는 나와 아이에게 정중히 사과한다. 

“죄송합니다. 아버지가 술을 많이 드셔서요” 

“야 임마. 그냥 물어만 본거야. 빡빡하게. 그래 너 잘났다”

“아빠 쫌!” 

그런 실랑이를 보고 있자니 작년에 돌아가신 아빠 생각이 나서 울컥 목이 시큰해졌다. 

자신의 아빠보다 키가 한 뼘쯤 더 큰 그 아들이 예전에 나 같아서 마음이 스산했다. 

나도 그 때는 아빠의 보호자가 될 수 있다고 자만했다. 

술 취한 아빠를 부축할 때 아빠가 짊어진 삶의 무게가 느껴져 

이해하기보다는 미워하는 걸로 대신했다.  

왜 우리 아빠는 다른 아빠들처럼 잘나지 못해서 늘 전전긍긍 사는 거냐고 원망도 했다.

나는 아빠처럼 살지 않을 거라고 대들었다. 

“먹이고 입히고 애지중지 키웠더니 바락바락 대들고. 너 혼자 큰지 알지? 다 내 덕이야” 

“당연히 아빠가 낳았으니까 책임져야지 그게 생색낼 일이야? 날 왜 낳았어?” 

그 질문에 아빠는 답이 없었다. 

할 말이 많지만 하지 않는 것으로 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었던 걸 당시엔 알지 못했다. 

20대의 나이의 내가, 깊고 깊은 밥벌이의 고단함과 서글픔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차가운 공기를 헤치고 일어나 매일 출근해도 삶은 늘 본전치기 같았을 거다. 

멈춰 섰지만 조금씩 뒤로 밀리고 있는 걸 실감하고 

자식들은 부쩍 커서 부모를 평가하고 못마땅해 하는 걸 목격하는 그 중년의 쓸쓸함. 

거나하게 취하면 복잡했던 마음도 단순해지고 무거운 상념도 가벼워졌을 거다.

술에 취한 저녁, 잠든 자식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내 인생이 너를 만나러 온 길이었다면 

가시밭길도 꽃길이라고 했던 가냘픈 부정을 왜 그렇게 밀어냈던가. 

나도 아이를 낳고 잠든 아이의 볼에 내 볼을 부비면 볼품없는 내 하루도 반짝 빛이 나더라. 나도 아빠에게 이렇게 기쁨이 되는 자식이었음을 알게 됐을 때, 아빠에게 했던 매정한 말들이 나에게 돌아와 심히 아팠다. 하루는 길어도 1년은 빨리 갔고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은 

더디게 가도 작별의 순간은 순식간에 찾아왔다. 

언젠가 아빠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아빠는 죽는 게 안 무서워?” 

“뭐가 무서워. 원래 부모는 자식보다 먼저 가는 거야. 할머니 곁으로 가게 되겠지”

그때 그 대화를 해서 다행이었다. 아님 자식 앞에서 차마 무섭다는 말을 하지 못했던 걸까 부모가 위대한 지 이제야 알겠다. 그 무서운 길을 먼저 가서 해보니 별거 아니라고 

어서오라고 그게 순리라고 길을 알려주니 말이다. 그때 아빠를 만나면 나에게 뭐라고 하실까?

그 아저씨는 잔뜩 심통이 난 아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옆에 앉아봐라 쫌!”

아저씨가 자신의 옆자리를 팡팡 치는데도 아들은 고개를 돌리고 모른 척 했다. 

그때, 내 아이가 자신에게 말한 줄 알고 그쪽으로 뽀로로 달려가서 

술 취한 아저씨 옆에 앉았다. 아저씨는 천국을 보는 양 얼굴이 환해졌다. 

“하이고 이쁘다. 이뻐” 아이의 작은 얼굴을 아저씨의 투박하고 거친 손으로 감싸 쥐자 

그 위로 굵은 눈물이 똑똑 떨어졌다. 

“하. 우리 애도 이맘 때 있었는데... 딱 너 만 했지. 너처럼 이뻤어. 미안하다. 미안해”

갑작스러운 사과의 말에 결국 나도 눈물이 떨어졌다. 그 흔한 말에 담긴 회한과 

진심을 알기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아저씨와 나는 둘 다 옷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버스 안에 때 아닌 눈물바람을 이해 못하는 자식들 두 명이 어리둥절 우리를 쳐다본다. 

나는 속으로 그 청년에게 외쳤다. ‘자식이기만 할 때가 좋은 거야. 그거 아냐? 쨔샤’ 

야속한 세월은 버스를 타고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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