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

남들의 눈에는 그저 쓰레기인

by 싹둑

나와 내 물건은 떼려고 해도 뗄 수가 없는 관계이다.

내가 물건을 지나치게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일종의 저장강박증인 것 같다.

예전에 인터넷에 찾아봤다.


나는 남들이 보기에 조금 과할 정도로 물건에 집착을 많이 한다.

물론 포장지부터 영수증까지 온갖 걸 모아놓는 정도는 아니고,

물건을 버리려고 하면 온갖 이유가 생겨서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한다.


이 받침은 정이 들어서.

이 편지와 키링은 친구가 생일선물로 줘서.

이 보관함은 여기 엮인 사연이 있어서.

언젠가 쓸 것 같아서.

아직 안 쓴 게 아까워서.

버리기엔 예뻐서.


끝없이 이유를 대다 보면 결국 물건 정리는 흐지부지 된다.


몇 년 전인가

언제 한번 아빠한테 쌍욕을 들어먹은 적이 있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평소에 내 방이 성에 안 찼던 아빠가 방을 청소하고 정리하라고 몇 주에 걸쳐 여러 차례 말씀하셨지만

내가 보기엔 버릴 게 없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어설프게나마 해놓은 게 아빠의 성에 차지 않았던 것이다.

(조금 더러웠던 건 부정하지 않겠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퇴근 후 아빠는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화를 참을 수가 없었는지 저녁식사 직후 내 방에 쳐들어와 물건 정리의 중요성이나 내 병적인 집착에 대한 설교 따위를 무섭고 길고 시끄럽게 늘어놓더니 내가 소중하게 여기던 잡동사니들을 쓰레기통에 욱여넣음으로써 처리하였고 나는 울고 불며 듣지도 않는 아빠를 향해 그 물건만큼은 버리지 말라고 거의 빌듯이 반복하여 말했더랬다.


나에게는 그 시간이 끝나지 않는 영원처럼 느껴졌다.

아빠가 한번 저러면 누가 말리지도 못하지, 엄마는 말리는 시늉을 하다가 거실로 가버리지, 내가 아끼는 물건은 버려지지, 멘탈은 혼미하지, 눈물은 나지, 말은 제대로 안 나오지...


참 많이 울었다.

아빠가 들어와 있던 그날의 내 방은 공기마저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날 아빠의 언행은 내 마음속 영원한 상처를 남기기에 충분했다.

말로 설명이 잘 안 되지만

정~~~~~~~~~~말 트라우마틱했다.


그때 제일 화나고 속상했던 점은 아끼던 물건이 버려졌다는 점인지, 아니면 내 애원이 무시당했다는 점인지, 그것도 아니면 쌍욕을 바가지로 들어먹었다는 점인지 잘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아픈 날이었다.

아빠는 평소에 매우 다정한 편인데도 상당한 분노조절장애가 있으셔서 한번 빡돌면 아무도 못 말린다.


안다.

더러운 자녀방을 지켜보는 부모님 입장에서는 속 터지고 답답한 거.

그래도 완전 앞서나가 독단적으로 정리를 진행하는 것보단 조금 기다려주는 것 또한 부모님의 역할 아닌지.


혼날 땐 누가 안 그렇겠느냐만은, 정말로 가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었다.

(물론 갈 곳도 없고 위험하니 안 했다!)


시간이 지나고 현재, 물건은 또 쌓였지만 바빠서 그런 걸까, 버리기 싫어서 그런 걸까

다시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나에겐 다 너무 소중했고 소중한 물건들인데.

이젠 보지도 않는 시간 지난 교과서 같은 걸 놓아주기가 힘들다.


정신병의 일종인 것 같다.

지나친 집착. 애착. 정...


그래도 내가 생각하기에 고무적인 것이 하나 있다면

나는 버리는 걸 잘 하지는 못할지언정 정리 그 자체를 포기하진 않는다는 사실.


언젠가는 미니멀라이프를 살 수 있는 날이 올지도.

till then

노력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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