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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Sep 27. 2023

허주희의 人 인터뷰 19. 이재무 시인

시(詩)는, 신이 주신 고귀한 선물

어느 봄날의 하교 길, 흐드러지게 피어 난 목련꽃을 바라보며 감수성을 키우던 소녀 시절. 

문학의 꿈을 남몰래 간직한 소녀는 장차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리는 ‘시인’을 꿈꾸었다.

막연히 시(詩)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비록 ‘시인’은 되지 못했지만, 지금까지 시인들의 아름다운 시를 읽으며 감동과 위로를 받아왔다. 어쩌면 ‘시인’은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위안과 감성을 불어넣어 삶을 풍요롭게 하는 존재가 아닐까. 

어느 해 겨울, 눈길을 걸으며 찾아간 곳에서 이재무 시인을 만났다.



“치유 불가능한 문학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어떻게 시인이 되었냐?”는 질문에 이재무 시인은 ‘시인답게’ 함축하여 이렇게 말했다. 시인이라 그런지, 말(言)도 달변가 수준이다.


문학의 꿈을 간절히 키워도 뜻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문학이 꿈은 아니었지만 우연히 문학의 길에 접어들어 ‘문학인’으로 일생 살아가는 이도 있다. 이재무 시인은 후자의 경우다.


“시를 본격적으로 쓴 것은 대학 3학년 복학생 때부터입니다. 학교 선배들과 어울리다가 시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 주변에 소설가, 시인 등 문학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시를 쓰던 선배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이죠.”


“어느 덧 시를 써 온지 40년이 되었다”는 이재무 시인은 그동안 3년 터울로 시집을 발간하였고 산문집도 몇 권을 냈다고 한다.


“40년 전 선배가 주었던 문학바이러스가 ‘시’라는 악성바이러스가 되어서, 치유 불가능한 환자로 살고 있습니다. 당시 문학을 같이 했던 선배들은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네요.”



새로 쓴 시,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독자와 소통


이재무 시인은 1983년 《삶의 문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시집 『섣달 그믐』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 『벌초』 『몸에 피는 꽃』 『시간의 그물』 『위대한 식사』 『푸른 고집』 『저녁 6시』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생의 변방에서』『사람들 사이에 꽃이 핀다면-이재무의 시 읽기』 등이 있다. 

제 1회 윤동주문학상과 난고(김삿갓)문학상, 소월시문학상, 풀꽃문학상, 편운문학상을 수상했다.


시를 쓰는 것은 시인에게 일상이다. 이재무 시인은 페이스북에 부지런히 시를 올리면서 독자와 소통하고 있다. 보통 하루 이틀에 걸쳐 한 편 정도 시를 올린다. 그에게 페이스북은 새로운 시를 발표하는 매체이자, 소통의 공간이 되고 있다. 자신의 시를 추려내고 살려서, 신문이나 시 잡지에 다시 발표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에게 페이스북은 시를 거르는 장치가 되고 소통하는 곳이자, 창작의 공간이다.


‘시인’이라는 직업인으로서의 시, 40년간 동고동락해온 시, 이재무 시인에게 시는 어떤 의미일까. 


그는 “시가 고맙다”고 말한다. “내게 밥을 갖다 주고, 성취감을 주고 일시적 구원이지만 구원을 주었다”고 한다.


“시가 나에게는, 신이 주신 고귀한 선물입니다.”



자연, 사람, 사물 등 일상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들이 시의 모티브

이재무 시인은 자신의 문학의 모토는 ‘생활의 발견’이라고 한다. 그저 평범한 생활 속에서 지혜를 얻고, 시의 모티브를 구한다고 한다.


“저에게 일상의 종교는 시입니다. 주로 거리에서 시를 많이 구합니다.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가면서, 한강변을 걷고, 길을 걸으면서 잡념과 상념에 빠집니다. 걸으면서 과거와 만나고 오지 않은 미래를 생각합니다. 들판의 꽃과 나무, 강태공의 물고기 등 일상의 사물을 관찰하면서 시상을 떠올립니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들이 시의 모티브가 되죠.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 자연, 사물 등 대상들과의 즉각적인 반응을 통해 순간적인 느낌과 깨달음을 시로 씁니다. 이처럼 순간적인 느낌을 현장에서 쓰고, 이를 바탕으로 책상 앞에서 숙고하여 시를 써 내려갑니다.”


이재무 시인은 “열정과 재능이 따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열정이 곧 재능”이라고 말한다.


열정을 가지면 그것이 뜨거운 삶이 되며, 간절함과 열정은 삶에서 함께 갖고 가야 할 동반자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죽을 때까지, 숟가락을 들 힘이 있을 때까지 시를 쓰겠다”고 한다.



“위대한 작가의 공통점은 초심을 잃지 않고 초창기에 창작의 열정을 그대로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설사 유명해지고 자기 브랜드가 생긴다 해도 그 브랜드에 의지하지 않고 초심과 열정을 지속적으로 가지려 합니다. 예술가의 생명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이처럼 초기의 간절함과 열정을 스스로 견인하고 지켜나가야 합니다. 예술가나 문학인이라면, 어떤 보상이나 대접을 바라지 않고 스스로 운명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시집 한 권 들고 햇살 좋은 창가에 앉아 커피와 함께 마냥 시를 읽고 싶다. 요즘들어 마음의 갈피를 못 잡고 속이 뒤숭숭하다. 

조용한 곳에서 가만히 시를 음미하면서 그렇게 한 편, 두 편 읽고 싶다. 

삶에 지친 심신을 위로받고, 가슴에서 우러나는 희열과 열정을 다시금 새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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