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뺨을 맞아본 적이 없다.
아빠는 막내딸인 나를 가장 예뻐했고, 한 번도 손찌검을 하지 않았다. 어릴 때 엄마에게 빗자루로 맞아 본 것이 전부다. 아주 어릴 때 엄마에게 맞는 것을 피해 밖으로 도망쳤는데, 엄마가 빗자루를 들고 나를 쫓아온 적이 있다. 나는 열나게 뛰면서 ‘내 친엄마 맞아?’ 의심했던 기억이 있다.
이런 내가 생애 처음 누군가에게 뺨을 시원하게 맞았다. 빨갛게 손자국이 생길 만큼, 갓 중학생이 된 내게 큰 충격이자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
1985년 3월,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초등학교와 다르게 과목마다 선생님이 새로 들어오는 것이 그렇게 신기하고 즐거울 수 없었다. 특히 국어와 음악 시간은 가장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호기심 어린 14살 소녀의 눈은 초롱초롱 빛났다.
그러던 3월 학기 초, 어느 날 나는 처음으로 몇 분 지각하고 말았다. 내 담임은 미혼의 젊은 남자 선생이었다. 그런데 평상시와 달리 담임선생이 “오늘 지각한 사람 나오라”고 하는 것이다.
‘왜 오늘따라 지각한 사람을 나오라고 하는 거지?’
남자 애들 4명, 여자는 나까지 2명이 앞으로 나갔다.
담임선생은 우리에게 따라오라고 했다. 지각생들은 한 명씩 줄지어 담임을 따라갔다. 담임은 복도 끝으로 가더니, 어느 후미진 문 앞에 섰다. 그러더니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영문을 모른 채 우리도 따라 들어갔다. 불빛 하나 없이 칙칙하고 어두운 곳, 그곳은 체육시간에 쓰는 매트 등 온갖 잡동사니를 보관하는 작은 창고였다.
‘이 으슥하고 어두운 창고로 왜 불러들인 거지?’
담임은 창고 문을 닫더니 우리에게 일렬로 서라고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남자 애부터 빰대기를 갈기는 거다. 순간 놀라서 나는 온 몸이 얼어붙었다. 맨 끝에 섰던 나는 ‘설마 여학생까지 때리진 않겠지?’ 했는데 일말의 기대는 곧바로 산산조각이 났다. 도미노 쓰러뜨리듯, 선생은 마지막으로 내 뺨을 힘주어 때렸다.
14살,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뺨대기를 맞았다. 그것도 담임선생님에게. 내 뺨은 순식간에 빨갛게 부어올랐다. 나는 본능적으로 손으로 뺨을 가렸다. 지각생 6명은 죄지은 사람 마냥 창고를 나와 줄지어 교실로 들어갔다.
교실에 앉아 있던 아이들이 들어오는 우리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나는 교실에 들어가면서 창피하다는 생각 보다는, ‘조금 지각한 것이 뺨을 맞을 정도로 잘못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 신입생 때 겪었던 ‘뺨대기 사건’은 내게 무의식적으로 ‘지각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각인시켰다. 당시만 해도 이유없이 학교에 결석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며, 지각도 학생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14살, 그 때의 강렬한 경험은, 나를 성실한 학생으로 성장시켰다. 나는 초등학교는 물론,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개근상을 탔다. 학창시절에 탄 개근상은, 지금까지 내가 받은 어떤 상 보다 귀하고 값진 상이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아 본 뺨대기.
14살 사춘기, 돌아보면 그래도 의미 있던 뺨대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