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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Sep 06. 2023

재판정에서 판사에게 질문하다


국민참여재판 그림자배심원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나 더 했다.

재판이 끝나고 사건 관계자들이 모두 퇴정한 후에, 재판을 맡았던 판사와 방청객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마련된 것이다. 방청석에는 모 대학 법대생들이 견학차 재판을 참관했다. 


“저는 이 재판을 끝으로 20년의 판사 생활을 마무리합니다. 막상 끝낸다고 생각하니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판사가 짤막하게 소감을 전했다. 


그림자배심원으로 와서, 판사와 대화를 나누는 것 또한,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라 신선했다. 평범한 국민이 일상을 살아가면서 판사를 만날 일이 몇 번이나 있을까? 재판 과정도 지켜보고 우연찮게 판사와 격의 없이 대화도 나누게 되었다. 재판이 끝난 뒤라 모두가 긴장감을 풀었고 분위기는 편안했다. 방청객이 질문하는 순서가 있어 나도 손을 번쩍 들고 질문을 던졌다.


“판사님은 20년 간 수많은 사건을 접하고 판결을 내렸을 텐데요,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판사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문을 열었다.

“그동안 많은 재판을 해왔는데 제가 지방 법원에 있었을 때 접했던 사건이 매우 충격적이라 생각이 납니다. 당시 재판을 하면서 냉정함을 유지하려 애썼지만 인간이 이렇게까지 잔혹할 수 있을까 몸서리쳤던 기억이 납니다.”

판사에게 들었던 내용은 대략 이렇다. 

지방 소도시 외곽, 한적한 산간 지역에서 한 여류 시인이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늦은 저녁, 그 카페에 강도들이 들이닥쳤다. 혼자 있던 여성을 결박하고 성폭행한 뒤 살해하였다. 심지어 죽은 사람을 상대로 그들은 폭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알려지지 않았던 사건, 지역신문에나 나왔을 법한 이런 흉악한 사건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얼마나 자행되고 있었을까. 한 때 시인을 꿈꾸기도 하고, 번잡한 도심이 아닌 자연 속에 예쁜 통나무집 카페를 해보고 싶은 꿈을 꿨던 내게도 충격이었다. 


나는 법원에서 가벼운 죄와 무거의 죄 두 가지 사례를 접했다. 죄의 경중을 따지자면 상대적으로 더 가볍거나 혹은 더 무거운 죄가 존재할 것이다.

앞의 재판에서 ‘죄는 미워하지만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어느 정도 와 닿았다면, 판사가 이야기해 준 사례는 내가 제 3자임에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죄라는 것도, 결국 사람이 저지르는 행위이니까. 어떤 원인도 없고 일말의 양심도 없고 정상을 참작할 만한 하등의 이유 없이 저지르는 극악무도한 범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판사에게 직접 들은 사건의 피해자 모습에서, 이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의 삶을 진지하게 고찰하였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시를 쓰고 이웃과 교류하면서 평범하게 행복을 가꾸어 갔을 여성. 그의 얼굴도 이름도 모르지만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시인의 명복을 빈다. 무엇보다 여성이 마음 놓고 활동하면서 꿈을 펼치는 사회,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소망한다.


국민참여재판을 통해 나는 기존에 갇혀있던 사고의 틀을 깨고 편견 없이 세상을 포용하는 너그러움을 배웠다. 이를 계기로 나는 한 뺨 더 성장하고 세상을 넓게 관망하는 성숙한 어른이 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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