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벌이를 희망하는 가장에게도 꿈이 있고 자존심이 있다.
배차장, 설마 신청 안 했지?
점심시간, 팀장이 식사자리에서 물었다.
회사가 최근 공지한 희망퇴직에 신청했냐는 것이었다.
신청을 할 당시에는 팀장이 말릴까봐 말을 할 수가 없었지만,
심사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네, 저 신청했어요.'
팀원들이 다 알게 되었다..
조직개편이 있었고, 나는 역시 또다시 면팀장이 되었다.
나는 원래 내가 경력을 시작한 이커머스 부문이 아니라 수출업무를 하는 조직의 실무자로 발령을 받았다.
무슨일을 하는지 실체가 모호한 잉여 조직으로 마치 대기 발령처럼 발령이 난 팀장들에 비해서 나는 형편이 나은 거라고 위로 아닌 위로도 받았다.
사람들은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 또 죽을 때까지 유치하다.
고3 때 몇몇의 친구들과 스터디클럽을 결성하고 모여서 함께 놀았었는데, 우리는 함께 일기장을 돌려서 썼었다.
그 당시만 해도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종이 일기장에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필체로
고3으로서의 암울한 현실과 불투명한 미래를 함께 공감하며 버텨나갔었다.
그때 한 친구가 썼었던 일기의 구절이 여전히 내 맘에 남아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유치함을 효과적으로 감출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라는 문구.
다시 돌아가서,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많은 상처를 받고, 또 아무리 나이가 든다고 해도 서운한 상황이 생길 때 어쩔 수 없이 마음이 섭섭해지고 외로워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나잇값을 하느라, '성숙함'이라는 노련한 사회생활 경력으로 그것이 드러나지 않도록 효과적으로 포장하면서 버텨내는 것이다.
두 번째 팀장 발령을 받던 날부터 매일매일,
'나는 앞으로는 자연인인 나 스스로로 회사에서 일할 것이며, 어떤 지위나 타이틀에 기대지 않겠다'라고 다짐해왔었다. 면 팀장 발령을 봤을 때 첫 번째 면팀 경험보다 훨씬 충격은 덜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자리를 지키고 어떤 이는 팀장으로 새로이 승진을 하고 어떤 이는 나처럼 자리에서 내려오는, 이런 상대적인 상황 속에서 박탈감과 좌절감이 전혀 없을 수는 없다.
나는 내 현실을 빠르게 받아들였는데, 조직개편 이전부터 얘기가 있었던 희망퇴직 공지가 올라왔다.
희망퇴직, 나도 신청해볼까..?
누군가는 신청하겠거니.. 하고 있었고 딱히 내가 그 대상이 되리라고는 마감 전날까지 생각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오래 버틸 생각도 아니었지만, 수출 쪽에서 딱 1년 정도 해외 전시회나 정부지원사업 등을 경험하면서 좀 더 배울 것이 남았다는 작은 기대가 나의 퇴사를 향한 마음을 유예시키고 있었다.
퇴근길에 계약직 임원을 만났고, 우리는 희망퇴직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내가 아깝다고 했다. 책도 썼고, 경력도 잘 가꾸었는데, 무엇이 두려워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느냐는 것이었다. 희망퇴직받고 다른 곳으로 옮기면 되지 않냐고... 그는 내 가슴에 은근히 번뇌의 불씨를 던졌다.
내가 해당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기준 - 근속연수에 따른 추가 보상- 에 딱 턱걸이로 해당된다는 사실을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인지하게 된 나는, 곧바로 집에 가서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편은 신혼초부터 정규직으로서의 조직생활을 애초에 마감한 사람으로서, 항상 내가 조직과 사람들 그리고 부당함에 대해서 토로할 때마다 답답해하며 그렇게 보수적인 회사는 어울리지 않으니 그만두라는 얘기를 누누이 해왔었다.
역시나 예상했던 바대로
'희망퇴직하면 일 년 치는 월급을 준다는데 뭘 망설여. 그 회사가 당신한테 잘해준 것도 없잖아. 좀 쉬어도 돼. '
라는 짧고 명료하고 고민 없는 답변이 툭 나왔다.
맞다.
나는 내 스스로 외벌이 가장을 희망하는 직장맘이지만, 우리는 맞벌이이다.
가계를 책임지는 무게를 함께 짊어질 수 있다.
큰 고민 안 해도 될 수도 있다. 내가 관두면 남편이 앞으로 쉬기 어려워지겠지만, 벌이가 없어지는 상황은 오지 않는다.
꼭 딱 이 회사가 아니라도 괜찮을 수도 있다.
집도 가깝고 워라벨이 보장되고 또 업무강도가 기존 직장보다 상대적으로 세지 않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런 회사가 여기밖에 없으려나?
세상에 남자가 한 명뿐이라고 생각하고 질척하게 매달리는 상황일 수도 있다.
그와 깨끗하게 이별하면 더 멋진 훈남들과의 데이트 기회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굳이 정말 평생 갈 배우자를 고르는 일도 아니면서 내 인생 전체에서 점 같은 존재일 이 회사와의 이별이 대체 뭐라고 이렇게까지 밤잠을 설치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희망퇴직 신청 마감일 전날 밤 나는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스스로 회사를 떠나겠다는 결정은 사랑하는 연인과 억지로 이별하는 감정과 같다.
희망퇴직 신청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나는 오전에 인사팀을 방문했다. 인사팀을 가는 길에는 여러 팀들이 있고, 이렇게 민감한 시점에 그 팀을 방문한다는 것은 '나 희망퇴직 신청하러 왔소.'라고 다른 직원들에게 광고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인사팀을 향해가는 사무실 길목에 있는 몇몇 책상에 있는 눈들이 나를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내가 희망퇴직 대상이 되든, 아니든 간에 '희망퇴직 관심자'로서 낙인이 찍혔을 것이다.
전날 이미 인사팀장에게 운을 띄워두었기에 담당 직원은 내가 받을 희망퇴직 보상에 대해서 기입한 작은 포스트잇과 희망퇴직 신청서를 건네주었다.
신청서를 받으러 가는 길, 그리고 받아서 자리로 돌아오는 그 짧은 여정은 지금 생각해봐도 너무 우울하고 슬펐다. 나는 어쨌든 간에 아직도 감정이 남아있는 회사와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이 없는 결혼을 조건만 보고 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회사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적당히 좋아하면 됩니다.
라고 몇 년 전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퇴사하겠습니다]의 저자 이나가키 에미코 상이 말했다.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이 회사 안에 나의 몇 년의 추억이 고스란히 머물고 있다.
헤어지기 위해서 이별의 편지를 막상 작성하려고 하니, 달고 씁쓸했던 오만가지 추억들이 모두 생각났다.
여성으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일들, 능력을 인정 못 받았다는 좌절감, 평가가 부당하다고 느꼈던 시간들..
모두 나에게 쌓인 회사와 함께한 경험이었다.
회사는 나와 지긋지긋한 애증관계에 있었던 애인 같았다.
싸우기도 하고 서로 상처도 받았지만, 돌이켜보면 즐겁고 행복한 순간의 추억들도 많아서 쉽게 이별할 수 없는.. 익숙하고 오랜 연인 같은 회사.
스스로 회사를 떠나겠다는 결정은 사랑하는 연인과 억지로 이별하는 감정과 같았다.
한 장짜리 희망퇴직 신청서를 작성하는 내내 바닥까지 침잠한 우울함이 정말 바닥으로 나를 푹 꺼지게 만들었다.
마감일 퇴근을 한 시간 앞두고 나는 희망퇴직 신청서를 제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