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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철우 May 09. 2020

<나는 세상의 많은 것들을 착시한다>

EBS <나도작가다> 공모전

<나는 세상의 많은 것들을 착시한다.>

나는 거창하게 꾸며진 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도전이라는 말은 어딘가 좀 웅장하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소주잔 들고 ‘도전’이라는 말을 한다면, 나는 곧장 불편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반대로 내가 도전이라는 말을 뱉었을 때 나를 아는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나를 모르는 사람들까지 내 앞으로 몰려들 것이 뻔하다. 그러곤 입에서 나올 다음 말들을 기대 하겠지. 관중들은 나를 응원할 것이다. 말 사이 사이 걱정 어린 말도 섞을 것이다. 하지만 실은 걱정을 위장한 시기와 질투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나는 도전이란 말이 좀 부담스럽다. 도전은 가족과 친구들에겐 언제나 인내의 말이기도 하니까.
 도전과 비슷한 말로 ‘시도’가 있다. 나는 이 시도라는 말을 사랑한다. 시도는 가볍다. 시도는 도전과 달리 성공의 책임감이 따라오지 않는다. 산뜻하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것들이지만, 한 번 해봄으로써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것. 도전은 세상에 두각을 드러내고 싶은 자신감이라면, 시도는 나를 만족 시키기 위한 자존감 같은 거다. 내게 모든 도전은 시도였다. 나는 여전히 시도한다. 그리고 어느 날, 내가 나의 일에, 나의 성취에 적당히 취하게 되는 날. 이전의 날들은 도전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스리슬쩍 말해보려고 한다. 나는 그날을 상상한다.

 기억 속에서 나의 첫 시도는 혼자 집을 짓는 일이었다. 뭐가 이렇게 거창할까 싶겠지만, 정말이다. 심지어 그때 나는 여섯 살 꼬마였다.
 일요일만 되면, 나는 그렇게 집 밖으로 나가고 싶어했다. 반면에 아버지는 아니었다. 당시에는 토요일까지 모든 회사가 근무를 했었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일요일은, 일주일에 겨우 하루 주어진 휴일이었다. 집에서 쉬고 싶은 게 당연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고민 끝에 묘책 하나를 생각해내게 되는데...  
 거실에서 TV 잘 보고 있는데, 나더러 잠깐 방 안에 들어가 있으라는 거다. 어리둥절 했지만, 재밌는 일이 벌어질거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냅다 리모컨을 던지고 방안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한 십분쯤 지났을까, 아버지는 나와 보라고 했다. 나는 설레는 마음에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나갔다. 거실에는 순식간에 집 한 채가 지어져 있었다.
 집은 단촐했다. 부엌 의자 두 개를 마주 보게 놓은 다음 그 위로 거실에 나뒹굴던 이불을 덮었 씌워 지은 집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터무니없이 작았을 그 공간이 당시 내겐 34평 아파트처럼 느껴졌다. 아버지가 나를 위해 지어준 그 집 안에서 난 꽤 오랜 시간 놀았다. 안에는 빛이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랜턴 하나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우주에라도 온 듯한 신비감을 맛보았다. 그리고 내 꿈은 그렇게 멋진 집을 짓는 일이었다.
 다음날부터 나는 아버지가 만든 집을 똑같이 만들고 부수고, 다시 만들고 다시 부수기를 반복했다. 부엌 의자를 하나 더 받쳐 보기도 했고, 그 위로 다른 이불을 덮어보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내 눈에 가장 멋진 집을 지었다.
 내 손으로 완성한 집 앞에서 팔짱을 끼고 당당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찍은 사진은 오래된 앨범에 꽂혀 고향집 서가에 보관되고 있다. 가끔 앨범을 꺼내보게 되는 때, 유독 나는 그 사진을 오래 바라보는데 그 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집은 형편없다. 견고하지도 않고, 외적으로 아름답지도 않다. 하지만 그날의 내겐 충분히 예술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시도였으며, 최초의 착시였다.


 나는 세상을 착시한다. 착시해서 두려움 없이 도전할 수 있었고, 실패할 수 있었다. 그 날의 기억으로 나는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학창시절 내내 잘 만들기 위해 공부했다. 고등학생 때 수능을 준비하는 와중에 틈틈이 발명대회에 참여해 적지 않은 상을 타기도 했다. 기술을 갖고 싶었고, 그 기술로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고 싶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요리도구를 연구했으며, 특허를 받기도 했다. 수능이 다가올 때쯤 기계공학과로 진로를 정했고, 실제로 입학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더 이상 발명품을 만들지도, 집을 짓지도 않는다. 당시의 내가 보는 나는 화려했겠으나, 돌이켜 보면 어설펐고 엉성했다. 내게 모든 도전은 그랬다.

처음엔 착시해서 시작하지만, 깊숙이 들어갔을 때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꿈을 자주 바꿨지만 진심이 아니었던 적 없다. 꿈을 자주 바꿨지만 부끄럽지 않았다. 나는 시도 했다고 믿는다. 매 순간을 도전이란 웅장한 말로 포장했다면, 나는 지금 이 글을 쓰지도 못했을 거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을 테니까.
 이제 나는 글이 쓰고 싶다. 집을 짓거나 발명품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편하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문장을 통해서 일상의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나도 작가다> 공모전에 글을 부친다. 이 글도 도전이라고 하면 너무 많이 웅장하니까 시도라고 표현할 거다. 돼도 그만 안 돼도 그만. 시도는 보너스 타임이다. 잃을 게 없으니까. 만약 이 글이 뽑혀 잘 차려진 스튜디오에서 낭독하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 이 글이 도전이었다고 스리슬쩍 말해보려고 한다. 안 되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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