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세 청년, 내 집 만들기 [3장]

닭장은 싫다! 열혈 청년의 협소 주택 건축 도전기!

by 장도리


25세 청년이 집을 손수 지은 경험담을 토대로 작성하였습니다.

본 글을 통하여, 불확실성의 연속에 살아가는 청년들이 집에 대한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고,

닭장 같은 아파트가 아닌, 삶이 살아 숨 쉬는 의미 있는 주거 환경에서 살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은 이사를 다녔던 집을 중심으로 서술됩니다.

건축방법에 대해서 궁금하신 분들은 4장부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강화도에서 보냈던 자연에서의 추억은 망령처럼 나를 따라다녔고, 나는 우리 집을 작은 강화도의 작은 숲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용돈을 차곡차곡 모아 희귀 동물 수집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고, 그 첫 번째 애완동물이 타란튤라였다.

해리포터에 나오던 그 커다란 신비의 동물! 거미가 탈피를 하면 몸집에 두배씩 커지며, 손바닥 만한 크기로 성장하게 되었다.

해리포터 타란튤라


나는 타란튤라 외에도 여러 가지 희귀 동물과 식물을 구입했고, 다섯 종의 타란튤라, 장수풍뎅이, 팩맨 개구리, 개코 도마뱀 등 우리 집의 베란다는 아마존을 방불케 할 정도로 커지게 된다.


당시 애완동물의 먹이로 ‘밀웜’이라는 애벌레를 키웠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밀웜이 많아지자

인터넷 희귀 동물 카페를 통해 밀웜 포장판매를 했다. 고슴도치, 앵무새, 도마뱀 등 희귀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은 구매를 해 주었고, 나에게도 고정적인 수입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실 밀웜은 소고기보다 높은 단백질 함유량의 초고단백 슈퍼푸드 중에서 하나이며,

청결한 관리 아래서 번식하기 때문에, 웰빙 먹거리 중에 하나다.


밀웜



월 40만 원씩 들어왔기에 고등학교 2학년 치고는 꽤 부르주아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부르주아 생활도 잠시였다...


나의 주 고객이었던 '밀웜 아저씨'는 결국 양식 농장을 만들었고, 순식간에 국내 밀웜 시장을 장악했다.

밀웜의 시장 가격은 곤두박질쳤고, 나의 밀웜 장사는 문을 닫게 되었다.


대학교 수시 면접에서, 교수들에게 밀웜 장사를 실패 기를 이야기를 간략하게 이야기하며 다음과 같이 말의 매듭을 지었다.


“00대학교에서 저를 키워준다면, 저는 더 큰 상인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00대학교



그렇게 나는 대학교에 입학했다. 입학과 동시에 대학이란 곳에 대해서 나름의 정의를 내렸다.


대학[大學]


크게 배우는 곳. 단어의 의미처럼 크게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왜, 크게 배워야 하는가? 세상은 너무나도 넓고, 방대하기 때문에 크게 배우지 않으면,

이리저리 휩쓸려서 이리저리 떠밀려서 사는 시대의 잔당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서, 대학이란 곳에서는 사회라는 불확실성의 바다를 항해하기 이전,

사회라는 바다에 대해 학습을 하고, 채비를 하는 ‘항구(port)’라고 정의를 내렸다.


그 당시 나는 글로벌한 무역상인이 되고 싶었다. 책에서만 배우는 무역 이론이 아닌,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보따리를 매고 상행위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첫 방화쇠의 과녁은 일본 도쿄였다.


요요기시장


일본에서 한국에서 한 보따리 사간 자개 거울을 예쁘게 포장하여, 일본 도쿄 요요기 시장에 있는

플리마켓에서 팔아 여행에 필요한 경비를 마련했다.


다행이도, 첫 장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디즈니랜드, 하코네 등 도쿄의 이곳저곳을 구경하러 다녔다.




일본을 여행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주택'이었다.


오밀조밀 붙어있는 정갈한 느낌의 협소 주택, 실속 있고 알차 보이는 주택들의 모습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무채색의 통일된 색상의 주택들에서 일본의 전체주의적인 성향을 느낄 수 있었고,

화장실 모서리에 실리콘 처리 깔끔하게 처리된 마감을 보면서, 축소지향적인 일본인의 성향을 본받게 되었고

(앞으로 한국도 30평 미만에 작은 평수와 개인의 취향을 반영한 협소 주택이 뜨게 될 것이다.)


나중에 나도 이런 알찬 집을 짓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일본의 협소주택

일본의 주택들은 내진구조가 잘 반영됐을뿐더러, 주차시설에 대한 규제가 엄격하여 대부분의 집들이 작은 차고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도로 폭보다 더 작았고, 길가에는

쓰레기 하나 없게 말끔하게 정리 정돈되어있었다.



난 첫 여행 이후 방학만 찾아오길 손꼽아 기다렸고, 돈을 차곡차곡 모아 방학마다 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여행을 하며 가장 큰 즐거움은 역시나 '건축물'이었다.


유럽에서는 100년은 기본이고 500년이 지나도 완공이 되지 않은 건물들이 꽤 있었고,
그때마다 놀람을 넘어 경악스러웠다.



그들은 건축물을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생각함이 분명하다.


안토니오 가우디의 작품


엔틱 한 고딕 양식부터, 화려한 바로크 양식까지 눈을 돌리는 곳마다 영화처럼 멋진 장소들이 펼쳐졌고, 각 나라마다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냈고, 그 분위기의 중심에는 언제나 '건축'이라는 단어가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건축물을 예술작품으로 생각하기보단, "상행위가 일어나는 장소" 또는 "잠자리를 청하는 곳" 정도로 치부한다고 생각했고, 우리나라의 건축문화가 전근대적이라고 느껴졌다.


대학 4년을 마칠 무렵 12개 국가를 여행했고, 그와 동시에 군대에 가야 한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꽃피는 봄이 오는 3월, 공군 장교 후보생으로 군입대를 하게 되었고, 3년 3개월이라는 길면 길고 짧다면 짧다는 기간 동안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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