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상상력이 많은 아이 중에 한 명이었다. 참으로 멍 때리는 것을 좋아했다. 멍 때리는 시간 속에서는 나는 날아다니기도 했고, 사업을 하기도 했고, 돈도 많이 벌고, 책받침에서나 볼 수 있는 멋진 여자 연예인과 썸을 타는 남자이기도 했으니까.
내가 국민학교 3학년 때 일이다. 상상이 현실로 되게 하는 비디오의 세상이 열렸다. 영화를 보려면 무조건 영화관을 가거나, 주말에 TV에서 해주는 주말의 명화외에는 영화를 보기 힘들었던 세상에 단비가 내린 것이다. 세상은 결혼하는 남녀에게 혼수용품으로 비디오와 TV 또는 비디오 기능이 달려있는 TV가 기본이 되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리고 비디오가 집집마다 보급이 되면서 비디오테이프 공급이 수요에 비해 부족해진 세상이 열린 것이다.
내가 살던 동네, 내가 놀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당시 부동산 할아버지보다 더 동네에 대해 자세히 알던 그때의 나, 대형 아파트 단지 건너편에 조그마한 4평 남짓한 1층에 점포가 비어 있었고, 비어있는 점포를 보면서 비디오 대여점을 1년만 해도 대박이겠다는 생각을 국민학교 3학년이었던 내 머리의 상상에서 번쩍 스쳐 지나갔다. 머릿속에 스친 상상 속의 그림이 지워지기 전에 집에 달려가 1년 365일 집에서 항상 누워 있던 40대의 큰삼촌에게 말을 했다.
나 : 삼촌, 저기에 있는 아파트 건너편에 상가가 하나 있는데 비디오 대여점을 하면 돈을 많이 벌 것 같은데
큰삼촌 : 비디오가 뭔데, 저리 가 귀찮으니까.
나 : 삼촌 요즘 비디오의 세상이 되고 있어. 지금 시작하면 괜찮아. 동네 어디에도 비디오 대여점이 없으니까
큰삼촌 : 시끌 어, 누가 집에서 비디오를 보냐, 저리 가
큰삼촌은 내게 무능의 상징이고, 게으름의 상징이기도 했다. 평생 돈을 벌어보기보다는 할아버지가 직장 생활해서 번 돈으로 사는 기생충이기도 했던 사람. 세상의 변화에 민감하지 못했던 사람, 마치 고장 난 기차가 더 이상 달리지 않고, 어느 작은 간이역에 장기 정차를 하고 있는 그런 사람...
내가 삼촌에게 비디오 대여점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던 그 점포에는, 몇 달 후에 정말 비디오 대여점이 들어왔다. 그리고 마침내 작은 삼촌도 결혼을 했는데 작은 외숙모가 비디오와 TV가 한 몸으로 붙어 있는 멋진 TV를 사 오신 것이다. 그래서 외숙모의 허락을 받고, 나도 새로 생긴 비디오 대여점의 단골이 되었다. 그 비디오 대여점 주인아저씨는 정말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1년 만에 건너편 아파트 한 채를 현금으로 살 정도로 돈을 많이 버셨단다.
어린 나에게 비디오 대여점을 추천받았으나 받아먹지 못한 큰삼촌은, 연탄보일러의 시대가 온수 보일러 시대로 바뀌어 가는 시대의 흐름을 알지 못하고, 나름 돈을 버신다면서 동네 연탄가게를 인수를 하셨다. 그때 큰삼촌과 큰 외숙모의 모습은 항상 검은색이었다. 연탄 한 장의 무게가 3kg이 넘는데, 등에 20-30장을 싣고 배달을 하셨다. 그리고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보이는 큰삼촌의 모습, 배달하다 지쳐서 사람이 걸어 다니는 인도에 큰 대짜로 누우서 쉬는 모습. 크게 돈도 되지 않고 고생만 많이 했던 큰삼촌과, 남자 잘 못 만나서 신세 한탄만 했던 큰 외숙모. 지금은 80이 넘은 큰삼촌과 큰 외숙모는 연탄 배달일로 운동이 되신 건지 건강하시다.
어린 나이에 보았던 영화 중에, 톰 크루즈가 주연으로 나온 칵테일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바다가 있는 아름다운 섬 가운데에 있던 칵테일바에서 톰 크루즈는 바텐더로 일을 하며 지내는 로맨스 영화.
영화를 보면서 나도 저런 아름다운 섬에 가서 바텐더를 하던 어떤 일을 하던 멋지게 살아보고 싶다. 왠지 영화 속에 톰 크루즈는 경쟁이나 목표를 위해 치열하게 사는 그런 사람이 아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낭만적인 그런 사람. 그래서 부러웠던 것 같다.
이번 추석 때 갑자기 나의 상상 속 도라에몽 배주머니에서 하나의 사업 아이템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리고 메모를 해보았다. 타깃층은 어떤 세대를 대상으로 하고, 파는 것은 어떤 것으로 한다. 지금 한국에는 희귀 아이템이나 몇 년 후면 지역별로 생겨나기 시작할 것이고, 10여 년을 지속할 수 있는 사업, 그리고 프랜차이즈가 가능한 사업.
국민학교 3학년 때 나는 너무 어렸고, 돈도 없었다. 지금은 나는 50이 넘은 남자이다. 물론 돈이 그렇게 많지는 않으나 도전을 해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나 : 내가 이런 사업을 생각해봤는데, 타겟층은 이쪽이고 판매하는 것은 이것들이야, 어떠냐
20살 아들 : 괜찮네, 지금 그런 곳이 거의 없지, 나도 가보겠는데.
나 : 아빠가 할 수는 없고, 투자를 해야 할 것 같아. 그 사람이 곧 군대를 가니까, 군대를 제대하면 그 사람한테 투자를 해볼까 하는데, 그 사람이 좋아하기도 했던 거니까
20살 아들 : 지금 나를 두고 하는 소리야
나 : 하하하, 역시 경찰 아빠를 둔 아들이라 눈치가 빠르네... 하하하
20살 아들 : 나는 못할 것 같은데, 사업 머리도 없는데
나 : 사람은 해보면 다 할 수 있고, 지금은 그래도, 군대를 다녀오면 세상 보는 눈이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
20살 아들이 내 이야기를 듣고 미래에 대한 상상을 해보길 바라는 마음이다. 20살 아들도 내가 아니고, 내가 20살 아들이 아니기에 같은 생각으로 미래를 위한 상상을 하며 꿈을 꾸고 공부를 했으면 하는데, 내가 아니니 그냥 기다릴 뿐이다.
무한도전 초창기에 달리는 기차와 달리기로 경쟁하는 예능인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웃었다. 무모하다는 것을 알고 결과도 이미 알고 있지만 달리는 기차와 사람이 함께 달려서 누가 이기나를 보는 많은 시청자들, 그리고 이미 알고 있는 결과가 나왔지만, 죽을 듯이 달렸던 예능인이 지쳐 쓰러져 헥헥 거리는 모습 또한 아름답게 보였던 그때, 바로 상상 속에 있던 그것을 현실로 끌어와 적용했고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게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가 아닐까.
어제의 상상은 미래의 나를 위한 발판이 된다. 힘들었던 어제의 도전의 발자국은 오늘을 살아가는 내게 희망의 민들레 씨가 되는 게 아닐까. 바로 바람에 몸을 맞긴 채로 날아가는 인생여행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