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F층 첫째 계단 - 수평선 위로 뜨는 노을이 되길

#광주광역시 #화순 #심근경색 #엔진 #조직 #칼잽이

by 별하
햇살이 눈부셔 눈을 감고 말았죠
흐르던 눈물이 멈추질 않네요
가까스로 일어나도 다시 휘청거려요
이제는 정말 끝인가요
보란 듯이 살 거야 나약해지면 안 돼
그 사람보다 더 행복해져야 돼
절대 뒤돌아보지 마
이런 못난 가슴아 왜 혼자서 난 멈출 줄 모르니

(노래 : 헤어지는 중입니다. 가수 : 이은미)




2019년 8월 어느 날, 회사에 연가를 내고 무작정 떠났다. 준비물 없이 그냥 몸이 가는 데로 떠나려고 했다. 그렇지만 내 인생 마지막 여행이기에 날 기억하는 몇 명은 있을터, 그래서 그 몇 명의 얼굴만이라도 내 눈에 담고 싶었다. 언뜻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들을 만나려고 무작정 연락 없이 내 인생 마지막 여정은 시작되었다.

하루 (광주에서)


내 고향인 광주.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나온 고향, 누구는 고향 하면 따뜻함과 포근함을 느낀다고 하지만, 내게는 그냥 치열한 눈치보기 추억과 어린 나이부터 겪어야 했던 근로의 고통을, 그리 따뜻하지도 않은 나에게는 그저 그런 고향이다.


고등학교 토목과를 함께 다녔던 친구, 서로 자취 생활하면서 각자 직장 생활했던 고등학교 동창 E. 지금은 어엿한 사장님이 되셨다. 고등학교 생활을 위해 주경야독하며 일했던 그때, 나는 대학교 학생과에서 사환으로 일했고, E 사장은 토목과인데도 불구하고 자동차 1급 정비소를 무작정 찾아가서 일가르 쳐 달라고 떼를 써서 고1 때부터 지금까지 엔진 분야로 한길만 걸어서 성공한 친구다.

내 연락받고 나온 친구와 근사한 회 정식집에서 만났다. 건 20년 만에 만났다, 얼굴은 고등학교 때와 같다, 다만 얼굴에 늙음이 묻어 있다는 것뿐.

“오늘 거래 업체하고 약속 있었는데 취소했븟따. 너 온다고 해서”

“나 때문에야, 사업 지장 있는 거 아녀”

“야. 그래도 친구가 오랜만에 왔는디, 친구를 만나야제, 나이 먹으면 친구밖에 없어야, 거래처는 내가 또 전화하면 만나, 비지니쓰께”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 학교에 매일같이 지각하면서도 결석은 안 한 친구였다. 짝꿍일 때도 있었고 앞뒤로 앉을 때도 있었다. 항상 친구의 몸에서는 기름 냄새가 났다. 기름 묻은 정비공장 유니폼을 그대로 입고 손에는 닦이지 않은 기름으로 번들번들했던 추억이 생각난다. 옛날이야기하면서 오븟한 시간을 보냈다.

“야 너 생각나냐, 그 새끼 말여, 학교 다닐 때 주먹 좀 쓴다고 어깨에 허세를 잔뜩 달고 꼭 양아치같이 무게 잡고 다녔잖아”

“알지, 꼭 지금으로 보면 일진 같은 새끼였잖아”

“긍게 겁도 더럽게 많으면서, 졸업할 때 충장로에 있는 조직에 가입한다 어쩐다 지랄하면서 칼잽이 한다고 뻐기고 다녔잖어”

“지금 어떻게 산데”

“칼잽이 하고 있어. 사람 말고, 광어나 우럭한테, 손 씻고 횟집 개업한다고 해서야 우리가 가서 엄청 팔아줬어야”

“잘됐네”

“늦게 결혼해서, 지금 아들이 초등학생일걸, 아무튼 살라고 열심히 하더라, 세월이 흐르니까야 다들 늦었어도 빙빙 돌아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더라”

“그러게, 잘됐네, 칼잽이여도 사람에게 안 쓰고, 횟감에 쓰면서 열심히 살면 좋제”

“아. 그리고, 너 오래간만에 왔으니까. 화순 K 만나고 가라, 죽다 살아서 아마 엄청 반가워할 거다”


어두운 뒷골목에서 나와 양지바른 곳에서 열심히 산다는 친구의 소식, 다들 시간이 흐르면서 자기의 자리에 하나씩 하나씩 돌아와서 살아가는 것을 본다. 그런데 나의 고정된 자리는 이미 부서져 버림에 마음이 기댈 곳이 없다는 생각이 나를 무겁게 짓누른다. 다들 돌아갈 때가 있는데, 지금 나에게는 돌아갈 곳이 보이지 않는다.

이틀 (화순에서)


K. 고등학교 동창이다, 짝꿍이기도 했으면서 참으로 친했던 친구다. 어느 날 고등학교 1학년 담임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K에게 물어봤다.


“너 꿈이 뭐냐”

“화물차 타고 전국을 여행하면서 사는 게 꿈이어라”

지금은 자신의 꿈을 이룬 K, 덤프트럭으로 전라도 일대 및 전국 건설현장을 한때 누비면서 돈을 벌었다. 마치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요트로 전 세계를 여행하듯이, 덤프트럭을 가지고 전국 건설현장을 누비면서 꿈을 이룬 친구, 그리고 지금은 화순에서 당당히 덤프트럭 10여 대를 보유한 건설장비 업체의 엄연한 사장님이 되어 있다.


“캬. 너 몇 년 만이냐, 이리 내려와 경기도에 있지 말고야”

“내려올까, 화순으로”

“야 그래야 내가 뭐 경찰한테 문제생기믄 친구 도움 좀 받을 거 아녀, 나이 들면야, 친구들끼리 가까운 데에서 살아야 해야"

”긍게, 뭉쳐서 살아야 하는데, 쉽지가 않네 “

”그리고야 나 저번에 죽다 살아브렀다”

“왜, E 한테 죽다 살았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뭔 일 있었냐”

“너도 알다시피야, 내가 나름 건강 엄청 챙기잖야, 조금만 아파도 병원 가고, 긍데야, 일 끝나고 집에 가서 샤워하는데야 내 손에서 비누가 톡 하고 떨어져블고 몸에서 갑자기 열이 나는 거야, 그래서 야 뭔가 큰일 났구나라고 생각했지”


삼겹살집에서 술잔을 주고받으며 죽다 산 이야기를 K가 모험담 이야기하듯이 재미나게 한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

“119 부르려다가 오는데 시간 걸릴 것 같아서 택시 불렀지. 그 찰나의 순간에 뭘 부를까를 생각했다는 게 대단하지 않냐, 그래갔고야 택시를 타갔구야 전대병원 요라고 말한 것은 기억나는데 그다음부터 기억이 안나야”

“왜 갑자기”

“몰라, 아마 택시기사도 놀랬을 것이다, 뒷좌석에 탄 손님이 전대병원이요하고 쓰러졌으니, 엄청 놀랬을 거다. 그런데야 택시기사가 날 버리지 않고 병원까지 데리고 간 거야, 다행으로야 그리고 그때 병원 당직의사가 심근경색 전문이었어. 그래서 내가 이렇게 살았다, 살 놈은 어떻게라도 사는가 봐”

“그럼 스텐트 박은 거야, 그런데 술 마셔도 돼”

“술. 이제는 조금만 마셔야, 옛날에는 허벌랐는데, 나이 먹은 게, 이제는 얼쩔수가 없다야, 글고야 그때 그 택시기사를 찾아야 하는데, 생명의 은인인디, 그리고 택시비도 못줬는데”

고등학교 친구 중에 몇 명은 안타깝게도 20대 때 기차에 치어 죽은 친구도 있긴 했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심근경색으로 죽을뻔했다가 살았다는 친구. 죽다 산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말해주던 친구. 지금 내가 찾아온 이유는 마지막 인생 여행에서 보고 싶은 사람들을 눈에 담고 싶어서 온 것인데, 그래도 친구가 건강을 찾아서 너무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화순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마침, 그렇게 친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친했던 고등학교 동창이 광주에서 편의점 오픈한다는 소식에 K랑 함께 갔다. 여러 동창들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고, 서로 근황을 물으면서 웃고 떠드는 시간이 있었다. 다들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여행시간의 의미가 쑥스러워진다. 부끄럽기도 하고, 나만 이런가, 나는 왜 이렇게 사는가, 나는 왜 나를.

사흘 (다시 광주에서)


전라도 여러 지역에서 여러 사람들이 광주로 왔다. 내가 왔다고, 바로 호남 고시학원에서부터 알았고 첫 경찰생활을 부천 중부경찰서 (현 부천 원미경찰서)에서 하게 했던 137기를 포함한 악마 경찰관들이. 나만 경기도권에 두고 자기들은 이미 전라도권으로 내려가서 나름 자리 잡고 살고 있는 경찰관들, 그리고 부천에서는 자신의 짝을 만나지 못한 채로 서럽게 전라도로 내려갔던, 그리고 발령받은 여수에서 아름다운 그녀를 만나 청실홍실의 인연을 맺고 아들 낳고 잘 살아가는 경찰관, 다들 너무 반갑다.

“형, 내려와 이제, 여기서 우리 재미있게 지내자, 자주 얼굴 보고”

“막내가 경감이 제일 빨리됐네”

“나는 항상 형들보다 빨랐거든”

“염병, 좋겄다”

오래간만에 얼굴 보고 술을 한잔씩 돌아가며 보니, 나름 얼굴에 행복이 많이 묻어있다. 그리고 내가 내려온다고 하니 갑자기 벙개팅으로 자리를 잡고 찾아와 준 경찰 지인들, 멋지다. 총각 때 만났는데, 세월이 흘러 지금은 한 가정의 가장이고 아들딸을 자식으로 둔 아버지가 되어 멋지게 살아가는 모습이 참으로 보기 흐뭇하다.

“이곳은 일이 별로 없어, 그리고 부천에서 그렇게 죽을 둥 살 둥 일을 했으면 이제는 조금 쉬어야지 않겠어, 나이도 있는데”

“긍게, 이제 쉬고 싶다야, 나이 먹으니까 힘들다 예전 같지도 않고”

“요즘야 테니스를 너무 많이 쳐갔구야, 어깨에 엘보가 왔어야, 적당히 해야 하는디, 테니스채만 잡으면 나도 어떻게 주체를 못 하겠어”

“나도 테니스도 배워야 하는데, 골프는 해봤는데 재미가 없더라고”

“너는 헬스장에서 산다며, 일만 끝나면 헬스장에 있다고 하던데, 화순 경찰서 대표 몸짱 하려는 거야”

“넌 경정 시험 안보냐”

“우리가 왜 경기도로 갔냐, 이곳에서 우리가 취업할 곳이 없어서 갔잖아, 지금도 자식들 취업문제도 그렇고, 그래서 지금까지 수도권에 있제”

“여기 광주나 전라도도 예전 같지 않어, 나름 애들도 먹고살 수 있어 괜찮어, 공공기관도 여러 개 내려오고 해서”

각자의 소식들을 들어보니, 각자 취미생활이 열심히다. 나이 먹은 자들은 진급은 포기하고 열심히 각자의 행복을 위해 산다. 그리고 행복해한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운 곳에, 그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음이 바로 행복이라는 것을, 마치 행복하기 위한 훈련을 하는 것처럼 열심히들 행복 코인을 채굴하고 있다.


전승환의 <행복해지는 연습을 해요>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버려야 할 것들이 있어요
마음의 짐
너무 열심히 살아가려는 마음
뭐든 내가 다 해결하려는 마음
너무 오랜 시간 많은 짐을 지고 있었어요
이제는 덜어내도 괜찮아요
당신을 짓누르는 것들 당신을 옭아매는 것들
모두 다 버리세요’

그래 각자가 모두 추구하는 삶답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는 모든 걸 스스로 해결하려고 너무 얘 쓰면서 살았다. 형제 없는 세상에 유일하게 혼자인 내가 뭐든지 혼자 해결하면서 살았던 게 습관이 되었다. 그리고 도와줄 사람도 없었으니까. 나답게 살기보다는, 그냥 하루를 살기 위해서, 그냥 오늘 하루를 치열하게 그래야 내일을 보장받는 것처럼, 그래야 가족들과 행복해질 것 같아서, 어디에도 비빌 언덕 없이 살아야 하는 나는, 항상 내 선택은 오늘을 죽을 듯이 살아야.......... 이제 나를 누르는 나만의 짐을 내려놓고 싶다. 간절히. 그래야 행복해지려나,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지금 이루고자 하는 것, 나중으로 미루고, 그냥 오늘 하루만을 위해 살았다, 그래야 된다고 믿었다. 모든 게 틀린 건가. 그러지 않아도 잘 살아가는 모습들이 이렇게 보이는데, 내 욕심 때문에 내 스스로 나의 영혼을 좀먹고 있었던가. 내 마음의 짐을 벗어버리고 싶은데, 벗어야 한다는 것을 아는데도, 잘 벗겨지지 않는다.





*사진은 인터넷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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