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이유가 없다면 그것도 이유일 것이다. 죽어야 하는데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이유가 없다면 그것도 이유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매일 자살이라는 최후의 선택을 한다. 물론 경찰도 사람이니 최후의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아마 공무원 중에 자살률이 가장 높을 것이다. 아름답지 못한 사람의 모습, 보고 싶지 않은 잔인함. 어떻게 해도 살릴 수 없는 죽음, 잘해도 욕을 먹고 못해도 욕을 먹는 참담한 현실, 참으로 억울한 감정 노동자 중에 하나다. 다만 공권력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는 감정 노동자일 뿐이다. 그리고 나름 최후의 선택을 하는데 이유를 들어보자면 계급이 깡패인 세상에서의 저항할 수 없는 찬란한 갑질의 고통, 가정에서의 불행, 동료들의 시기와 거짓 소문, 외로움, 우울증, 돈 등 다양한 이유로 최후를 선택하는 동료들이 있다.
의사 집안에서 유일하게 경찰이 된 똘아이 S 경장, 모든 가족은 미국으로 이민 갔고, 한국에서 혼자 생활하는 남자. 화끈한 사나이 성격에 멋진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할 줄 아는 그런 남자. 단점이라고는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못 하는 남자. 좋아한다는 말 대신에 여자가 먹고 싶은 것은 다 사주는 그런 남자. 그리고 그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가면, 결혼 축하해라는 말만 할 줄 아는 멋진 남자.
”휴직한다며 “
”미국에 갔다 오려고, 거기서 조금 놀다가 올라고 “
”얼마나 휴직하는데 “
”일단은 1년, 그리고 봐서 안 올 수도 있고 “
1년의 기간을 두고 미국으로 떠난 S, 사람의 뜻은 항상 뜻대로 가는 것은 아닌 게 인생인데.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항상 뜻대로 가는 것 같지만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이 세상이다. 아마 한국으로 오지 않고 가족들과 함께 있기 위해 나름 사업도 하면서 잘 적응은 하였으나, 모든 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리고 1년이란 세월은 어느새 바삐 흘러 복직했다.
복직 후에 똑같은 경찰생활의 연속. 아는 얼굴들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조금은 다행일 줄 모른다. 그러나 가족들과 지낸 1년이란 세월은 너무 달콤했고, 지금 혼자 남아 있는 자신의 삶은 너무 쓰디쓴 독초를 씹는 맛일 것이다. 그리고 넓은 집에 혼자 있는 외로움은 무서움으로 다가온다. 사랑도, 미움도, 기쁨도, 슬픔도, 즐거움도, 무서움도, 행복도 어느 무엇하나 함께할 이가 없다.
“S 출근했냐, 시간이 이렇게 되었는데”
“S형에게 전화해봤는데 안 받아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요즘 이상한 것 같던데 말도 없고, S 지금도 혼자 살지”
“네 혼자 사는데요”
“너, S집 알지”
“네 제가 알아요”
“그럼 빨리 순찰차로 집에 가봐”
벨을 눌러도, 휴대폰에 전화를 해도 전혀 응답 없는 S, 외롭게 사는 S, 그래서 마음이 너무 불안하다. 방금 도착한 119 소방의 지원으로 아파트 현관문 잠금장치가 뜯겨 나갔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간 우리, 집안에서 S를 불러도 대답이 없다. 거실, 안방, 작은방, 주방, 화장실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다용도실 안에서 우린 서로 마주쳤다.
다용도실 천정 부위에 있는 가스배관에 연결된 등산 밧줄, 혼자 떡 하고 서 있는 채로 우리를 맞아준다. 그러나 눈동자는 보이지 않고 목은 비틀어져 있고 발은 공중에 떠있는 채로 몸에 온기는 다 식어버렸다. 외로움은 죽음보다 더 무섭다고 했던가, 죽음보다 더 무서운 외로움의 괴물은 참으로 멋진 남자를 잡아먹어버렸다.
정말 외로움은 죽음보다 참기 힘들다. 외로움을 느끼는 당사자를 제외하고는 다른 사람들은 모르니까. 외로움은 당사자의 마음속에서 존재하고 있으니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마치 신경치료를 받아야 하는 치아처럼 그냥 봐서는 티가 나지 않으니 말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치아가 시린지 어떤지 알 수가 없다. 이게 외로움이다. 그냥 입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뻘겋게 타들어가며 살갗을 태우는 번개탄의 고통을,
어느 때부터인가 퇴근 후 집에서 들리는 소리는, 거실 TV에서 흘려 나오는 드라마 소리가 전부다. 그것도 내가 리모컨으로 작동했기 때문에 들을 수 있는 사람의 말소리다. 방안에는 아무도 없다. 학원에서 늦게 오는 아이들의 얼굴 보기가 힘들고, 가끔 봐도 자기 방 안에서 음악만 이어폰으로 듣는다. 그냥 나는 이 집에서 투명인간이다.
소주 한잔을 거실에서 마시면서 ‘나는 뭘까’라는 생각과 11층 베란다 너머 텅 빈 풍경을 멍하니 바라볼 때가 많아졌다. 11층에서 뛰어 날아오르면 리차드 바크가 쓴「갈매기의 꿈」에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라는 글귀처럼, 내 인생의 먼 앞날도 보이지 않을까. 내 인생의 먼 앞날도, 지금과 같은지, 행복한 삶인지, 죽지 못해서 살아가는 삶인지, 아니면 이 세상에 없는 존재가 되어 있는지를,
삶의 자유를 생각하며 베란다 너머 풍경을 안주 삼아 소주잔을 꺾는다. 그리고 한 사람이 생각난다. 참으로 착하고 내성적인 성격에 말수가 적고 누구와도 갈등을 만들지 않았던 J 경장, 타인에게 말을 전혀 하지 못하고 사교성이 그리 많지 않았으며 특히 알건 모르건 상관없이 여자와는 말을 잘 섞지 못해 항상 모태 솔로를 주장하던 J.
타인을 대상으로 교통 단속을 해야 하고 조사를 해야 하는 교통경찰 근무와는 그리 맞지 않는 J였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생활했던 친구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결혼했다. 그리고 보통 때처럼 일상적인 근무를 하던 J, 원래 말수가 적었던 친구긴 하지만 결혼기간이 하루하루 늘어날수록 말수가 줄어들었다.
「화성인 남자와 금성인 여자」를 저술한 존 그레이 박사는 ‘본디 남자는 화성인이고 여자는 금성인이기 때문에 둘 사이의 언어와 사고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살다 보면, 화성과 금성이 아니라 수성인 남자와 해왕성 여자가 만나면 더 맞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처음에는 아무리 뜨겁고 열정적인 사랑을 하는 부부라고 해도 갈등은 생기기 마련이고 그리고 서로 말다툼도 하게 된다. 그게 부부니까. 전생에 원수가 현생에 부부로 만난다는 말도 잊지 않는가.
술 한잔 마시고 11층 베란다의 바깥 풍경을 보면서 생각한다.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자유를 찾아간 J경장을, 뛰어내리니까 지금은 편하냐라고 묻고 싶다, 지금까지 해왔던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세상으로 간 J, 지금은 사교성 있게 하늘에서 잘살고 있나 궁금하기도 하고, 나도 날아오르면 만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얼핏,
2019년 2월, 내게 너무 힘든 삶의 시작이었고 모든 게 한순간 무너진 한 해였다. 삶의 이유, 모르겠다. 지키려고 노력했던 모든 게 물거품이 되었던 순간이었다. 내 꿈은 그저 가족과 잘 사는 것이었다. 그냥 잘 사는 것, 엄청난 재력가나 엄청 부자가 아닌, 평범한 소시민으로서 먹고 싶은 것 먹고, 가고 싶은 곳 갈 수 있는 그 정도. 그리고 내 새끼들이 하고 싶거나 갖고 싶은 게 있다면 섭섭치 않을 정도 만큼 해줄 수 있는 그 정도 능력 있는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난 그런 아버지가 없었으니까. 내 아이들에게만큼은 그런 아버지가 되어 주고 싶었다.
지금 나는 살아야 할 이유보다는, 인생의 마감시간을 당기고 싶은 이유를 찾아보고 싶었다. 모든 게 내 탓이고,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을 쳐도 안 되는 사람은 안되나 보다는 그냥 그렇고 그런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만 바라볼 뿐이다.
그래서 내 인생의 마지막 여행을 준비해본다. 내 인생의 마지막 여행을, 그리고 출발지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회사에 연가 결제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