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어느 누구보다 앞선 인생으로 살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과 다르게 인생의 뒤편에서 살았다. 평생을. 그리고 외롭게 눈을 감는다. 이게 인생일까. 내 인생은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내 인생은 내 인생일 뿐인데, 인생의 물구나무를 선 나는 나의 세상 속에서 '갑'으로 살았으면 그것으로 됐다.
대한민국은 많은 역경 속에서 단단해진 차돌과 같이 뭉치고 또 뭉쳐 단단해졌다. 많은 인생 선배들이 물러 터진 나라를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결과가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그리고 나라를 위한 더 나은 역군이 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했고, 부모는 허리가 굽어지더라도 자식을 교육시키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결과가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것이다.
각자마다 현재의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한 역할은 과연 어떤 의미로 남아 있을까.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데 정책 결정하고 실행을 지시하는 역할자인지, 실행 지시를 받고 현장에서 지시 감독을 하는 역할자인지, 현장 기술자로서 손에 기름을 묻히는 역할자인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나, 나름대로 더 좋은 역할자가 되기 위해 다들 열심히 공부하면서 경쟁했다.
부모는 자기 자리의 포지션을 알기에 자기 자식만큼은 더 높은 자리에서 일을 하기 바랬고 최선을 다해서 뒷바라지를 했다. 차별 없는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자리에 따른 차별은 정말 없는 것인가라고 반문을 하고 싶다. 아버지가 누구냐에 따라 6년 근무해도 퇴직금이 50억 원을 받는 그런 나라라면, 정말 차별이 없는 나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전쟁의 황폐화 속에서 60-70년대 SKY대학교를 다녔다면 가정형편이 좋은 사람이거나, 허리가 서서히 굽어지는 부모의 피와 땀을 거름 삼아 공부를 한 사람일 것이다. 마치 영화「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아버지가 아들 조수아에게 해주었던 말 처럼.
“아버지가 평생 해줄 사랑을 단 한 푼도 아끼지 않고 살아있는 짧은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너에게 모든 걸 퍼주었으니 그것은 앞으로 조수아 너의 삶에서 엄청난 원동력이 되고 삶에 있어 큰 뿌리로 작용될 거야”
모든 부모의 마음이지 않을까. 없는 재산이지만 앞으로의 삶에서 자식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주려는 마음이 부모의 마음이다. 마치 믹서기에 영혼이 갈아지는 고통이 있어도 자식을 위해서라면 참을 수 있는 마음. 이렇게 모든 것을 바쳐서 공부를 시킨 자식. 그런 자식이 폐인이 되었다면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정말 겪어보고 느껴보지 못했다면 어느 누구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영혼의 고통을. 그리고 자신 때문에 부모의 영혼이 무너져 버리는 것을 보았다면, 부모를 잃어버린 자식은 어떤 고통도 비교하지 못한 고통을 느낄 것이다. 우리가 알 수 없는 그런 고통을.
70대로 보이는 아저씨가 있다. 술을 마신 날이면 항상 찾아오는 욕쟁이 아저씨. 그리고 우리는 욕쟁이 아저씨의 유일한 욕받이다.
“야 이 씨발놈들아, 내가 술 먹었다고 무시하냐 이 씨발놈들아”
“어디서 또 이렇게 술을 드셨데, 얼릉 집에 들어가요, 그만 좀 욕하고”
“씨발, 안 들어가, 여기 있는 커피 마시고 들어갈 거야”
“아 진짜, 커피나 얼릉 마시고 가요”
오후 6시가 넘으면 항상 술에 취한 채로 매일 우리 지구대로 방문해서 욕해주는 욕쟁이 아저씨. 그런데 아는 욕은 몇 가지 없어 돌려막기 식으로 욕을 돌린다. 씨발놈, 개새끼, 싸기지 없는 놈, 이것 외에는 다른 욕은 하지 않는다. 꼭 욕에 대해 그리 공부를 못한 사람처럼.
“와 저 영감탱이, 매일같이 술을 먹는데도 죽지도 않냐 정말 대단해”
“뭐 20분 정도 저러다가 집에 가니까요, 제가 커피 한잔 주고 달래서 보낼게요”
“오늘도 바쁘겄다. 사건 많겄다.”
참새가 방앗간 그냥 못 지나가는 것처럼 찾아와 주는 단골손님이라 욕쟁이 아저씨를 지구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 건설회사에서 일용직으로 일을 하는 것 같은데, 일한 날은 저녁에 술을 마시고 오고, 일 없는 날은 오지 않는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은 오지 않는다. 아마 건설현장에 일이 없어서 일당을 받질 못해서일까.
“어디서 노가다 일하는거야”
“그래 노가다 뛴다, 어쩔래”
“노가다 뭐하는데, 기술은 있어”
“내가 기술있음 이렇게 산데, 기술 없으니까 철근 쪼가리 줍고, 화장실 청소하고 그러지 어쩔래, 무시할라고”
“무시는 무슨 무시, 그럼 현장 잡부네, 그래도 돈은 매일 나오나 봐 일하면”
“그럼, 그러니까 이렇게 술 먹지”
건설현장에서 잡일을 담당하는 욕쟁이 아저씨. 술에 취하지 않은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아마도 현장에서 일할 때에도 혈중 알코올 농도는 조금 남아 있지 않을까, 매일 술을 마시는 욕쟁이 아저씨인데.
“좋은 아침입니다”
지구대의 아침 출근은 많은 직원들이 좋은 아침이라는 말을 한다. 마치 좋은 하루, 신고 없는 하루, 범죄 없는 하루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왔냐, 새벽에 그 영감 죽었단다. 야간 근무조가 변사처리 했더라”
“뭐 사고 난 건가요”
“아니, 그냥 고독사, 안됐지 뭐”
“그럼 가족은 있으려나”
“큰 형이라는 사람이 연락받고 왔는데, 죽은 영감 참 안되었더라, 그 나이에 대학도 정말 좋은 곳 나왔는데. 어느 순간 저렇게 되고, 가족은 풍비박산 났다는데”
대한민국의 최고 일류 대학 SKY. SKY 대학 중에 한 곳을 나온 욕쟁이 아저씨.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그 시대에 명문 대학을 다녔던 사람. 그리고 나름 대한민국 경제 발전을 위한 역군이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하필이면 철학과를 다녔던 욕쟁이 아저씨. 60-70년대의 부패한 정치인들의 행태, 정경유착, 부정부패, 대학생들의 집회 시위, 국가보안법을 빌미로 수많은 고문과 죽음 등 철학을 공부했던 욕쟁이 아저씨에게는 많은 생각의 고통을 느끼게 하는 똥 덩어리 같은 시대였을 것이다.
한때 대기업에 취직해서 일을 하던 욕쟁이 아저씨는, 뇌물과 썩어 문 들어진 ‘갑’들의 행태를 보면서 서서히 썩은 물에 희석되어가는 자신을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왔다. 썩은 물이 아닌 그냥 흙탕물 세상이라도 자유인으로 살아가길 원하면서. 그리고 그냥 떠돌고, 하루 일해서 하루 살고. 세상이 자기를 찾지 못하도록 꼭꼭 숨어 살길 바라면서.
각자의 포지션에서 ‘갑’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사람 중에 유일하게 ‘을’이 되어 살길 바랬고, 그래서 길거리로 나왔다. 그리고 한해 한해 지나 나이가 먹어갔다.
욕쟁이 아저씨 부모는 방황하는 아들을 찾아 길거리를 헤매었다. 아마도 한순간에 무너진 아들을 찾아 헤매는 부모의 심정은 아마도 숯땡이가 되도록 타들어갔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찾은 아들은, 이미 길거리 노숙자로 전락했고. 알코올 중독자에 나라를 향해 똑바로 하라고 욕을 입에 담고 사는 사람이 되어 있다.
SKY 대학을 다녔던 아들, 집안의 자랑이었고, 기둥이었고, 희망이었던, 부모의 희생의 대가는 비싸게 치렀지만 그래도 가정의 희망이 된 아들. 그런 아들이 어둠 속으로 녹아내린 상태를 본 부모, 엄청난 충격에 욕쟁이 아저씨 부모님은 몇 달 사이에 모두 돌아가셨다.
자기 때문에 부모님들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욕쟁이 아저씨는 더욱더 자신을 미워했고, 미워했다. 그래서 가족과의 모든 연락을 끊고, 고향이 아닌 타지의 길거리를 누볐다. 그리고 유일한 친구는 바로 지구대 경찰관이었다. 우리는 어느새 친구가 된 것이다. ‘을’끼리,
항상 술을 한잔하고 질퍽한 욕을 우리에게 선사했던 욕쟁이 아저씨. 사람들마다 사연 없는 사람 없지만, 욕쟁이 아저씨의 사연은 참으로 놀라운 반전의 인생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갑’의 포지션에서 살기 위해 경쟁하고 희생하고 살고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영원한 ‘을’이 되어 살고자 인생을 선택한 사람도 있다. 각자의 삶의 방식은 다르고 각자의 삶의 가치관이 다르니, 욕망, 야망, 성욕, 식탐, 탐욕 모든 것을 버리고 그냥 흘러가는 데로 사는 인생을 선택한 영원한 ‘을’이 우리의 주변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영원한 ‘을’이 있어 대한민국은 올바르게 흘러갈 수 있는 브레이크 장치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비가 오지 않는 오후 7시. 욕쟁이 아저씨의 얼큰한 욕한 사발을 먹을 시간인데, 오지 않는다. 가끔은 그 얼큰한 욕 한 사발이 가끔 생각날 때가 있다. 아마도 욕쟁이 아저씨는 우리 지구대에서 ‘갑’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생각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