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내가 당신을 존중하고, 따뜻하게 해 줬다면 오늘 저녁 사랑하는 가족을 만날 수 있었을 텐데’
‘그때, 내가 조금만 용기내어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한 번이라도 말을 했다면,
오늘 저녁 따뜻한 내 침대에 누울 수 있었을 텐데’
“야 이 개새끼야, 내가 저렇게 파라고 했어, 너 땅을 몇 년이나 팠어 병신 새끼야”
“죄송합니다”
“씨발새끼, 일도 못하면서 돈은 잘도 쳐 받을 거 아냐, 양심 없는 새끼, 야 너 양심 좀 있으려면 나한테 몇 대 맞고 일당 받아가라, 아니면 받지 말던지”
“..............”
“이 미련한 새끼야, 대가리를 폼으로 달고 다니냐, 이런 콱 밟아 죽여버릴라”
“죄송합니다”
그제, 어제,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모레도 계속 일을 하면서 욕을 먹어왔고 또 욕을 먹을 것이다. 나름 포크레인 기사로 십수 년을 공사현장에서 잔뼈가 굵었던 ‘을’, 새롭게 들어간 공사현장에서 만난 ‘갑’은 매일같이 작업을 잘했네 못했네 하면서 욕을 한다.
요즘 넷플릭스 화재 드라마 ‘D·P’에서 나오는 군대 생활처럼, 철저한 을의 입장인 ‘을’은 ‘갑’에게 욕을 먹고 뺨을 맞아도 대꾸를 하지 못한다. 꼭 정말 자신이 못해서 맞아도 싸다고 스스로 생각이 들어간다.
어느 순간부터 출근하기가 싫고 숨 쉬기가 너무 답답하다. 십수년을 해왔고 앞으로도 해야 하는 포크레인 일이 나에게 맞는지를 스스로 물어본다. 마음 졸이면서, 일할 때 현장에서 마주치게 되는 ‘갑’, 모습만 봐도 심장이 요동친다. 꼭 죽을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른다. 모든 문제는 시간이 약이라고 하지 않던가. 다만 약효가 있으려면, 다시는 힘들었던 상황 속에서 만난 그 사람이나 그 상황이 재현되지 않아야 한다.
시간이 흘러, ‘갑’의 현장에서 해방된 ‘을’, ‘을’은 돈을 벌기 위해 불러주는 다른 공사현장으로 타이어가 달린 코끼리와 함께 출근한다. 어느 날이었다. 아침 출근시간에 자신의 애지중지한 코끼리로 건설현장을 향해 간다. 왠지 출근시간이라 차량은 정체되어 조심히 앞 차량을 따라간다.
빵빵... 빵빵...
“야 이 개새끼야, 오래간만이네, 이 새끼가 인사도 안 하네 싸가지 없는 새끼가”
절대로 만나지 말자 했는데, 어떻게 만나도, 그렇게 만나기 싫은 ‘갑’을 출근하는 도로 위에서 만나게 된 것인가. 아는 척할 수가 없다. 심장이 너무 뛰고 손이 떨린다. 어서 지금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런데 ‘갑’이 정차된 차량에서 내리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다가온다.
“이 씨발놈이, 오래간만에 봤으면 인사해야지, 이런 개새끼, 맞아야 정신 차리지, 너 쌍놈의 새끼 이리 내려와”
서서히 다가오는 모습이 막힌 숨을 더욱더 막히게 한다. 계속 다가온다, 욕하고 주먹을 빙빙 휘두르면서 다가온다, 너무 숨이 막힌다.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은 데 갈 수가 없다.
그런데 이때 오로지 ‘을’의 편이었던 코끼리가 움직였다.
부....... 웅........................ 퍽
밀림에서 사자가 코끼리에게 달려들면, 코끼리는 자신의 코를 휘들러 방어한다. 그런데 지금 등위에 타고 있는 ‘을’은 유일하게 자신이 아플 때 그리고 힘들 때, 먹고살기 위해 험한 공사현장에서 항상 함께 했던 자신의 주인, 보호해줘야 한다. 욕을 하며 ‘을’에게 달려오는 ‘갑’을 코끼리는 자신의 코로 쳐냈다. 5m 이상 ‘갑’이 날아가 바닥에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을’의 심장이 가슴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쓰러진 ‘갑’을 쳐다보면서도 일어나지 않길 기도하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쓰러져있던 ‘갑’이 꿈틀거리며 일어나려고 양손으로 땅을 밀면서 허리가 서서히 올라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라고 계속 머릿속은 맴돌고 심장은 너무 요동친다. 숨이 막힌다.
이번에도 ‘을’을 사랑하는 코끼리가 나섰다.
부....... 웅........................ 푹
뭐라고 소리치면서 일어나려고 움직이는 ‘갑’의 허리를 위에서 아래로 코끼리의 코로 슬며시 눌렀다. ‘갑’이 일어나지 못하게 여러 번 눌렀다. 더 이상 ‘갑’은 움직이지 않는다.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정말 '갑'은 더 이상 움직이지도 욕을 하지도 않는다.
만약에 그때 ‘을’을 존중하고 따뜻하게 말을 해주었더라면, 실수하면 좋게 타일러 주었더라면, 오늘 출근길에 ‘을’을 보고 반갑게 인사를 해주었더라면,
만약에 그때 ‘갑’을 출근길에 만나지 않았더라면, ‘갑’을 어떤 공사현장에서라도 만나지 않았더라면, ‘갑’이 좋은 사람이었더라면, ‘갑’에게 그러지 마세요라고 한 번만이라도 용기 내서 말을 했더라면,
계속된 갑질은 사람의 마음을 서서히 가스 라이팅 한다. 그러나 영원한 갑질은 없다. 계속된 갑질은 목숨 값으로 지불할 수 있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영원한 갑도 영원한 을도 없을 텐데. 다만 사람들의 위치, 있는 장소, 그 상황, 그때그때마다 틀려질 텐데. 그러니까 모두가 평등한 사람일 텐데.
인생살이‘갑’ 일 때에는 더욱더 겸손하게, ‘을’ 일 때에는 조금은 당당하게, 그게 인생사는 법 아닐까. 그리고 건설현장에서 소셜 포지션의 차이로 인한 지속적인 욕설은 산업재해가 아닐까. 누가 소셜 포지션의 차이를 만든 것일까. 모든 사람은 그저 자기가 하는 일이 다를 뿐, 존재의 차이는 없다. 모두가 소중한 존재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