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에서 나보다 사회적으로 출세한 사람 있으면 손들어봐요. 없나요. 그럼 내가 제일 출세한 사람인가”
나는 공무원이다. 그것도 경찰공무원. 법률에 근거하여 법을 집행하는 그런 조직이다. 갑질로 인해 희생당한 을을 위해 수사하고, 갑질을 한 갑을 잡아 죗값을 받게 하는 일도 한다. 그런데 서글프게도 갑과 을은 내가 속한 환경에서도 존재한다.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말하고 있다. 또한 헌법 제11조에서는 평등을 주장하고 있다. 서글프다, 평등을 헌법에서 주장함은, 실질적인 사회에서는 불평등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
헌법 제11조
①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②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③ 훈장 등의 영전은 이를 받은 자에게만 효력이 있고, 어떠한 특권도 이에 따르지 아니한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사회적 지위의 차이, 소유하고 있는 돈의 차이, 타고 다니는 차 등급의 차이 등 무수한 이유로 차이가 만들어지면서 차별이 나타난다.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모두가 평등하고 귀한 존재라면서 서로 존중해야 한다고들 뻔한 말만 입으로 내뱉으면서, 정말일까 평등하다는 게.
남자들끼리는 입은 양복과 손목에 걸려있는 손목시계의 차이부터, 여성은 다른 여성의 명품백과의 차이로, 은근히 개개인들 마다 서로 비교한다. 미세하지만 나름 우위인지 아래인지를 몰래몰래 염탐하며 때로는 마음속으로 위안을, 때로는 질투를 한다. 그게 사람이지 않을까.
경찰 내부의 세상에서는 계급 우월 주위가 무척 심하다. 그렇다면 갑질을 수사하는 우리에게도 갑질이 만연할까?. 경찰서장의 왼팔이다 오른팔이다라고 은연중 따지면서 부서끼리 경쟁한다. 나중에 승진에 확연히 차이가 나는 것은 사실이니까. 은은하게 상관의 관심을 한 번이라도 더 많이 받기 위해 나름 눈치 싸움을 하며 밥 사고 술 사고 치열하다.
내가 경찰 조직이라는 청명하고 거대한 호수에 몸을 담글 때 무궁화 계급장을 양쪽 어깨에 한 개씩 달고 다니는 계급이 경위라고 불린다는 것을, 그리고 엄청 막강한 계급이라는 것을 알았으며 최고의 갑이라는 것을, 당시만 해도 지역 유지에 버금가는 권력을 파출소 소장은 가지고 있었다. 막강한 권력의 소유자, 막 들어온 순경은 감히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파출소에서의 절대 권력자. 그래서 관내 초등학교 운동회 때 학교장의 옆자리에 앉을 정도로 귀빈 대접을 받았던 대단한 권력의 절대반지와도 같은 계급이었다.
한때 경위되면 꼭 이것을 만들어서 다녀야지,라고 맹세한 적이 있다. 당시만 해도 경위급 소장은 38 권총보다 더 무서운 검정색 플러스 팬 하나를 가지고 다녔다. 모든 경찰 업무를 해결할 수 있었던 무적의 무기, 플러스 팬. 그래서 내가 경위되면 황금으로 만든 플러스펜을 가슴에 넣고 다녀야지라고 항상 생각해왔다. 오로지 내 권력의 상징 황금 플러스 팬,
“my precious 콜룸, 콜룸"
마이 프레셔스로 근무일지에 멋진 폼으로 멋지게 휘갈기며 사인하는 미래의 모습을 꿈꿔왔다. 그런데 막상 경위가 된 지금, 마이 프레셔스가 아닌 개뿔이다. 멋지게 파출소에서 황금 플러스 팬으로 폼 잡는 꿈은 개꿈이 돼버렸다. 갑이 한번 돼보려고 했는데, 나만의 상상 속의 갑의 주가는 폭락장이다.
특히나 과거에는 지구대나 파출소 또는 형사계나 강력계에서 근무할 때 사무실에 있는 쓰레기통을 유난히 축구공 차듯 힘차게 차던 팀장이 많았다. 매번 새 쓰레기통 구입할 때 돈 한 푼 내지 않으면서 온갖 욕을 하며 찼던 팀장들. 지금은 아마도 '나는 그런 적이 없다'며 모르쇠로 얼굴 돌리고 있을 것이다. 눈에 선하다. 아마도 갑질 행위로 걸릴까 무서워서. 아님 개과천선해서. 그래도 이제는 차지 않고 변했다면 그것은 긍정의 신호.
경찰이나 검찰이나, 조직의 수장이 새로 전입 오면, 직원들끼리 서로 첫 인사하는 자리가 있다. 앞으로 어떻게 조직을 꾸려나갈지 등 미래의 가야 할 길에 대해 설명하고 함께 잘해봅시다라고 파이팅을 외치는 시간이 있다. 내가 근무하는 곳에도 당연히 한다. 그리고 내가 근무하는 곳의 수장은 주먹만 한 무궁화 꽃을 두 개씩 양 어깨에 달고 있는 분만 올 수 있는 곳이다.
첫인사를 위해 강당으로 가는 길, 총경부터 순경까지 골고루 있지만 평균으로 보면, 15년 이상 경찰생활에 40대 중반부터 50대 후반으로 나름 경찰관으로서 각 분야 베테랑들이다. 또한 처자식을 두고 있는 엄연한 가장이다. 누가 오셨을까, 어떤 분일까 하는 설레는 첫 만남의 시간이 왔다. 어떻게 조직을 이끌어 갈지 광대한 계획을 듣기 위한 그 순간, 첫 한마디가 마치 황폐해진 지구를 맴도는 설국열차 안에서 창밖으로 내민 팔이 얼어붙는 느낌이 들게했다.
“이곳에 있는 사람 중에 나보다 사회적으로 출세한 사람 있으면 손 한번 들어봐요, 없네요, 그럼 내가 제일 출세한 거네요”
첫마디가 끝난 순간부터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충격이었다. 몇 개월만 지나면 경찰 조직에서 20년인데, 자기보다 출세하지 못했으면 어떤 찍 소리도 내지 마라, 너희들은 모두 아랫것들이다. 내가 까라면 까라라는 식의 소통이 아닌 불통의 시작을 알리는 선전포고였다.
‘미친 것 아냐’라는 소리 없는 아우성에 서로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한다. 출세, 과연 어떤 의미로 출세를 언급했을까. 출세라는 말 이후에는 어떠한 말도 들리지 않는다. 경찰생활 중 수많은 수장을 만났다. 어떤 수장은 정말 괜찮았고, 어떤 수장은 약간 모자라지만 사람이 좋고, 어떤 수장은 직원 갈구는데 최적화된 똘아이 기질이 있네라고 생각들었던 여러 수장들을 만났는데, 지금 수장은 사회적으로 대단히 출세하신 분.
출세(出世) :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나 신분에 오르거나 유명하게 됨.
출세(出稅) : 세금이나 공물 따위를 냄
만약 사회적 출세를 계급을 기준으로 언급하며 첫인사에서 말했다면, 아마도 그분은 자신의 어깨에 올려진 계급장의 무게에 맞는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자신과 함께 근무하는 많은 을의 업무를 보면서 성과에 맞게 논공행상(論功行賞)을 공평하게 잘하겠다는 말로 출세를 표현했다면, 그분은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수장이 될 것이다.
“Even the smallest person can change the course of the future”
반지의 제왕의 선한 요정 Galadriel의 말이다. "가장 작은 사람일지라도 미래의 방향을 바꿔 놓을 수 있지"라고, 대한민국은 UNCTAD(유엔 무역 개발회의)에서 개발도상국이 아닌 선진국의 일원으로서 당당한 자격을 갖춘 나라로 승격되었다. 정말 대단한 기적이 아닐까, 그런데 누구의 힘으로 이뤄졌을까. 출세한 사람들이 이룩한 것일까. 아마도 Galadriel의 말처럼, 작은 사람들, 아마도 출세를 했고 안 했고를 떠나서 모든 사람들의 힘으로 미래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 1997년 IMF 금 모으기 운동 때, 전 국민들이 나섰기에 기적을 이룰 수 있었다. 아이 돌반지부터 퇴직 기념 황금열쇠까지 바로 그리 출세하지 못한 소시민들의 힘이었다. 출세한 사람만이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사람의 말 한마디, 단어 하나하나에 그 사람을 알게 해 줄 수 있음을, 위대함으로 보일 수도 바닥으로 보일 수도 있음을 나는 배웠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갑질일 수도 있음을, 그리고 을은 그냥 '을'일 뿐이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적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그래서 조직을 올바르게 바꾸는 힘은, 오로지 출세한 사람이 아닌 모든 조직원의 힘에서 나온다는 것을, 나는 알았고 배웠다.
*사진은 인터넷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