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이 내린 남자, 그리고 청룡언월도

내림굿을 위해, 관우장군이 서 있었다

by 별하

[작가 노트]

신을 믿는다는 건, 어쩌면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할 믿음’ 을 갖는 일 불가사의 일지도,
이성과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 길을, 그저 ‘느낌 하나’로 걸어가는 사람들


그날 나는 그런 사람을 보았다. 그리고 알았다.

누군가의 믿음은, 두려움보다 더 강해질 수 있음을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다. 불교, 천주교, 이슬람교, 개신교… 각자 믿음의 모양은 다르지만,
결국 사람은 ‘사람답게 살기 위한 진리를 깨달아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이 나라의 수많은 조상들은 태양과 물, 바람에도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돌에도, 나무에도, 사람의 혼에도 그건 곧 ‘샤머니즘’, 즉 무속(巫俗)이었다. 무당은 그 경계에서 신의 목소리를 전하는 사람으로,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는 위로를, 답답한 사람에게는 희망을 건네는 존재였다.


나도 어릴 적, 외할머니 손을 잡고 광주 동구의 무당 할머니를 자주 찾아갔다. 지금은 아마 진짜 신이 되셨을 그분은 내 얼굴을 한참 들여다보시더니 말했다.


“너는 대기만성(大器晩成) 팔자여, 젊어서 고생 좀 하겄다잉” 이 말이 싫었다.

젠장 “고생은 이미 충분히 했는데, 대체 언제 만성(晩成)이 오냐고요…” 지금도 가끔 혼자 투덜거린다.


그날도 평범한 순찰 중이었다. 무언가에 홀린 듯 작두칼 위에서 춤을 추듯 무전이 흔들렸다.

“동생이 거실에 신나를 뿌리고 불을 붙이려 한다는 신고입니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긴장이 확 올라왔다. 방화 관련 신고현장에서 동료가 화상을 크게 입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린 최대한 빠르게 현장으로 향했다. 현관문은 열려 있었고, 그 안에서는 신나 냄새가 짙게 퍼지고 있었다.


“무슨 일이세요? 진정하세요, 도와드릴게요” 조심스럽게 안을 들여다보니,

거실 한가운데 하얀 옷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눈빛은 허공 속에 머무른 채 멍했고, 오른손에는 라이터, 왼손에는… 커다란 청룡언월도가 들려 있었다.

“뭐야… 관우 장군의 청룡언월도잖아.” 무심코 중얼거렸다.


그는 창을 번쩍 들며 외쳤다.

“내림굿을 받아야 해! 신이 나를 부르고 있어”라는 말에 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는 열개의 손톱에 검은색 매니큐어를 바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빛엔 광기보다 절박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잠시 대치하던 그 순간, 그의 형이 현장에 도착했다. 그들은 기독교 집안이었다.


형은 울먹이며 말했다. “얘가 미쳤어요… 신이니 뭐니… 제발…”


하지만 동생은 오히려 평온했다. “형, 신이 노하고 있어 내림굿을 받아야 해 그래야 가족들이 산다니까”

결국 형은 동생의 손에서 라이터를 받아 들었다. “그래… 일단 내림굿을 하자” 형의 한마디로 상황은 끝났다.

지구대로 돌아오는 길, 관우장군과 나는 순찰차 뒷좌석에 함께 앉아있었다. 그는 내게 말했다.

“아저씨, 대기만성형이야 젊어서 고생은 어쩔 수 없어”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그건 어릴 적 무당 할머니가 내게 했던 말과 똑같았다. ‘대기만성’ 세상에 우연이 있을까, 순찰차에 실리지 않는 청룡언월도를 차량 밖으로 걸쳐 양손으로 붙잡고 가는 내 모습이, 마치 관우 장군을 모시는 신의 제자가 된 것처럼,

지나가는 버스 승객들이 창밖으로 나를 보며 웅성거리는 듯하다. 며칠 후, 그는 결국 내림굿을 받고 무당이 되었다고 한다. 이제는 신내림을 받은 영매로, 답답한 사람들에게 점을 쳐주며 산단다. 사람들은 말한다.

“무속은 미신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의 내림굿이 ‘병’이 아니라, 그에게 주어진 ‘살 길’이었다는 걸.




[소 에필로그]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의 이유가 있다. 누군가는 그걸 신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누군가는 병으로 여긴다. 나는 오늘도 보임과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세계의 경계 위를 걷는다.

이성과 믿음, 현실과 영혼의 사이에서 그리고 문득 생각한다.

어쩌면 ‘신의 제자로 불리는 사람’이란, 가장 절박한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싶은 사람이 아닐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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