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본사는 투칸 Feb 11. 2020

일본에서 일본어를 못하는 검은 머리 외국인으로 살기

외노자 동지 H를 떠나보내며

서울에서 같은 직장에서 일하다 나보다 1년가량 앞서 일본행을 택한 동료 외노자 H가 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은, H는 히라가나의 ㅎ도 모르는 상태로 일본에 왔다는 것.


놀랍게도 사실이다

일본어를 1도 못하는 상태로 공부도 아니고 일을 하러 간다는 사실을 듣고 나는 축하에 앞서 근심과 걱정을 표할 수밖에 없었는데, 일본에서 일본어를 못하는 검은 머리 외국인으로 살기가 얼마나 고된 일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천성이 낙천적이고 밝은 H는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딛고 3년을 꽉 채워서 버텨냈고, 더 좋은 기회를 찾아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으니 해피 엔딩이다. 아무튼 오늘은 H가 겪었던 고난 에피소드들을 2가지 소개해보고자 한다.




일본에서 일본어를 못하는 검은 머리 외국인으로 살아간 H의 에피소드 1

처음으로 일본에 도착해서 생활을 위해 이런저런 수속을 밟아야 했던 H. 아직 한국처럼 인터넷 클릭 한 번으로 대강의 수속이 처리가 되는 나라가 아닌지라, 하나하나 전화로 신청을 해야 하는 일이 많은데 도일 시점에서 겨우 히라가나만 떼고 건너온 H에게 이것은 레벨 100 하드코어 미션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유학 경험이 있고 회화만으로는 생활에 지장이 하나도 없는 나도 아직도 상담 센터에 전화하는 건 떨리고, 웬만하면 피하고 싶은 일이거늘.


아무튼 H가 떠듬떠듬한 일본어로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으나 당연히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고 떠듬떠듬 일본어를 못한다고 말했다고. 으레 이렇게 말했을 경우 한국에서는 영어 상담이 가능한 센터를 재 안내하거나, 한국어로 천천히 안내하며 영어 단어를 조금씩 섞어서 말해주므로, H로서는 이러한 응대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상담원의 대답은 H의 기대를 처절히 배반해버렸다.

(한 음절 한 음절 끊어서)아/일/본/어/잘/못/하/시/나/요~

그렇게 상담원은 나름의 친절을 베풀어 모든 말의 음절을 다 끊어서 처어어언처어어언히이이이 말해주는 것으로 응대를 했으나, 그녀의 노력은 H에게는 1의 도움도 되지 않았다.


애초에 고등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에게

라고 말해봐야, 그것이 어찌 도움이 되리오...


모릅니다... 모른다구요....


일본에서 일본어를 못하는 검은 머리 외국인으로 살아간 H의 에피소드 2

H가 일본에서 다니게 된 회사는 한국인들이 많은 곳이었는데, 연수 기간 동안은 다행히 한국인 개발자들과 함께 일을 해서 H는 내심 안심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식으로 부서 배치를 받고 자리로 갔더니 공교롭게도 그 부서의 구성은

팀장(한국인, 일본 거주 20년 이상)

H(한국인, 당시 일본 거주 3개월)

그 외 전원 일본인

이었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관광으로 일본을 많이 오간 사람들이 곧잘 하는 대사는 다음과 같다.

그래도 일본 사람들은 친절하니까 괜찮지 않아?

네, 그 친절은 당신이 돈 쓰러 일본을 방문한 손님이기 때문데스네...^^


'돈 쓰러'가 아닌 '돈 벌러' 건너온 외노자 동료에게 있어 일본 동료들의 친절은 편의점 오니기리와 같은 것이다. 기한 지나면 얄짤없이 폐기처분이라는 뜻이다.(물론 사람 사는 동네인지라 친절한 사람은 친절하다)


회의에서 일본어로 대화하는 것이야 당연히 그럴 거라는 각오로 임했던 H이지만, 면대면으로 업무 대화를 나누러 와서도 업계 용어와 축약어를 섞은 일본어를 와다다다 쏟아내고, 어떻게 봐도 1도 알아듣지 못한 표정을 하고 있는 H를 두고 휭 자기 자리로 가버리는 그들을 보며 H는 비로소 외노자의 설움을 느꼈다고.


반대로 생각해봤을 때 한국에서도 만약 같이 일하는 외국인 동료가 '아이 캔트 스핔 코뤼안' 상태라면 답답할게 당연하긴 하다. 그러나 영어든 바디랭귀지든 번역기든 뭐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커뮤니케이션을 하려고 하는 한국 사람들의 오지랖과 적극성 따위 이 땅에는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었던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맨땅의 헤딩을 할 생각을 했냐고, 일본에서 재회한 H에게 물었을 때 H가 말했다.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왔죠. 알았으면 못 왔죠^^
그래서 일본어 좀 들리기 시작한 2년 차가 오히려 더 힘들었어요.
그 전까진 어차피 1도 못 알아들으니까 저한테 욕을 하든 뭔 말인지 몰라서 맘이 편했는데, 들리기 시작하니 더 괴롭더라구요.


어느 정도 일본어가 들리고 말도 떠듬떠듬이나마 할 수 있게 된 시점에서도, 여전히 일본어 속의 심오한 뉘앙스(aka 비꼬기)는 잘 몰라서 오히려 맘이 편하다고 웃던 H. 저 말을 듣고 낙천주의자도 이런 大낙천주의자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남에게 말하지 못한 힘든 일도 많았겠지만, 그 모든 걸 이겨내고 새로운 행복과 커리어를 찾아 떠난 H를 응원한다. 낙천적인 그 마인드는 어디에서나 그녀의 방패막이이자 특장점이 되어 줄 거라 믿는다.

작가의 이전글 [스웨덴 남자와 일본살이]일본에서 외국인끼리 혼인신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