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기수를 잃을 수밖에 없었나
나는 언제나 달리는 경주마였다. 연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직 ‘그녀’만을 향해 달렸고, 그 외의 것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학창 시절에는 다들 자신의 좋아하는 상대를 숨기며, 그걸 친목을 다지는 소재로 썼을 때도 나는 좋아하는 사람을 숨기려고도 하지 않았고 구태여 그럴 필요도 못 느꼈다.
다른 친구들이 장래 희망 칸에 뭘 적을지 고민하던 때에 나는 제일 먼저 쓴 뒤 빈둥거리며 놀았다. 이런 나에게 학원이란 최적의 트랙이었다. 하라는 것만, 시키는 것만 충실히 해내면, 원하는 점수, 원하는 등급, 원하는 곳에 갈 수 있었다.
나는 체육 시간 중에서 근력 운동과 달리기를 할 때가 가장 좋았다. 근력 운동은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무거운 것을 들고 내리다 보면 어느새 근육이 생겼다. 물론 힘들긴 했지만, 세상만사에 힘든 것 투성이인데, 힘들다는 이유로 피하는 것은 내게는 죽고 싶다는 말과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근력 운동 수업을 할 때 선생님께 투정을 부리는 아이들을 항상 동정의 눈길로 바라보곤 했었다. 달리기도 매한가지였다. 두 다리를 앞 뒤로 어떤 기술이나 특별한 테크닉 없이 남들보다 빨리 그리고 오래 달리면 되기 때문이었다.
‘단순 반복 행위’는 내게 마법 주문과도 같았다. 나는 마치 전자레인지처럼 버튼을 누르면 그 시간 동안 행위를 반복했고 그 결과는 꽤나 좋았다. 나는 그들과 종자가 다른 듯한 우월함을 느꼈다. 다만, 이 행위를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그리고 더 이상 내 버튼을 눌러줄 사람이 없어졌을 때를 제외하고 말이다.
그저 앞으로 달리는 경주마의 가치는 턱없이 낮았다. 그리고 얼마든지 대체될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경마장에서 처음으로 나보다 압도적으로 잘하는 사람을 보고 평생을 노력해도 저 사람보다 잘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머리를 점령하자, 나는 나보다 느린 사람들 보다 뒤처지기 시작했다.
내가 느려지자 기수는 다른 말에 올라탔고 나는 그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멈춰 이전에 쉬지 못했던 숨을 몰아 내쉬었다. 더 이상 벅찬 숨도 없어지자, 나는 다급한 마음에 뭐라도 해보려고 했다. 다시 트랙에서 달려 보려고 했지만 반대로 돌아 다른 말과 충돌했으며 그들과 같은 방향으로 뛰어도 금세 잘못된 방향으로 가기 일쑤였다.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을 못하게 되었을 때 보통의 사람은 슬픔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죽음을 느꼈다. 나의 가치가 사라진, 설령 있다 한들 다른 것으로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다는 뜻은 내 머리 위에 붙여진 폐기물 스티커로 충분히 설명되었다. 그리고 그 스티커는 더 이상 내가 경주마가 아닌, 관상용 말이나, 도축용 말이 되었다는 열등감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찾아와 내게 ‘경마를 아냐고’ 물었다. 누군지 모를 그 사람은 나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 순간 너무 부끄러워 죽고 싶었다. 근처에 날카로운 무언가라도 있었다면 나는 일순간의 고민도 없이 내 목을 가볍게 그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더 죽고 싶은 점은 그것은 단지 꿈이었기에 죽을 수 없었고 깨어난 현실은 그대로라는 점이었다.
내가 도태되고 교체되어 버려진 존재라는 걸 모두가 알 것이고 이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선택했다. 나는 내 시야를 가린 눈가리개를 벗어던지고 천장에 밧줄을 묶었다. 줄은 나보다도 튼튼하고 질긴 듯했다. 다행이었다.
눈가리개를 벗었음에도 시야가 점점 좁아져 갔다. 오히려 눈가리개를 썼을 때 보다 더 시야가 좁아졌다. 긴 트랙을 달렸던 두 다리는 점점 감각이 사라져 갔으며, 더 이상 나를 지탱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때 든 생각은 이것조차 아무도 말한 적은 없지만 누군가가 시켜서 한 나의 수많은 행동 중 하나였음을 깨달았다. 나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발만 휘저었다. 이번에는 허공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