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권에 대한 한 인문적 사색
가끔 로또를 산다.(까먹지 않으면 매주 살려고 하는 편이다)
가급적이면 늘 똑같은 판매점에서 토요일 저녁에 로또를 구입하는 편이다. 참고로 이 판매점은 아직까지 1등이 나온적이 없다. 2등만 나온 이 판매점에서 언제가 1등은 내가 되리라는 놀라운 희망(나 스스로도 이런 믿음에 대한 설명을 할 길이 없다.) 을 품고 이 곳을 찾는다. 나름 징크스도 생겨났다. 주인 부부가 번갈아 가며 가게를 보는 것 같은데 여자 주인을 만날 때 당첨 확률이 더 높다(고 믿는 편이다.) 5천원으로 5개의 행운을 구입하는 셈인데 주위에 2천원치만 구매하는 지인을 보면 그들의 묘한 타협지점이 생경한다.
다른 로또판매점에서 사는 경우도 생긴다. 출장때나 혹은 바깥에서 모임을 갖다 갑자기 생각나서 근처 판매점을 찾게 되는 일도 있지만 그런 경우 당첨 확률이 낮다(고 믿는 편이다.)
로또의 당첨확률을 불가능에 가깝다(고들 한다.) 하지만 로또를 손에 쥔 사람들은 어떻든 희망과 설레임도 함께 구매한 셈이다. 실제로 6개의 숫자중에서 4개까지 맞춰본 경험이 있다. 매주 1등 당첨자가 몇명씩 나오고 로또 판매점마다 1등 당첨이 한번쯤은 나왔다고 써붙여 놓은걸 보면 1등 당첨자가 내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하는 믿음이 자연스레 생겨난다.할레루야!)
제비뽑기에서 시작된 '희망의 제도'
복권의 기원은 의외로 오래되었다.
기원전 2세기 중국, 한나라 시대에 만리장성 건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비슷한 제도가 있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공직자를 뽑거나 신탁을 묻는 데 ‘제비뽑기’가 사용됐다.
그것은 신의 뜻을 묻는 방식이었고, 우연은 곧 운명이었다.
이처럼 복권은 처음부터 인간의 탐욕만을 위한 장치는 아니었다. 그것은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어떤 질서를 부여받고자 하는 인간의 소망이었다. 제비는 공정했고, 우연은 신비로웠으며, 그것이 곧 믿음이 되었다.
왕과 도시의 재정, 그리고 민중의 기대
중세 유럽에서는 성곽을 고치고, 수도를 정비하며, 전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복권이 사용됐다. 이탈리아 제노바에서는 공직 선출용 제비뽑기가 숫자 추첨 방식으로 진화했고,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왕실이 자금을 모으기 위해 공식 복권을 시행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복권이 권력과 대중의 이해가 교차하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권력자는 자금을 모으고, 민중은 행운을 꿈꾼다.
복권은 국가의 필요와 개인의 욕망이 서로를 정당화하는 묘한 계약이었다.
근대 국가와 복권 — 정당한 우연, 통제된 희망
미국 독립전쟁 당시에도 복권이 사용됐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포병부대를 위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복권 발행을 제안했고, 이후 미국 전역에 걸쳐 학교, 도서관, 교회 건설 자금이 복권으로 충당되었다.
복권은 점점 더 제도화되었고, 국가가 관리하는 ‘합법적 우연’의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의 로또는 단지 ‘도박’이 아니다. 그 수익금은 문화재 복원, 예술 지원, 소외계층 복지, 체육 진흥 등에 쓰인다.
복권은 어느새 세금보다도 기꺼이 내는 자발적 기부의 형태가 되었다.
그러나 과연 그 희망은 누구의 것인가?
복권은 단지 공정한 우연인가, 아니면 정교하게 설계된 위로인가?
우리는 왜 복권을 꿈꾸는가
복권을 산다는 건, 어쩌면 삶의 한 구석에 무언가 '기적'을 남겨두고 싶다는 마음일지 모른다.
매일 같은 출근길, 변함없는 하루의 리듬 속에서
우리는 한 장의 종이에 숫자를 새기고, 그 안에서 새로운 생의 문이 열리길 기대한다.
그 기대는 우스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복권은 우리에게 말한다.
세상은 끝없이 계산될 수 없으며, 우연 속에서도 삶은 다시 쓰일 수 있다고.
복권, 감춰진 철학
복권은 숫자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는
– 우연과 필연,
– 통제와 자유,
– 희망과 체념이라는 삶의 역설이 모두 담겨 있다.
누군가는 그것을 낭비라 부르고, 누군가는 그것을 꿈이라 부른다.
어쩌면 복권은 우리 삶이 얼마나 불확실한지에 대한 자기 고백이고,
그 불확실함 속에서도 여전히 기대를 품는 인간의 절실한 감정의 표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