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침대에 누웠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천장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기억이 없다는 건
타인의 기억에 기대어 나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책상 위, 수첩이 놓여 있었다.
그녀가 쓴,
내 삶의 조각들.
나는 그것을 다시 펼쳤다.
그리고 처음부터 한 장씩 넘겼다.
“6월 3일 – 당신이 늦게 퇴근했지만,
나를 보자마자 피곤한 얼굴이 풀렸다.”
“7월 1일 –
내가 울 때, 당신은 말없이 등을 토닥였다.
위로는 말보다 손이 먼저였던 사람.”
그 문장들 사이를 지나며
나는 낯선 누군가를 조금씩 사랑하게 되었다.
그건 다름 아닌
과거의 나였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그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아침이 되었다.
그녀는 부엌에서
여전히 조용한 손놀림으로 식탁을 준비하고 있었다.
“당신은…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정말 다 기억나요?”
내 질문에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당신은…
나를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었어요.”
나는 식탁에 앉아
따뜻한 밥을 먹었다.
국은 익숙한 맛이었다.
어제와 똑같은, 그러나 오늘은 다르게 느껴지는 맛.
그녀는 그릇을 정리하며 내게 물었다.
“혹시,
그때의 당신이 다시 되고 싶다는 생각은…
들어요?”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오늘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나는,
기억 속 나를 닮아가고 있었다.
그건
그녀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녀를 다시 사랑하게 된
내 덕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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