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내가 재수생이었던 스무 살 무렵이었다.
재수를 마치고, 대학에 원서를 넣은 뒤 나름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나는, 집 앞 범계역의 교보문고로 향했다.
베스트셀러 도서를 만지작 거리고 있던 내게 한 여자가 다가왔다.
"책 좋아하세요?"
낯선 여자의 질문이었다.
"네, 뭐 글 쓰는 걸 좋아해서요."
솔직할 필요가 없던 상황이었지만, 별 거 아닌 것 같아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와, 어떤 글 쓰세요?"
"그냥 제 옛날이야기들이요. 고등학교 이야기. "
그 사람은 내가 쓰고 있다고 했던 이야기에 흥미를 보였다. 별거 아닌 내용이었으나, 누군가의 작은 관심에도 흔들렸던 시기였다.
그 사람은 내 휴대전화에 자신의 번호를 저장했다.
"이야기가 흥미로워요. 괜찮으면 또 연락드릴게요! "
호기롭게 떠난 그 사람은 이제 갓 사회에 나온 내게 찝찝한 인상을 남겼다. 당시에 느꼈던 찝찝함은 불쾌했다기보다는 이상야릇한 감정이었다.
집에 도착해 서점에서 있었던 일을 어머니께 이야기했다.
-의심스럽다-
어머니의 대답을 요약하면 그랬다. 나도 인정한다. 아무것도 없이 대화 몇 마디로 내 이야기가 흥미롭다고 하다니. 별로 들려준 이야기도 없던 것 같은데 말이다.
그때, 그 사람으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아까와 같은 호기로운 음성이었다.
"저희 출판사 팀장님께서 이야기를 조금 더 듣고 싶다고 하시는데.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카카오톡에 저장된 그 여자의 프로필은 그 나이대에 걸맞은 일반적인 사진이었고, 그것만으로는 그 사람을 의심하기에는 어려웠다.
-사이비 같은데?-
전화 통화 내용을 전해 들은 어머니의 대답이었다. 그 사람들이 네 글도 보지 않고, 어떻게 좋은지 아닌지 판단하냐는 당연한 대답이었다.
당시 우리에게 1년간의 AS를 보장해 준다고 하셨던 고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이 생각났다. 선생님께서는 내 이야기를 들으시고, 여러 신문기사를 보내셨다.
신문의 헤드라인에는 출판사로 위장한 사이비 종교의 포섭활동이 최근 기승을 부린다는 이야기였다.
나를 만류하던 어머니와 선생님. 그럼에도 난 왜 그 장소에 다시 나가고 싶었을까.
그때의 내게는 누군가 내 이야기에 관심을 갖는 것이 절박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시절, 말 못 할 무거운 시간을 보냈고, 재수를 하면서도 그 무게는 덜어지지 않았다. 자습이 끝난 뒤 불 꺼진 재수학원 식당에서 혼자 도시락을 입 속에 욱여넣던 날이 많았다. 맛도, 온도도 잃어버린 한 끼를 삼키며 생각했던 건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렇게 무거워졌을까’ 하는 것이었고,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던 그 물음은 때로 무섭도록 외로웠다.
그 시절 내게 필요했던 건 화려한 성공도, 대단한 성과도 아니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무너질 때 내 손을 잡아줄 누군가, 내 이야기에 조건 없이 귀 기울여줄 누군가가 절실했던 것이었다. 그러니 한낱 우연처럼 다가온 사람의 ‘관심’조차도 내겐 절벽 위에서 만난 작은 잔가지처럼 절박하게 보였던 게 아닐까.
그 사건은 하나의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흔들리는 것이 죄가 아니라는 것. 때로는 무너질 수도 있고, 연약해질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결국 우리는 내 안의 ‘중심’을 찾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가 아니라 내 스스로 내 이야기에 무게를 실어주어야 한다는 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