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나무
학창 시절 교정에는 뭉게구름처럼 솟아올라 균형 잡힌 자태를 뽐내던 나무가 있었다. 향기를 내뿜었던 향나무다. 덕분에 졸업사진의 뒷배경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향나무는 지금도 학교나 관공서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상수다.
향나무와 첫 인연은 연필이었다. 지우개와 한 세트였던 연필은 재료가 향나무이고, 연필심은 흑연이라는 광물로 만들었다고 초등학교 선생님께서 알려주셨다. 그렇지만 몽당연필의 추억이 서린 연필을 왜 향나무로 만들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나무는 모두 향기를 가지고 있다. 향의 종류나 발산량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향나무라는 이름이 뭔가 수상하다. 마치 혼자만 향을 가진 것처럼 대놓고 나선다. 아마도 처음에 이름 정할 때 향나무 향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던지, 아니면 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식물은 피톤치드라는 자기 보호물질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향기이다. 대부분의 향기 물질은 잎이나 꽃, 열매에 들어 있다. 향나무는 예외다. 독특하게도 나무의 속살에 다량으로 들어있다. 이렇게 품고 있던 향내음이 정신을 맑게 하는 역할을 한다. 연필을 향나무로 만든 이유가 바로 집중력이었다.
더구나 향나무 향기는 예로부터 죽은 영혼을 달래고 신을 부르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 제사 등 의식행사를 위해 향나무 조각을 태워 사용했다. 숙연한 자리에 선택되어 자기 몸을 사르며 귀한 대접을 받았다. 소중한 가치를 부여하는 인간 문화의 중요 현장에 함께 한 덕분에 향나무라는 이름을 홀로 사용하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
프랑스 화가 조르주 루오가 남긴 판화 중 눈에 띄는 작품이 있다. ‘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날에도 향을 묻힌다’이다.
다른 사람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면 미움과 원망이 앞선다. 진정한 사과가 없으면 마음의 응어리로 남는다. 이때 용서라는 말이 등장한다. 용서는 쉽지 않으며 또한 용서해도 감정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다시 만나야 하는 운명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용서를 운운하는 이유는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니다. 조금이라도 자기 마음을 편하게 하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향나무가 자기를 찍는 도끼날에 향을 묻힌다는 말도 어쩌면 인과 관계가 아니다. 시련이나 고통을 주는 인연은 분노나 저주가 인지상정이다. 그런데도 품고 있던 향내음을 나눠주는 이유는 따로 있다. 품격을 유지하고 자기 존재를 좋게 남겨두기 위해서이다. 인격이 익어가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향나무는 측백나무과(科) 상록 침엽 교목으로 주로 향료로 쓰이며 이를 활용해 질병의 치료 효과를 나타내기도 한다.
조선의 교육기관인 향교나 서원에 심어진 향나무가 일제강점기에 가이즈카향나무라는 유사 종으로 교체되었다. 일본의 잔재라고 말도 많고 탈도 많으나 출처가 불확실하여 논란이 진행 중이다. 자기 자리만 지키는 나무는 죄가 없는데 말이다.
판화 : 향나무는 자신을 찍는 도끼에도 향을 묻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