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먹기 가장 어려운 과일이 무엇인지 아니?’ 어릴 때 어머니께서 질문하신 문제다. 정답은 ‘밤’이었다. 여러 겹의 껍질을 벗겨야 해서 그 흔적을 감추기가 쉽지 않다는 게 어머니가 설명하신 이유였다. 그만큼 밤을 까서 먹기까지는 쉽지 않은 과정이 있었다.
아름다움은 인간의 영원한 꿈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름답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또한 최선을 다하여 꾸미고 가꾸는 데 에너지를 소비한다. 여기서 ‘아름답다’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진다. 그 어원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가설이 있는데 그중 하나의 이야기가 밤나무에서 유래했다.
예로부터 아이의 용모에 대한 칭찬으로 ‘깎아놓은 밤톨(알밤) 같다.’라는 말이 있다. 뽀얀 살로만 이루어져서 깔끔한 알밤에다 아이의 모습을 빗대었다. 이렇게 생겨난 ‘알밤답다’라는 낱말에서 ‘아름답다’가 유래했다.
대부분 과일의 열매는 과육 속에 딱딱한 씨앗이 들어 있지만 밤은 따로 씨앗이 없다. 도토리와 마찬가지로 밤송이 자체가 열매이자 곧 씨앗이다. 그래서 번식도 다른 과일나무처럼 동물이 열매를 먹은 후 씨앗을 땅에 배설해 퍼트리는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먹히지 않고 씨앗을 보호하는 방어 전략을 마련하여 세대를 이어간다. 종족 번식이 야생동물보다 인간의 손길과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감지된다.
씨앗을 보호하는 방법도 철저하다. 익을 때까지는 밤송이 가시가 보호하고, 성숙한 알밤은 두 겹의 껍질이 방어막을 꾸린다. 겉은 매끄럽고 딱딱한 껍질로 감싸고, 속은 떫은맛 나는 얇은 껍질이 알밤에 찰싹 달라붙어 벗기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러한 삼중 방어막은 동물에게 덜 먹히려는 소극적인 방식이지만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식물 세계에서는 최고의 생존전략이다.
밤송이 껍질을 모두 벗기면 마지막에 남는 알맹이가 먹을 수 있는 밤이다. 그래서 밤을 먹기 위해서는 많은 수고가 필요하다. 조상의 제사상에도 알밤은 깎아서 올린다. 성실함을 담으려는 후손의 아름다운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아름다움이 담고 있는 의미가 분명해졌다. 아름다움[美]의 기준은 천차만별이지만, 조화와 균형은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에 더해서 감춰져 있다가 정성을 들여야 드러나는 알밤의 참모습이 ‘아름답다’라는 한국인의 정서가 되었다.
밤나무는 참나무과(科) 상록 활엽 교목이다. 한자는 율(栗)이며 유학자 이이의 호 율곡은 밤나무골이라는 뜻으로 어릴 적 밤나무와의 인연으로 정했다.
암수한그루인 밤꽃의 특유한 향기는 수꽃에서 풍긴다. 밤꿀은 진하고 맛이 쓴 편이라 식용보다 약용으로 사용하는데 벌에게 인기도 없어 밀원식물이라도 양이 적다. 그래서 수분(受粉)도 벌보다 주로 개미가 한다.
밤나무와 이름이 유사한 너도밤나무는 같은 참나무과이며 울릉도에서 자생하고 열매가 비슷하다. 과(科)가 다른나도밤나무는 잎의 모양이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