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고령화’는 현재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은 미래는 어둡다. 식물 세계에도 이 문제에 직면한 나무가 있다. 바로 은행나무이다.
반듯한 은행잎을 책갈피에 간직하던 청소년 시절. 그 당시 우리 집은 소를 길렀다. 소는 식성이 좋아 닥치는 대로 풀을 먹었다. 나뭇잎도 가리지 않았지만, 은행잎은 먹지 않았다.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몰래 풀과 섞어 주면 혀로 밀쳐냈다. 소뿐만 아니라 벌레조차 멀리했으며 열매도 관심 두는 동물을 보지 못했다. 낙엽을 모아 불에 태우면 가장 더디게 타는 것도 은행잎이었다.
이렇게 은행잎은 동물이 꺼리고 수분이 많아 불에 잘 타지 않는다. 병충해에 대한 저항성도 최고 수준이다. 그 결과 과거 수억 년 동안 수많은 생물이 탄생하고 멸종하는 와중에도 은행나무는 기나긴 세월을 견디며 ‘살아있는 화석’으로 존재하고 있다.
식물은 번식을 위해 다양한 방식으로 씨앗을 널리 퍼트린다. 그런데 은행나무의 생존법은 다르다. 흔히 열매라고 부르지만, 겉씨식물인 은행나무는 열매가 없다. 씨앗이 잘못 알려졌다. 이 씨앗은 무거워서 바람에 날아가지 않으며 껍질에서는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씨앗을 전파해야 하는 동물이 그래서 얼씬도 하지 않았다.
땅에 떨어진 자기 씨앗이 싹트는 것을 방해하는 비정함도 있다. 주변에 어린나무를 찾기 어렵고, 어쩌다 살아도 사는 게 녹록지 않다. 한 마디로 자손 번식을 외면한다.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그러는지 속내가 의심되지만,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은행나무는 오랜 세월을 버티며 생존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자기 DNA에 깊이 새겼다. 그리고 종족 유지를 위한 특별한 선택을 하게 되었다.
사람도 어른보다 아이가 약하다. 모든 생물이 그렇지만 은행나무는 다르다. 수령(樹齡)과 관계없이 모두가 강해야 한다. 약한 자손은 절대 원하지 않는다.
많은 번식이 목적이 아니다. 살아남은 일부 강한 자손만 선택하여 다음 세대를 이어간다. 더구나 그 자손도 수십 년 동안 씨앗은 만들지 않고 자기 관리만 한다. 오죽하면 할아버지가 심어 손자 대에 씨앗을 얻었다는 ‘공손수(公孫樹)’라는 이름이 그래서 생겼다.
은행나무는 이렇게 자손이 정착하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한 개체가 오래 사는 능력을 장착했다. 일 년생 식물처럼 개체의 수명을 줄여서 종족을 유지하는 선택을 하지 않고 수명을 늘리는 역선택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은행나무의 역선택이 통했다면 서서히 균열이 보인다. 야생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종이 되었고 자생지(自生地)도 없다. 단지 인간에게 도움받는 번식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역선택 결과로 어린나무는 거의 없고 고목만 있다. 이 모습이 마치 아이는 적고 노인이 많은 저출산, 고령화에 처한 우리 사회와 유사하다. 더욱 불안한 것은 멸종위기종이라는 사실이다. 역선택이 가져온 결과가 멸종이라는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쯤 되니 우리 사회의 상황과 비교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진다. 그래서 은행나무의 역선택을 그저 한 식물의 이야기로만 덮어두고 싶다. 불편한 진실일지라도….
은행나무는 은행나무과(科)에 단 한 종뿐인 희소종으로 암수딴그루[雌雄異株]이다. 암·수 수형이 다르고 암나무만 씨앗이 맺힌다. 은행(銀杏)은 씨앗 껍질이 은(銀)처럼 하얗고 모양이 살구(杏)처럼 생긴 은빛 살구다.
가로수로 많이 심어졌으나 심한 씨앗 냄새로 교체가 진행 중이다. 식용과 약용으로 한국인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나무이다.